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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낫 어 커플! 연애 아니야! 그래도 여기 있을 거야!

연인들의 공간,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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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직감적으로 안다. 어떤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를 기준으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이야! 그래서 연애시장의 잉여는 특정 공간에 가는 것을 꺼리며,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는 그토록 뻔한 것이다. 가지 않으면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할 만큼 특정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의 필수이며 이외의 것을 배척한다.

‘연애’라는 말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남녀가 서로 그리워하고 사랑함.’ 이 ‘남녀’라는 표현에서 성별이 삭제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국립국어원은 빗발치는 일부 집단의 항의에 굴복하여 다시 연애를 남녀 간의 문제로 한정 지었다. 사전적 정의가 뭐 그리 중요하냐고 누군가는 말하겠지만, 명명은 무수한 힘과 정치적 의의를 포함하기 때문에 매우 문제적이다. 어쨌든 연애는, 두 사람이 ‘오늘부터 1일’을 약속함으로써 시작되는 관계로 유독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룰이 많다. 다시 말하면 연애는 그 룰을 통해서 가능해진다. 합의된 룰이 없으면 연애는 성사되지 않는다. 특히 중요한 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사랑을 증명하기. 그리고 이 의무는 결국 소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너무 극단적이라고? ‘연애’라는 관계가 시장의 영역에 포섭된 지는 이미 옛날 옛적으로 새삼스러울 것 하나 없는 사실이다. 낭만성을 걷어내고 나면 남는 것은 데이트 장소의 선정, 특정 기념일에 주고받는 선물의 가격, 썸탈 때 누가 밥값을 내느냐의 치열한 눈치싸움, 커플을 겨냥한 각종 상품과 희한한 데이(Day)들의 맨얼굴이다. (내 사랑은 순수하다 이딴 소리 지껄이지 마라! 하고 분노한다면 그냥 읽지 말고 뒤로 가기 누르시면 됩니당)  


나는 20대의 연애 혹은 결혼 적령기 여성이지만 연애하지 않는다. 연애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액션(소개팅이나 데이트 어플 같은)을 취하지 않으며, 솔로 탈출 몇 계명 같은 가르침도  가뿐하게 무시하는 게으르고(!) 괘씸한(!!) 연애 시장의 잉여다. 연애시장은 연애하지 않는 이들을 ‘하자 있는 잉여’로 낙인찍고 ‘연애의 영역에 들어서고 싶어하는 불쌍한 성냥팔이’처럼 묘사한다. 연애시장의 잉여는 연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어떤 공간으로부터 배제되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당장 떠오르는 것들만 꼽아 봐도 4월의 여의도 공원, 밸렌타인데이의 명동 한복판, 크리스마스 시즌에 로맨틱 코미디를 상영하는 영화관, 커플 동반 모임… 아따 많다. 남자들은 아기자기한 디저트 카페, 옷가게, 영화관 등을 ‘여자 없이 가기 힘든 공간’으로 꼽기도 했다. 


