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이고 거친 박동의 오르가즘 <위플래쉬>
<위플래쉬>
오직 뛰어난 연주와 빼어난 연주자만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현실 속에 선배도 동료도, 심지어 자기 자신, 애인, 가족도 중요하지 않다. 이기적이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 숭고하게 느껴지는 그 욕심이 <위플래쉬>가 들여다보고 싶은 예술가의 민낯이다.
예술을 향한 순수한 열정과 숭고함? 예술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솔직히 알란 파커의 <페임> 속 낭만은 영화 속 얘기다. 오직 한 길만 걸어와 다른 걸 선택할 방법도 모른 체 너무 빨리 미래가 결정된 아이들은 늘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 오디션을 통해 주연과 조연이 결정되고, 그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과 승리, 패배와 좌절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야 한다. 그러니 다정하게 손을 잡고 예술의 미래를 논하는 낭만이 오갈 틈이 없다. 그건 흡사 즐길 수 없는 방석 게임 같다. 숫자가 줄어드는 방석에 매끈하게 안착하느냐, 잉여가 되어 그어진 선 밖으로 밀려나느냐 결정되는 싸움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치열하고 빨리 그리고 자주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의 <위플래쉬>는 적나라하게 이 방석 게임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의 민낯을 드러낸다. 성공에 매달리는 학생과 완벽함을 위해 제자들을 소품으로 쓰고 마는 스승의 광적 집착은 거칠고 노골적이다. 그러니 스승이 열정적인 제자를 이끌고, 예술의 숭고함을 가르쳐 서로 화합하는 흐뭇한 결말에 이르리란 기대는 애초에 접는 것이 좋다.
어릴 때부터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목표 외에는 아무 것도 없는 앤드류(마일스 텔러)는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하지만, 혹독한 연습에도 딱히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과 주위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냉대에 맞서야 한다. 어느 날 최고 실력가이자 독재자에 가까운 플레처(J.K. 시몬스)의 눈에 들어 재즈 밴드에 합류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플레처는 인격 모독은 기본,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입만 열면 무자비한 독설을 쏟아내는 플레처에게 학생들은 그저 자신의 음악의 앙상블을 완전하게 이뤄주는 부속품에 불과하다. 그렇게 플레처의 냉정한 교육 방식은 앤드류를 광적 집착에 사로잡히게 만든다.
선댄스가 발굴한 다미엔 차젤레 감독은 두 주인공의 대립 관계를 명확하게 구축하면서, 음악영화를 피 튀기는 액션 활극 못지않게 박진감 넘치게 만들어낸다. 1985년생, 겨우 30세를 넘긴 데미엔 감독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직접 쓴 <위플래쉬> 대본으로 주목받았지만, 이렇다 할 연출 작품이 없었던 터라 직접 연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는 시나리오의 일부를 이용해 동명의 18분 단편영화를 만들었고, 2013년 선댄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자연스럽게 장편의 영화화도 이뤄졌다. 19일의 촬영과 10주의 후반작업을 통해 제작비를 아꼈고, 2014년 선댄스는 다시 한 번 이 영화에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수여하면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렇게 탄생한 <위플래쉬>는 숨고르기를 하거나 멈칫하는 법이 없다. 마치 재즈 음악의 자유분방함과 극적 고조를 이야기 속에 녹여낸 것 같다.
<위플래쉬>는 시종 팽팽하고 날카로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앤드류라는 인물의 정서에 관객들이 동화될 수 있는 여러 장치들을 만들어 놓는다. 순수한 사랑에 눈뜬 청년, 성공을 갈망하는 학생,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리고 아직 너무 어려 저지르는 치기어린 실수 등 앤드류의 시선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래서 카메라는 줄곧 밴드에서 일어나는 갖은 사건들 속에서 앤드류가 경험하는 경쟁, 긴장감, 열패감 등의 미묘한 심리 변화를 쫓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앤드류의 설렘과 겪게 되는 모멸감, 피가 날 정도로 연습에 몰두하는 열정에 자연스럽게 동화되는 과정을 겪는다.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드럼 스틱을 찾아 무대에 선 앤드류의 모습은 비정상적이지만, 관객들은 그의 열정에 이미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 설렌다. 눈치 빠른 관객이거나, 영화가 너무 좋아 두 번쯤 본 관객이라면 눈치 챘겠지만, 모든 씬과 테이크 마다 앤드류가 등장하지 않는 장면은 한 번도 없다.
액션 활극 못지않다고 한 것처럼 <위플래쉬>는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선혈이 낭자하는 장면들을 자연스럽게 담아낸다. 찢어진 피부와 얼음 물 속으로 퍼져가는 피는 관객들을 흥분시키는 요소가 된다. 피를 보고도 멈추지 않는 앤드류의 열정은 관객들의 정서도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소심하기만 하던 앤드류가 플레처와 닮아가는 과정은 금방이라도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뇌관처럼 아슬아슬하다. 영화의 소재로 전면에 드러난 적이 거의 없었던 드럼의 환상적인 연주 장면과 재즈 앙상블 연습 장면은 관객들의 심박수를 더욱 가쁘게 요동치게 만든다. 자신의 큐를 따르라고 윽박지르면서 연주자들을 주눅 들게 만들었던 절대 권력자 플레처에 맞서 좌절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이제는 자신의 큐를 따르라고 소리치고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재능이 생긴 앤드류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짜릿한 쾌감을 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 도달하는 플레처와 앤드류 사이의 관계와 묘한 리듬이 쏟아내는 화력은 거의 오르가즘에 가깝다.
오직 뛰어난 연주와 빼어난 연주자만 살아남는다는 냉혹한 현실 속에 선배도 동료도, 심지어 자기 자신, 애인, 가족도 중요하지 않다. 그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할 유일한 것은 살아남아 최고가 되는 것이다. 이기적이지만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 숭고하게 느껴지는 그 욕심이 <위플래쉬>가 들여다보고 싶은 예술가의 민낯이다. 그래서 앤드류가 어느 누구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밴드의 중심으로 만들어 버리는 엔딩 장면은 큰 감동이 되어 심장을 때린다. 위플래쉬 단어의 원뜻처럼 심장을 채찍질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영화 속 드럼 연주는 앤드류 역할의 마일즈 텔러가 직접 했고, J.K. 시몬스의 아카데미 수상은 이견이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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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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