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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그룹 뮤직비디오의 답습과 반복

배시시 계통의 수많은 뮤직비디오가 죄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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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이 인기를 끈다 싶으면 우르르 그것을 따라 하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생리를 들 수 있다. 줏대 없이 경향에 복종하는 태도에 의해 시종여일한 뮤직비디오가 발생하는 풍습이 강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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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봐도 심상은 한결같다. 파스텔톤 혹은 형광색의 화려하고 고운 색감, 동화나 만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예쁘장한 세트, 멤버들끼리 웃고 즐기는 모습이 공통되게 나타난다. 여기에 가끔 영어로 된 의성어와 의태어 CG, 외국 만화에서 볼 수 있는 말풍선이 옵션으로 들어가 또 다른 유사점을 만든다. 요즘 걸 그룹 뮤직비디오들은 이와 같은 공식을 복사해 전시한다. 덕분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조상님들의 말씀을 매일매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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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나무, 베스티, 씨스타, 라붐, 씨엘씨, 밍스 뮤직비디오 캡처

 

주류 걸 그룹이 내세울 수 있는 콘셉트는 이른바 '삼(三)시'로 한정된다. 섹시, 후까시, 배시시. 과한 노출과 농염한 행동으로 관능미를 연출하거나 거칠고 파워풀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 내내 밝게 웃음으로써 순진함과 발랄함, 깜찍함을 어필하는 것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첫 번째 스타일은 선정성, 노이즈 마케팅에 따른 부정적 인식 때문에 신인은 꺼리는 편이다. 두 번째 아이템은 이블의 「우린 좀 달라」, 와썹(Wa$$up)의 「Wa$$up」, 소나무의 「Deja Vu」 등이 대중 선호도가 떨어짐을 증명했다. 따라서 많은 걸 그룹이 위험부담이 적고 다수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명랑-깜찍의 노선을 택한다.

 

답답한 것은 배시시 계통의 수많은 뮤직비디오가 죄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행동의 점철, 예쁜 그림의 나열이 물결을 이룬다. 미용을 받고, 파티를 즐기며, 음식물을 입가에 묻히면서 먹는 장면은 감초다. 여기에 디자인을 강조한 인테리어와 생활용품, (타자기, 다이얼식 전화기, 구형 CRT 텔레비전 등)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빈티지 소품 전시가 획일화의 중요한 부분을 장식한다. 쏟아지는 양은 많으나 특정 이미지에만 집착하는 뮤직비디오의 범람으로 오히려 따분함이 가중된다.

 

산뜻한 광경에의 완고한 추구는 동일한 장소 헌팅으로 이르기도 한다. 걸스데이의 「나를 잊지마요」, 라붐의 「어떡할래」, 레드벨벳의 「Be Natural」, 플레이백의 「Playback」, 앤화이트의 「천국」, 헬로비너스의 「난 예술이야」 등의 일부 장면은 같은 공간에서 촬영됐다. 써니힐의 「그해 여름」, 에이핑크의 「LUV」,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처럼 먼저 언급한 작품들의 공통 배경과 유사한 조건인 넓은 창, 높은 천장, 하얀 벽을 만족하는 세트에서 찍은 뮤직비디오들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참신한 연출을 위한 상상력이 부족하면 새로운 것을 찾고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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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걸스데이, 라붐, 플레이백, 헬로비너스, 앤화이트,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캡처

 

고만고만한 영상의 행렬은 첫째 디지페디, 룸펜스, 주희선, 홍원기 등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감독에게 일이 집중되는 관행에 기인한다. 이들이 걸 그룹 외에도 많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다 보니 이미 했던 방식과 표현을 답습하는 듯한 현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요인으로는 어떤 것이 인기를 끈다 싶으면 우르르 그것을 따라 하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생리를 들 수 있다. 줏대 없이 경향에 복종하는 태도에 의해 시종여일한 뮤직비디오가 발생하는 풍습이 강화된다.

 

이 외에도 여러 요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서상으로는 사랑의 설렘이, 외적으로는 쾌활함이 제일의 슬로건이 되는 걸 그룹의 선천적 한계, 아이돌 시장의 지나친 팽창, 가수 제작자와 뮤직비디오 감독의 암묵적 이해관계 성립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엇비슷한 포맷의 보편화에 일조한다. 여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을 뫼비우스의 띠다.

 

어차피 뮤직비디오는 형상과 장면에 의존하며 이것들을 부각하는 소산이다. 더욱이 가수와 노래를 홍보하는 브로슈어나 마찬가지니 대중의 눈을 빠르게 사로잡을 그림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뮤직비디오는 작가의 개성 어린 숨결이 들어가는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익숙한 성분과 틀을 내보이는 영상이 즐비한 상황이 그래서 씁쓸하다.

 

2015/08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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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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