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승하는 자연사일까, 타살일까?
역사학자 신명호 교수가 말하는 진짜 정명공주 이야기
불행히도 영창대군이 태어난 이후부터 선조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영창대군을 보았을 때 선조의 나이가 이미 55살이었으므로 당시로서는 노년이기도 했다. 56살이 되던 해 3월부터 선조는 병석에 누웠는데 좀처럼 호전되지가 않았다.
그림설명 드라마 <화정> 속 선조. 선조는 찹쌀밥을 먹다 위중해져 죽음을 맞이했다.
선조의 승하는 자연사인지 광해군의 음모 속 타살인지, 추측이 가득하다.
불행히도 영창대군이 태어난 이후부터 선조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영창대군을 보았을 때 선조의 나이가 이미 55살이었으므로 당시로서는 노년이기도 했다. 56살이 되던 해 3월부터 선조는 병석에 누웠는데 좀처럼 호전되지가 않았다. 10월 9일에는 침상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려고 하다 기절하기도 했다. 56살의 선조는 이미 초겨울 바람도 견디지 못할 정도로 노쇠해져 있었다.
기절 이후 선조는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요양이 필요했다. 골치 아픈 왕좌에 욕심을 부리다가는 진짜 죽을지도 몰랐다. 선조는 세자 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거나 대리청정을 시키려고 했다. 아마도 당시 선조는 일단 건강을 회복한 후 대리청정을 취소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영의정을 비롯한 대신들이 반대했다. 요양하면서도 충분히 국사를 돌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슨 일인지 위급하던 선조의 건강이 며칠 사이에 갑자기 좋아졌다. 그러자 선조는 기왕의 명령을 취소하고 다시 국정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약으로 원기를 보충하면서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좋아질 것 같던 선조의 건강은 다시 악화되었다. 한편 선조가 세자 광해군에게 전위 또는 대리청정 시키려다 취소하자 광해군 쪽 사람들 사이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유영경이 중간에서 선조의 뜻을 받들어 세자 광해군을 폐하고 영창대군을 추대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도 팽배했다.
하지만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2월 1일 오후에 발생했다. 지난밤 선조는 잠도 잘 자고 오전 일정도 아무 문제없이 처리했다. 그런데 점심 때 올라온 찰밥을 들던 선조는 갑자기 기가 막히면서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워낙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손써볼 틈도 없이 선조는 승하하고 다음날 광해군이 왕위에 올랐다.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광해군일기』에서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미시 오후 1-3시 에 찹쌀밥을 진어했는데 상에게 갑자기 기가 막히는 병이 발생하여 위급한 상태가 되었다.
왕세자가 입시하였다.
대신들이 아뢰기를, ‘옛 예법에 의하면 부인의 손에서 운명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내외로 하여금 안정한 자세로 기다리게 하소서.’ 하였다.
대신이 어의 허준 등을 데리고 들어가서 진찰을 하였으나 상의 기후는 이미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신들이 모두 울면서 나왔다.
조금 있다가 곡성이 대내에서 밖으로 들려 왔다. 주상이 승하하였다.
위의 기록에 의하면 선조는 2월 1일의 오전 일정을 평상시와 다름없이 소화했다. 아침 식사 후 편전으로 출근해 국정현안을 처리했던 것이다. 고민을 하며 점심으로 찹쌀밥을 들던 선조는 갑자기 기가 막혀 혼수상태에 빠졌다.
실록의 기록으로 볼 때, 선조의 승하는 자연사일 수도 있고 타살일 수도 있다. 노년의 선조가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승하했을 가능성도 충분하고, 반대로 멀쩡하던 선조가 찹쌀밥을 먹다가 갑자기 위중해진 상태에서 세자 광해군의 명령에 따른 약을 쓰다 승하했다는 점에서 찹쌀밥과 약에 의혹의 눈초리를 내는 것 역시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계축일기』에는 ‘선조대왕께서 돌아가신 그때 약밥인지 고물인지를 잡수시고 갑자기 구역질을 하시다 위급해지셨다. 당시 근방의 궁녀들이 모두 광해군의 심복이었던 상황에서 선조대왕께서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 하나도 이상하다 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의혹은 말 그대로 의혹일 뿐이고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타살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물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선조의 승하가 자연사인지 타살인지는 여전히 논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림설명 선조대왕목릉.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으며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 함께 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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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강원도 깊은 산골에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났다. 역사를 특히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강원대학교 사학과에서 한국사를 공부했으며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조선시대 왕실사를 전공하여 『조선초기 왕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선임연구원과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를 거쳐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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