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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기 ‘뷰티풀(VIEW-TIFUL)’ 展을 통해 깨달은 삶
조각을 완성품으로 만드는 건 우리의 몫이다
무거운 비가 내리고 짙은 안개가 사방을 뒤덮은 가을날, 경주를 찾았다. 비 때문에 단풍구경을 온전히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 덕분에 멋진 전시를 감상할 수 있었다. 우양 미술관이라는 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박선기 조각가의 ‘뷰티풀(VIEW-TIFUL)’ 展.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지는 않았으나,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밖에 없었던 전시회다.
‘뷰티풀(beautiful)’이라는 단어는 익숙하다. 말하고 듣는 빈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름답고 훌륭한 대상을 접했을 때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표현이므로 여느 영문단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주 접했을 것이다.
박선기 작가가 선택한 단어 ‘뷰티풀’은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단어에 시점(point of view)를 형성하는 시각을 의미하는 단어, ‘뷰(view)’가 더해졌다. 그렇게 융합된 새로운 단어는 시각이라는 인간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풍족한 신조어’가 되었다.
제목에서부터 비범함을 드러낸 박 작가의 전시는 숯을 활용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최근 나의 작업에 있어 가장 두드러지게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문화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문화의 대표격으로 인간이 거주하고 그 구조물 내에서 활동하는 건축문화를, 자연의 대표격으로 모든 이 지구상에 존재하며 흔하게 바라볼 수 있는 나무의 최후 모습인 숯을 선택하였다. 유용성에 의존하는 건축 구조물과 자연의 한 모습인 숯을 두고 여러 가지 의미와 모습을 생각할 수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전시를 감상하며 ‘본다’는 것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고,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 것들에 대해 성찰하게 됐다. 우리가 어떠한 타자를 ‘본다’고 말할 때는, 물리적으로 흡수되는 것만 것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들, 내다보는 세계관이 더해진 것을 의미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시각’에는 개인의 삶이 배어있다.
‘뷰티풀 展’의 작품들은 전시회를 온 듯한 기분이 아닌, 건축물, 나아가 다양한 국가를 여행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공간감을 선사했다. 개개인의 삶과 시점이 다르듯, 작가는 개인의 시각은 존중하는 동시에 해체와 완성의 의미를 감상자 스스로가 찾아갈 수 있도록 고무시켰다.
기둥과 탑, 계단, 나아가 고가도로에 이르기까지의 건축물들을 숯 조각들을 엮어 완성해낸 작품들은 생경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 ‘해체’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재료의 배열에 어긋남과 여백을 적용시킴으로써 메시지에 힘을 실었다.
특히, 고가도로를 표현한 작품에서는 이십 여분을 머물렀다. 감상의 위치나 몸의 높낮이를 조금만 바꿔도 작품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너무도 신기했다. 그 ‘기이한 착시아트’의 시공간 속에 존재했던 나는 전시회에 입장한 것이 아닌, 이름 모를 도시로부터 초대받은 이방인에 다름 아니었다. 이 낯선 공간에서 만난 흩어진 조각들은 마치 내 몸을 구성하는 세포처럼 느껴졌다. 이 세포들이 모여 오롯한 나로 완성되기까지는 형태로 완성될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그것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정신을 바로 세워야겠다는 다짐을 하게도 만들었다.
이번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조합제, An aggregation 150725-pagoda>는 ‘석가탑’의 형태를 담아냈다. 특정 위치에 서면 완전체로 만나볼 수 있는데, 굳이 완전체가 아니라 할지라도 다양한 위치에서 다양한 형태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물론, 온전한 석가탑의 형태를 만났을 땐 마치 내가 작가가 되어 작품을 완성한 것처럼 감격이 배가됐었다.
이 전시를 감상하는 내내, 홍상수 감독의 영화<자유의 언덕>이 내 머릿속을 휘감았다. 영화 속 주인공 ‘모리’의 흩어지고 분실된 낱장의 편지’조각’들은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모두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게 시간이라지만, 그것 또한 홍 감독의 영화에서는 쪼개지고 사라지는 등 다양하게 적용된다. 감독은, 한 남자의 기억 속 시간들을 해체시키고 재조합, 가공시키는 과정을 통해 결국 우리의 삶 또한 예측불가하며 개척 가능한 것임을 일러준다. 시간이 시, 분, 초 등의 단위로 나뉘어진 것처럼, 박 작가의 전시도 조각의 공기들로 채워져 있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시각의 다양성과 의미, 개체의 중요성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또한, 그것들이 모여 하나의 완성품이 되기까지는 개인의 노력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깨우침을 얻었고, 그것을 향한 다짐을 새로이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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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함은 디지털영상 및 영화 전공 후 기자생활을 거쳐, 현재는 회사 내 전략기획팀에서 PR업무를 맡고 있다. 걷고 사유하는 것을 즐기며,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보고 웃고 울자’ 식의 경험론주의를 지향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영화, 공연, 전시회감상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의 쾌락을 만끽 중이며, 날씨 좋은 계절에는 서울근교든 장거리 장소든 여행할 곳들을 찾아 몸을 통한 독서를 실행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에서 ‘문화소믈리에, 최따미’라는 타이틀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며, 예스24 파워문화블로거 및 네이버 오늘의 책 선정단, tv5monde한국에서 프랑스영화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쓰기’를 좋아하는지라 “평생 글과의 인연은 떼려야 뗄 수 없을 것이다”라는 포부를 지닌 그녀다. 자칭 컬처 소믈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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