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전건우의 대중소설로 사색하기
『로드』그리고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코맥 매카시『로드』
4월인데도 제법 쌀쌀하다.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시퍼런 바닷물은 매정할 정도로 차디찼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며, 그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한 척의 배를 보며 나는 거대하고 축축한 절망과 마주했다.
작년 이맘때
4월인데도 제법 쌀쌀하다. 작년 이맘때도 그랬다. 시퍼런 바닷물은 매정할 정도로 차디찼다. 넘실거리는 바다를 보며, 그 속으로 점점 가라앉는 한 척의 배를 보며 나는 거대하고 축축한 절망과 마주했다. 텔레비전에서는 하루 종일 세월호 소식을 전했다. 거짓 희망이 난무했다. 확인되지 않은 말들과 확인된 실수들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심성이었으리라.
그즈음 몇 명의 작가와 만났다. 모두 대중소설을 쓰는 이들이었다. 얼굴이 밝지 않았다. 세월호가 남긴 상흔은 깊고 진했으며 쉬이 아물지 않았다. 나는 꿈속에서도 몇 번이나 그 아이들의 모습을 봤다. 창문을 두드리던 손들과 동영상 속에서 몸을 웅크린 채 대기하고 있던 그들의 모습이 나를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당분간은 누가 죽는 소설을 못 쓰겠어.”
작가 중 한 명이 침울한 표정으로 털어놓았다.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작가들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당시 나는 좀비가 창궐하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이 떼로 죽어나가는 소설이었다. 결국 그 소설은 미완성인 채로 아직까지 컴퓨터 폴더 안에서 잠을 자고 있다.
나는 세월호가 가라앉는 그 현장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감당할 수 없는 공황에 빠졌다. 처음에는 곧 구조된다고 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첫 보도를 믿었으리라. 그저 어딘가 좀 이상이 있었던 것뿐이라고, 금방 수습이 될 거라고 그리 생각했으리라. 거대한 물음표처럼 기우뚱 기운 세월호를 보면서도 ‘저 정도면 금방 모두 구조할 수 있겠구나…….’ 그리 생각했다. 속속 들려오는 구조 소식에 그것 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국민 모두가 알게 되었다. 수많은 아이들이 배 밑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눈앞이 빙글빙글 돌았다. 4월의 바다는 무심할 정도로 차가웠다. 뉴스에서는 매일 수온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도했다. 그걸 보지 않더라도 그 차가운 물속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는 사실쯤은 쉽게 알 수 있었다.
한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뉴스를 보며 분노할 뿐이었다. 책을 읽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음악을 듣는 것도 힘들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었다. 세월호가 남긴 충격, 그리고 그 속에서 드러난 국가의 무능함과 인간의 무력함은 우리 모두에게 크나큰 트라우마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 앞에서 나는 세상의 종말을 떠올렸다. 만약 이 세상이 운명을 다하고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꼭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휩싸인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소문이 돌고 그 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사건이 커진다. 그때가 되면 인간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된다. 그저 지켜보거나 함께 죽어갈 뿐.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은 깊은 슬픔에 젖은 채 죄인처럼 숨어 지낸다.
일본에 쓰나미가 밀어닥치는 영상을 봤을 때도, 여객기가 쌍둥이 빌딩을 들이박는 장면을 뉴스 속보로 봤을 때도 나는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세상의 종말. 어찌할 수 없는 무력감. 그리고 좌절과 공포.
작년 이맘때, 나는 매일 밤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잠들었다. 혼자 잠들기가 무서웠다. 눈을 뜨면 이 아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이유 없는 공포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래서 손을 놓지 않았다. 아들의 보드랍고 작은 손을 잡고 있으면 살아있다는 안도감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변함없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는 두 부자(父子)
종말을 다룬 작품은 수도 없이 많다. 영화만 해도 셀 수 없을 정도이고 드라마와 책까지 합하면 그 수를 짐작조차 하기 어려워진다. 로버트 매커먼의 『스완송』이나 스티븐 킹의 『스탠드』처럼 이미 고전이 되어버린 종말 소설도 많지만 영미권에서는 911 테러 사건 이후 부쩍 종말 문학의 수가 늘어났다. 그 중 독보적인 작품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끌었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코맥 매카시의 『로드』이다.
