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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히어런트 바이스> 켜라, 파장을 맞춰라, 빠져나와라!

제목도 그렇고 이게 대체 뭔 소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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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60년대 시절, 히피들이 왕초라 불렀던 티모시 리어리 교수가 개발한 표어에 맞춘 방식으로 감상하면 재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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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인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거론되는 이는 동명의 소설을 쓴 원작자 토마스 핀천이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자이며, 소설마저 어렵게 쓰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이런 우려들에 관해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이 한 말은 오직 이것 뿐이다. “토마스 핀천의 원작보다는 웃기게 찍으려 노력했다” 실로 재밌는 말이었다. 웃음은 넣었지만, 원전의 이야기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작품은 작년 12월에 미국에서 개봉해 굉장한 호불호만 일으킨 채 흥행에 실패했고, 한국엔 IPTV로 ‘개봉’ 했다. 조금 있으면 DVD / BD로 발매되기도 하고, 나 역시 몇 개월 전에 IPTV를 통해 관람했으니 이를 크게 나쁘게 보진 않는다. 그래도 극장의 큰 화면으로 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다.


작품의 제목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 찾아봤다. ‘고유의 하자’ 란 의미가 나온다. 도대체 어떻게 홍보해야 할 지 몰랐을 법한 배급사 홍보 담당자의 고뇌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제목부터 난해한 이 작품은 의외로 초반 20분동안 친절하게 기본 줄거리를 모두 설명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 기본적으로 ‘탐정 영화’ 다. 1970년의 어느 날 밤. 마약에 중독된 삶을 살고 있는 ‘히피’ 사설탐정 닥 스포텔로 (호아퀸 피닉스) 에게 전 애인인 샤스타 (캐서린 워터스톤) 가 불쑥 찾아온다. 그녀는 간만에 본 닥에게 다짜고짜 부탁 겸 의뢰를 한다. 바로 그녀의 현 애인인 부동산 업자인 마이클 울프먼 (에릭 로버츠) 이 정신병원에 갇힐 처지라는 것이다. 문제는 정신병원에 넣자는 계획을 세운 사람이 울프먼의 아내, 그 아내의 정부였다. 그들은 샤스타에게 범행에 가담하자고 꼬드기는데 그녀는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닥에게 조사를 부탁한다. 그리고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쯤 샤스타가 실종된다. 닥은 자신을 증오하면서도, 어째 또 놀려먹고 싶어하는 듯한 ‘빅풋’ 경위 (조쉬 브롤린) 와 파트너 아닌 파트너가 되어 이 기이한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그러나 작품의 이야기 구조는 도입부 빼고 정말 불친절하다. 작품은 본래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다 슬그머니 삐딱선을 타며, 점점 심하게 이야기를 꼬아간다. FBI와 거대한 마약 카르텔이 등장하며, 매카시즘과 네오 나치가 연관된다. 큰 비중도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나올 타이밍이 아닌 것 같은데 뜬금없이 등장하고 퇴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복잡한 이름과 직함이 마구 공개되어 관객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닥 역시 사건을 잘 해결한다기 보다는 이리저리 휘둘리기만 하는 것 같다. 밤과 낮의 시간대가 쇼트 하나의 차이로 뒤바뀌며, 결국 관객의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정도가 된다. 지금 보고 있는 이야기가 현실이야, 아님 마약쟁이의 환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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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로 HIGH! 한 기분이다


크리스티안 생 장 폴랭의 저서인 히피와 반문화』 에 이런 언급이 있다. ‘혁명의 시대는 늘 이상화되지 않던가’. 미국 역사에서 베트남전을 가장 순수하고 활기차게 비판했던 히피들은 1969년. 찰스 맨슨 패밀리가 저지른 집단 살인사건으로 일종의 직격탄을 맞아 사상, 정신적으로 쇠락해 갔다. 작품은 쇠락의 시대 속에서 허허실실하게 살아가는 닥의 모습과 더불어, 그가 원치 않은 우연과 필연으로 끊임없이 난감한 상황에 처하는 모습도 함께 담아낸다. 히피들은 여전히 시대와 자신들에 대한 낭만을 품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닥으로 대표되는 히피들에게 여러 구실을 붙이며, 암적인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 암은 보이지 않게 알아서 창궐하고 있는 중이다. ‘하자’가 있는 족속들끼리 서로 끌어안아도 모자랄 판에 배척하고 무너뜨린 결과, 순수함이 미덕이 되는 시대는 더 이상 없어지게 된다. ‘이상화된 순간’ 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시대의 흐름에 속에서 사라져간 한 문화와 사람들을 상당히 희한한 이야기 방식으로 담아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나 보낸다. 희한한 이야기란 원작의 난해한 흐름을 말한다. 작품은 이 이야기 방식을 고수하면서도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정말 약을 한 기분이다.


이번 작품은 영상적인 측면에서 70mm 필름으로 찍은 전작 <마스터>를 연상시켰다. 구레나룻에다 한껏 힘을 준 호아퀸 피닉스의 얼굴주름과 프레임을 가득 채우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소위 말하는 ‘얼굴의 풍경’을 잡아내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작품은 무심하게 대부분의 순간들을 실내 공간에서 인물들 간의 클로즈업으로 담아낸다. 그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무심하게 담아낸 결과, 작품의 영상은 화면 안의 프레임 전체를 ‘일종의 총체적인 덩어리’로 보이게 만든다. 닥과 마약에 항상 취한 채 히피즘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변 인물들, 그 풍경을 못마땅하게 여겨 박해하거나 이용해대는 대비를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영상은 크게 돋보이진 않지만, 배경이 되는 ‘1970년’ 이란 시대의 공기를 간접 체험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작품을 보면서 때로는 킬킬거리며 웃고, 때로는 너무 지루해서 이게 뭔 소리냐 하다가 어느 순간 등장하는 호아퀸 피닉스의 눈물을 보고 어떤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면 그게 충분한 감상인 셈이다.


여태껏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작품들은 어떤 이야기이건 간에 정교하게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인히어런트 바이스>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그의 작품을 구조 대신 ‘인상’으로 이해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아귀보다 이야기 속 인간들을 보며 어떤 감정을 느꼈느냐가 더 중요한 작품이 됐다. 이 역시 철저히 계산되지 않았겠느냐는 투로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당히 참신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60년대에 히피들이 왕초라 불렀던 티모시 리어리 교수가 고안한 표어에 맞춘 방식으로 감상하면 재미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를)켜라, (이성적 이해 보다는 감성적으로 공명할 수 있는)파장을 맞춰라, (평상시 영화를 보던 방식으로부터)빠져나와라. Turn On, Tune In, Drop Out! 그런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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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사운드트랙에는 ‘Le Fleurs’ 라는 좋은 곡이 있는데, 32살에 요절한 가수인 미니 리퍼튼이 불렀다. 미니 리퍼튼은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장모 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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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홍준호

네이버(에서 전혀 유명하지 않은)파워블로거, 대학졸업생, 딴지일보 필진, 채널 예스에서 글 쓰는 사람. 혼자 작품을 보러 다니길 좋아하고 또 그런 처지라서 코너 이름을 저렇게 붙였다. 굳이 ‘리뷰’ 라고 쓰면 될 걸 뭐하러 ‘크리티끄’ 라고 했냐 물으신다면, 저리 해놓으면 좀 고상하게 보여서 사람들이 더 읽어주지 않을까 싶어서다. 이거 보시는 분들 글 마음에 드시면 청탁하세요. 열과 성을 다해 써서 바칠께요. * http://sega32x.blog.m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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