물론 그 공간에 연애시장의 잉여, 즉 솔로를 감지해서 걸러내는 레이저나 백만 볼트 전기가 통하는 철조망이 있는 건 아니다. 경찰 아저씨 여기예요! 잡았다 요놈! 뭐 이런 일이 벌어지거나 스포트라이트가 쫙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직감적으로 안다. 어떤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를 기준으로 분할된다는 사실을. 섣불리 들어섰다가는 큰 화를 당할 것이야! 그래서 연애시장의 잉여는 특정 공간에 가는 것을 꺼리며, 처음 연애를 시작하는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는 그토록 뻔한 것이다. 가지 않으면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할 만큼 특정 공간은 ‘연애’라는 관계의 필수이며 이외의 것을 배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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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귄지 얼마 안 된 주인공들이 남이섬에 데이트를 하러 가는 드라마를 보다 말고 그런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너 남이섬 가본 적 있어…?” 말줄임표가 들어간 이유는 그렇게 묻는 목소리가 애잔했던 까닭이고, 궁예질을 좀 해보자면, 아마 내가 남이섬을 가보지 않은 것을 불쌍히 여긴 듯하다. 이 질문은 연애 경험의 여부와 그 연애의 정황을 감별하려는 시도이다. 남이섬은 어떤 곳인가. 무수한 커플들이 연애의 코드를 남김으로써 그 섬은 데이트의 상징이 되었다. 남이섬에 가본 적 있다는 사실은 연애를 해본 적 있다는 결과를 도출한다. 이것을 남이섬고라스의 증명이라고 내 멋대로 부른다. 그뿐인가. 서울에서 적당히 멀고 마음만 먹으면 1박 2일을 할 수 있는 위치와 잘 갖추어진 시설로 인해, 그 섬에 얼마나 머물렀는지는 곧 그 연애가 어느 정도로 진행됐는지 알려주는 지표로 기능한다. 물론 이 은유는 특정한 집단에만 유효하다. 남이섬에서 멀리 떨어진 비-수도권 거주자들에게는 이 말이 별 다른 공감을 사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남이섬이 아닐 뿐, 전국 아니 전세계 어디에 사는 누구라 해도 자신과 근처 사람들에게 직빵으로 먹히는 ‘우리 안의 남이섬’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오롯이 연애를 위한 공간, 그 곳에 머무는 것이 곧 연애, 하다못해 썸을 의미하는 장소가. 성인 버전으로는 홍콩이 있….


어떤 공간이 추구하는 통일된 그림이 있다. 가령 크리스마스 이브의 호화로운 레스토랑을 상상해보자. 마주 앉은, 젊은, 분위기에 심취할 손님들이 필요하다. 자본주의는 귀신 같이 돈 냄새를 맡기 때문에, 터무니없는 가격이 매겨진 크리스마스 한정판 요리를 비싸다는 내색 하나 없이 주문할 손님이 누구인지 포착한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 한정판 요리는 대체로 2인용이며, 두 잔의 와인을 곁들인 구성이 일반적이다. 그 공간에 연애 시장의 잉여는 들어갈 수 없다. 코난이나 김전일을 열심히 안 읽은 추리 레벨 1이라도 예상할 수 있다. 연애시장의 잉여가 그 공간에 진입을 시도했다가는, 민망함 또는 동물원의 동물 보는 듯한 시선을 얻는다는 것을. 통일된 그림을 망가뜨릴 연애 시장의 잉여는 초대되어서는 안 되는 불청객이다.


비단 연애하지 않는 솔로뿐만 아니라, 연애 관계가 아닌 혹은 아닌 것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공간 점유도 주목 받거나/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일쑤이다. 나는 아직도, ‘유희열의 스케치북’ 프로그램에서 손을 꼭 잡고 있던 두 남성을 향해 개그우먼이 터뜨리던 웃음을 기억한다. 지금도 묻고 싶다. 박지선 씨, 정말 그 두 분이 당신의 농담에서처럼 연인사이였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연인들의 공간에서 ‘연애 관계에 있다고 여겨지지 않는’ 이들의 출현은 그런 식의 공격성과 배척에 노출된다. 이는 세상이 기대하는 ‘정상적인’ 연애 관계 외의 다른 연애 관계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까닭이기도 하다(방청 신청을 할 때 무조건 연인만 오라고 공지했으면 모를까. 만약 그랬다면 더더욱 입을 다물어야 했고). 이 문제에서 연애를 발라내서, 두 남성이 연인이 아니라고 가정해도 논점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연인이든 아니든, 그 공간에 있다고 해서 타인에게 웃음거리가 될 이유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이 글이 ‘솔로도 크리스마스의 레스토랑에 가고 싶어 뀨잉’은 아니다 네이버(naver). 연애인구 여러분 여러분이 거기 있다고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여. 문제는 특정 상태를 기점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그 공간을 점유할 자유를 부여하고 박탈하는 권력이다. 인종이나 계급, 성별에 따라 공간이 얼마나 자유를 제약하는지 생각해보면 실감날 것이다. 여성의 빼앗긴 밤길, 장애인의 빼앗긴 이동권, 시민들의 집회의 자유…. 특정 공간에 들어갈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적 약자가 겪는 설움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기 때문에 대학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고, 몽고메리 시에서는 버스 안에서 흑인과 백인의 자리를 나누는 데 저항하는 운동이 벌어졌다. 광화문의 세월호 유족들은 경찰차로 막아놓은 공간에 갇혀 있다. 소위 말하는 자유 민주주의 시대지만 권력은 도처에 훨씬 더 미세하고 촘촘한 형태로 거미줄처럼 얽혀 공간을 분할하고 행동과 생활을 제약한다. 법으로 금지하거나 무력을 행사하는 경비원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존재’를 바라보는 시선과 공포가 연애시장의 잉여를 저격한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시장의 잉여 상태를 탈출하고자 필사적이 되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비슷한 맥락에서 꾸준히 화제가 되는 것이 바로 ‘혼밥’이다. 혼자 밥 먹기, 의 준말인 이 신조어는 연애 여부와 필요충분조건을 맺지는 않지만, 종종 솔로의 레벨을 테스트하는 척도로 쓰인다(최고 레벨이 아마 샐러드바와 고깃집). 혼밥은 집에서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식당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이루어지는 경우에 한한다. 식당은 밥을 먹는 동시에 ‘밥을 먹는 나’를 남들에게 보이는 공간이다. 소수의 식당을 제외하면 자리는 2인석부터 시작하며, 2인 이상부터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판매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 시즌 1에서 여자 주인공은 해물찜을 먹기 위해 소개팅을 하기도 했는데, 이게 좀 극적인 설정이라 치더라도 식당에서 같이 밥 먹을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일상에서 흔하다.


