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18세기 조선 선비들의 ‘닉네임'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저자 한정주 인터뷰
늘그막에 시인의 길에 들었다고 해서 늦게 찾아온 봄이라는 뜻의 ‘늦봄’이라는 호를 가진 문익환, 알바트로스의 별칭인 ‘바보새’라는 호를 사용한 함석헌, 옹기 장사를 하며 신앙을 지킨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새겨 ‘옹기’라는 호를 썼던 김수환 추기경 등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호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 소개되어 있다.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정도전, 박지원, 김시습, 정조 등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간 천재들의 호(號)를 최초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그들은 세상에 초연해지고자 하는 바람과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다짐을 호(號)에 담아서 표현했다. 중간 중간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시와 산문은 이 책의 백미(白眉)다. 선비들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산문을 통해 왜 자신이 이러한 호를 쓰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저자 한정주는 역사 평론가 겸 고전 연구가. 고전ㆍ역사 연구회 뇌룡재(雷龍齋)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20여 년 동안 사회 과학서와 역사서, 고전 등을 탐독하는 과정에서 2005년 무렵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국사 전쟁의 기술』,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조상의 거상, 경영을 말하다』, 『천자문뎐』, 『한국사 천자문』, 『영웅격정사 - 인물 비교로 보는 사기와 플루타르크영웅전』이 있다.
무려 100개 넘는 호(號)를 가졌던 추사 김정희
조선 선비들의 호(號)에 대해 집필하셨는데요. 호(號)란 무엇이며, 왜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알아야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조선 선비들은 세 가지 이상의 호칭이 있었습니다. 첫째가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명(名 : 이름)이고, 둘째는 성인식을 치른 후 이름을 대신하여 사용하는 자(字)입니다. 이 두 가지 호칭은 자신의 뜻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어른들이 지어주는 호칭입니다.
반면 호(號)는 선비들이 마음대로 자유롭게 지어서 사용하는 호칭입니다. 이 때문에 조선 선비들은 호에 자신의 뜻과 생각은 물론 사상과 철학 심지어 개성과 취향까지 담았습니다. 자신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자기표현의 방법으로 삼은 것입니다. 더욱이 명(名)과 자(字)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단 한 개로 정해져 있지만 호(號)는 수십 혹은 수백 개를 지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호에 담긴 뜻과 배경만 알아도 그 사람의 삶과 철학을 모두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율곡이나 퇴계라는 호는 모두 알고 있지만 정작 왜 이이와 이황이 그러한 호를 지어 사용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뜻도 모르면서 쉽게 부르기보다 그 호를 지어 사용한 이유와 배경을 알게 되면 그 인물은 물론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아기자기한 재미까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요즘 잘나가는 다른 책들에 비해 분량이 많습니다. 700쪽이 넘는 책을 저술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이 36명이고, 부록에 수록한 인물들까지 합하면 조선 105명, 근ㆍ현대사 72명 등 200명이 넘습니다. 특히 사실에 근거해 입체적으로 인물의 호를 조명?분석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직접 지은 글이나 옛 문헌 속에서 관련 텍스트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분들이 남긴 개인 문집(文集)은 물론 조선왕조실록, 동국여지승람, 연려실기술 등 각종 역사서와 지리서 등의 옛 문헌까지 두루 조사?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기 위해 수많은 도서관의 고서적을 뒤지고 다녔고, 고서적을 취급하는 중고책방들도 숱하게 방문했습니다. 집필할 때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지만, 사실 인터넷에서 찾을 수 있는 고서적 자료는 서지정보 수준이지 그 책에 어떤 내용이 실려 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아마 적어도 수 백 권의 문집과 고서적을 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도서관이나 중고책방을 뒤지다 집에 들어가면, 가족들이 제 몸에서 고서적이나 헌책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가 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특히 매월당 김시습에 관한 자료를 조사하면서, ‘탐매(探梅) 14수’와 ‘달을 주제로 한 11편의 연작시’를 찾아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동국대중앙도서관에서 몇 달 동안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을 탐독하고 또 탐독하면서 찾아낸 기록이기 때문입니다.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분량 관계상 본문에서 다루지 못하고 부록에서 다룰 수밖에 없었던 인물들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큽니다. 그래서 기회가 주어진다면 분량에 상관하지 않는 ‘호 백과사전’을 집필해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본문에서 36명 조선 선비들의 호(號)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셨습니다. 수많은 선비들 가운데 36명을 고른 기준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역사에는 일세를 지배하는 시대적 추세와 정신 사조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자면 저는 15세기는 ‘창업’의 시대였고, 16세기는 ‘사림’의 시대였고, 17세기는 ‘보수’의 시대였고, 18세기는 ‘혁신’의 시대였고, 19세기는 ‘쇄국’의 시대였고, 20세기는 ‘근대’의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인물 선정은 크게 보면 이러한 저의 시대사와 역사인식에 바탕 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시대적 추세와 정신 사조를 대표 혹은 대변할 수 있는 인물들의 호를 조명하면서, 그 시대에 대한 역사적 이해와 사회적 분석까지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15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삼봉 정도전, 16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율곡 이이, 17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우암 송시열, 18세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성호 이익 등의 방식으로 인물을 선정한 다음 작업하고 그들과 관련한 혹은 그 시대와 관련된 인물들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보시면, 정도전의 호 삼봉에는 ‘역성혁명의 야망’이 담겨 있고, 이이의 호 율곡에는 ‘성리학 유토피아의 사상’이 담겨 있고, 송시열의 호 우암에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이데올로그의 삶’이 담겨 있고, 이익의 호 성호에는 ‘새로운 학문과 지식의 기운’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선비의 인품과 사상이 담긴 호(號)를 연구하다 보면 그만큼 그 선비의 인생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을 집필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선비가 있다면 누구였는지, 또 그 까닭은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권력과 출세를 멀리한 채 처사(處士)의 삶을 살면서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을 견지하고 또한 백성의 고통을 직시하면서 거침없는 직언(直言)을 마다하지 않았던 남명 조식은 이 시대가 진정 필요로 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식의 호에 담긴 삶과 철학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반면 주자학만이 천하의 진리라고 외치면서 사상을 통제하고, 허구로 가득 찬 사상의 정통성을 기반으로 비판세력이나 경쟁세력을 탄압하고 정치권력을 독점했던 우암 송시열의 경우는 ‘이념 몰이와 마녀 사냥’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우리 시대 보수우익 세력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호에 담긴 두 인물의 삶과 철학을 조명하면서 작가로서 혹은 지식인으로서 제 자신을 성찰해볼 수 있었습니다.