『로드』는 이미 세상이 멸망해 버린 지점에서 시작한다.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인류는 사라졌다. 대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한 이유조차 모른다.(현실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아직까지 세월호가 왜 가라앉았는지, 왜 그리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했는지 진실을 알지 못한다. 단지 짐작만 할 뿐이다.) 세상은 온통 잿빛이다. 대낮에도 흐리고 뿌옇다. 그 회색의 길을 한 아버지와 아들이 걸어간다. 두 사람은 생존자들이다. 남쪽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걷는 두 부자(父子)의 고생담이 『로드』의 주된 내용이다. 아버지와 아들은 인간사냥꾼을 만나기도 하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기도 한다. 세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그들에게는 자살을 위해 남겨둔 총알 두 알이라는, 무시무시한 희망 하나만이 남았을 뿐이다.
코맥 매카시가 『로드』에서 그리는 세상은 끔찍하기 그지없다. 짧고 무뚝뚝한 문장으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종말의 광경에 동참하다 보면 두 부자가 걸어가는 길이 곧 지옥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로드』를 처음 읽던 때, 나는 처음 몇 장을 넘기자마자 이 소설의 끝이 비극일 것이라는 강한 예감을 느꼈다. 『로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지는’ 여타의 종말 소설들과 분명 달랐다.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좀처럼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이를 테면, 『로드』의 회색 세상은 작년 우리의 마음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던 저 차가운 바다와 비슷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희망을 거둬야 했다. 처음에는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지리라 희망했지만 그것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더 많은 잠수사와 새로운 장비들이 투입되었지만 언제나 한 박자쯤 늦었다.
『로드』를 읽는 일은 흥미로운 동시에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매 번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할 때마다 두 사람을 응원하면서도 비릿한 슬픔과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남쪽 바다’에 절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곳에 도착해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하여 소설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나는 책장 넘기기가 두려웠다. 두 사람의 최후와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로드』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말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는 조금 울었다. 슬픔과 안도가 뒤섞인 복잡한 울음이었다. 변함없이 절망적인 세상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은 존재했다. 그 희망의 근거가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사실에 나는 위로를 받았다.
아직 아물지 않은 세월호의 상처가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던 4월 어느 날 나는 『로드』를 다시 읽었다. 몸이 좋지 않아 오래 독서를 할 수가 없었다. 이 짧은 소설을 몇 주에 걸쳐서 조금씩 읽어 내려갔다. 그 사이 세월호를 둘러싸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일 년이 지났건만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정치적인 구호와 물대포가 난무하는 집회 현장을 바라보며 나는 또 한 번 절망을 느꼈다. 최루탄 연기가 뒤덮은 밤하늘은 언뜻 『로드』 속 회색빛 세상과 닮아 보였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과 쓸 데 없는 말들과 거짓 정보가 난무했다. 일 년 전과 똑같았다. 책임자들이 모두 입을 다무는 것까지도.
나는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잃은 가족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련다. 그들이 지난 일 년 간 걸어온 종말의 세상에만 주목하련다. 절망과 분노와 슬픔이 범벅이 되어 잿빛으로 물들었을 그들의 지난 일 년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에만 슬퍼하련다. 그리고 『로드』의 마지막 장처럼, 그들의 삶에도 한 줄기 희망이 존재하기를 기원하련다. 이 변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조용히, 그리고 간절하게.
로드코맥 매카시 저/정영목 역 | 문학동네
소설의 배경은 대재앙으로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은 지구. 폐허가 된 그곳을,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걸어간다. 남쪽을 향해가는 그들에게는, 생활에 필요한 얼마 안 되는 물품들을 담은 카트와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자살용으로 남겨둔 총알 두 알이 든 권총 한 자루가 전부다. 남자와 소년은 밤마다 추위에 떨었고, 거의 매일 굶주렸다. 식량은 늘 부족했고 숲에 만드는 잠자리는 춥고 불안했다. 수일을 굶다가 운 좋게 먹을거리를 만나면 그들은 주린 배와 카트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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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아빠, 백수, 소설가, 전업작가로 살아간다. 운동만 시작하면 뱃살이 빠지리라는 헛된 믿음을 품고 있다. 요즘 들어 세상은 살 만하다고 느끼고 있다. 소설을 써서 벼락부자가 되리라는 황당한 꿈을 꾼다.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3』,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단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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