혼밥이 문제가 되는 지점은 여기다. 식당은 대부분 혼자 오는 손님을 가정하지 않고, 밥을 먹는 데는 시간이 걸리며, 나 이외의 다른 손님들은 혼자가 아니다. ‘같이 밥 먹을 사람도 없는 외톨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는 혼자 밥 먹는 것을 두렵게 하는 데 멈추지 않고, 혼밥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기는 데까지 나아간다. 혼밥을 잘 하는 사람들은 늘 그런 질문에 시달린다. 어색하지 않냐, 창피하지 않냐, 부끄럽지 않냐. 혼밥을 어색하고 창피하고 부끄럽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런 질문이다. 필요 이상으로 쳐다보고, 멋대로 의미를 추측하는 시선과 수군거림은 곧 당신이 생각하는 ‘식당에서의 적절한 행위’가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누군가의 행동을 제약하는 공간 권력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한다. 쳐다보지 마라 쫌.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으슬으슬하니 몸 상태가 좋지 않길래 곰탕집에 들렀다. 4인용 식탁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늘 앉던 자리에 앉았고 내 양 옆으로 두 명의 여성이 나처럼 4인용 식탁을 차지했다. 3인 3색, 서로 다른 곰탕이 거의 동시에 나왔다. 우리 셋은 약속이나 한 듯 한 번도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식샤를 했다. ‘우리’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밥을 먹는 내내 내가 그녀들에게 느낀 공동체로서의 유대감 때문이다. 곰탕집이다 보니 중년의 손님이 많았는데, 그들은 입구 쪽에 쪼르르 앉아 있는 우리를 꼭 한 번씩 쳐다보고 지나갔다. 그런 자리에서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며 음식에만 집중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더, 좌청룡 우백호처럼 있다는 사실은 곰탕에 가득한 양지만큼이나 든든했다. 나중에 셋 다 국물 한 방울 안 남은 뚝배기를 두고 일어설 때의 짜릿함이란.


공간이 행사하는 포섭과 배제의 힘을 그런 식으로 무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욕망하지 않음으로써, 공간을 차지하고 연대함으로써. 이때 연대란 뭐 딱히 거창한 게 아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있음을 특별한 일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충분하다. 내게 무척이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순간이었지만, 그래서 손 뽀뽀라도 날려주고 싶었지만, 숨 쉬듯 자연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느라 열심히 밥만 먹었던 비오는 날의 그 곰탕집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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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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