추사체를 창시한 김정희는 무려 100개가 넘는 호(號)를 지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선비들도 보통 5~6개의 호(號)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호칭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을까요? 때로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몰라 헷갈렸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정희가 수백 개의 호를 사용했다고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고 부르는 호는 추사와 완당 등 대표할 만한 호 한 두 개입니다. 정약용도 십여 개가 넘는 호를 지었지만, 다산과 여유당이 그를 대표하는 호입니다. 가까운 사람들이야 그 사람이 호를 새롭게 지어 부를 때마다 그 배경과 이유를 알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그 사람을 대표하는 한 두 개의 호를 사용해 호칭했습니다. 수 십 수 백 개의 호를 사용한 사람도 특정한 시기나 상황에 따라 호를 지었을 뿐, 모든 호를 다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호의 수명이 짧게는 몇 달 혹은 몇 년에 불과했고 심지어 일회성 호도 있었을 것입니다. 대개 그 사람을 대표하는 호 한 두 개로 기억하고 불렀기 때문에, 수많은 호로 인해 혼란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부록에서 조선 시대의 선비들뿐만 아니라 근현대사를 이끈 주인공들의 호(號)에 대해서도 분석하셨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호(號)로 가장 잘 드러낸 사람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조선의 호 문화는 18세기를 기점으로 달라집니다. 18세기 이전에는 유학의 관습과 규범을 벗어나지 않거나 성리학 사상에 충실한 호를 지었다면 18세기에 들어와서는 보다 개성적이면서 자기 취향이 강한 호를 지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현대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뚜렷해집니다. 특히 한자(漢字)를 사용한 고상하고 우아한 호를 고집하기보다 한글로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호를 짓는 분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예를 들자면 늘그막에 시인의 길에 들었다고 해서 늦게 찾아온 봄이라는 뜻의 ‘늦봄’이라는 호를 가진 문익환, 가난해도 욕심 없이 맑은 삶을 살겠다는 뜻을 담아 ‘신천옹’ 혹은 알바트로스의 별칭인 ‘바보새’라는 호를 사용한 함석헌, 옹기 장사를 하며 신앙을 지킨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새겨 ‘옹기’라는 호를 썼던 김수환 추기경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지극히 평범한 호이지만, 거기에 담긴 뜻을 알게 되면 누구나 그분들의 정체성 즉 삶과 철학을 단박에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작호(作號)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신의 호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어떤 방법으로 지으면 좋은지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아호(雅號)’라고 해서 우아하고 고상한 호 특히 한자만으로 호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이것은 호에 대한 오해이자 편견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오해와 편견 때문에 호가 나이가 많은 분들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만의 문화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저는 호는 18세기 조선 선비들의 ‘닉네임’이었다고 봅니다. 남에게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하며, 어떤 생각을 품고, 무슨 취향을 갖고 사는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호를 생각한다면, 마음 가는 대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지을 수 있는 것이 호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어떤 분이 자신은 소보루 빵을 너무 좋아해서 이메일 아이디를 ‘소보루’라고 한다고 하면서, 호가 닉네임이라면 소보루도 호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당연히 된다고 했습니다. 언어문화와 시대 배경이 달라졌는데, 예전에 한자로 호를 지어 사용한 것처럼 다른 언어로 호를 짓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해 거짓이나 가식으로 짓지 않고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하는 호라면 어떻게 짓더라도 사람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것입니다.
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한정주 저 | 다산초당
『호(號), 조선 선비의 자존심』은 정약용, 이이, 김홍도, 이황, 정도전, 박지원, 김시습, 정조 등 조선의 역사를 이끌어간 천재들의 호(號)를 최초로 분석하고 집대성한 책이다. 그들은 세상에 초연해지고자 하는 바람과 세상을 개혁하고자 하는 의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다짐을 호(號)에 담아서 표현했다. 중간 중간 저자가 직접 번역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선비들의 아름다운 시와 산문은 이 책의 백미(白眉)다. 선비들은 시를 통해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고, 산문을 통해 왜 자신이 이러한 호를 쓰게 되었는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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