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권계현의 영국 영어 이야기
아이폰도 못 알아듣는 스코틀랜드 액센트
스코틀랜드 액센트의 미덕
2011년 4월, 세계 최초로 '음성인식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폰'이라는 타이틀로 iPhone 4S가 화려하게 출시되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Siri는 스코틀랜드 액센트를 알아들을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남자가 엘리베이터(lift)에 올라탑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인(Scots)이고 엘리베이터에는 음성인식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2009년 방영되어 큰 웃음을 선사했던 BBC Scotland의 유명 시트콤 <Burnistoun> 중 'Voice Recognition Elevator in Scotland' 장면입니다. (설정에서 '영어' 자막을 꼭 켜주세요)
Burnistoun - Voice Recognition Elevator in Scotland
미국식 영어에 맞추어진 시스템이 말을 못 알아들어서 생기는 해프닝을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했습니다. 3분 남짓한 짧은 동영상에서, 이리저리 치이며 살아온 스코틀랜드인들의 애환과 불만, 저항정신 등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아서 왠지 더 '웃픈' 장면입니다.
국제법으로 맺어진 스코틀랜드와의 인연
제가 영어의 본고장인 영국에서 유학을 할 때 이야기입니다. 저는 당시 외교관으로 외무부에 근무하다가 국가 연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석사학위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전공이었던 국제법 분야에서는 특히 국제환경법 분야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었는데, 이 분야에서 세계적인 석학으로 인정받던 알란 보일 교수를 찾아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대학교로 가게 되었습니다.
에딘버러에 가서 처음 TV를 보았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BBC Scotland 9시 뉴스에서는 당시 정치적으로 심각했던 북아일랜드 이슈에 관한 현지 주민의 인터뷰가 방영이 되고 있었는데, 들리는 소리는 그때까지 제가 알던 영어가 아니었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영어로 자막이 나오고 있었고 액센트가 특이하고 말이 너무나 빨라서 인터뷰 자체를 1%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가 영국인이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 말미 리포터의 설명에 의하면, 그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태어난 토박이로 엄연한 영국인이었습니다. '영국영어'하면 BBC 영어(England)만 생각하던 당시에, 같은 영국 내에서도 자막 없이는 서로 의사소통이 어려울 정도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일랜드 액센트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스코틀랜드의 억양도 우리 귀에 익숙한 미국식 영어와는 완전히 딴판이었고 오히려 독일어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단어와 문장이 귀에 들어오지 않으니 간단한 대화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고민 끝에 Rubi라는 선생님을 모시고 영어 과외를 하게 됐는데, 처음 만난 자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이 이상하고 표준 영어와는 거리가 멀어서 만일 '영어'를 배우러 온다면 스코틀랜드는 적당한 곳이 아니라고 솔직한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웃으면서 "흔히 미국인들은 잉글랜드의 영어가 억양이 딱딱하고 강하게 발음되기 때문에 잘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비슷한 이유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다. 하지만 반대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미국식 영어나 잉글랜드식의 영어 발음을 알아듣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이곳에서라면 다양한 영어의 발음을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으니 영어를 배우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유학을 온 것"이라고 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린가 싶었지만, 이후로 생각해 볼수록 머리 속에 오래 남은 의미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스코틀랜드 액센트의 미덕
The virtue of Scottish accents
'영어에 관한 가장 불편한 옵션'인 스코틀랜드 영어로 학위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 결과, 저는 거의 모든 종류의 영어 방언에 귀가 뚫리는, 기대하지 않았던 덤을 얻게 됐습니다. '에딘버러 시절' 이전과 이후로 나뉠 만큼 제 자신의 영어의 스펙트럼이 확연히 넓어짐을 체감했고, 결과적으로 이후에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게 된 커리어에 무엇보다 큰 무기가 되어 어떤 인종, 어떤 종류의 낯선 액센트와 맞닥뜨려도 당황하지 않고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The Most Sexiest Accents in the World - Scottish
알고 보면 스코틀랜드 액센트는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액센트 Top 10' 류의 설문조사에서 아일랜드 영어와 더불어 항상 최상위권을 차지하곤 합니다. 특히 '원조 스파이' 007의 제임스 본드, 션 코너리의 액센트는 가히 레전드급이라고 하지요.
'Sean Connery's Voice Club For Men'같은 패러디 개그가 있을 정도로 워너비 액센트로 손꼽힙니다.
'Sean Connery's Voice Club For Men
많은 영미권 국가 중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실 스코틀랜드로 '영어공부'를 하러 갈 확률은 그리 높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학습할 때 세상의 모든 영어 액센트를 일일이 익힐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적어도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액센트나 역사에 관한 기초지식 정도는 꼭 갖추길 추천합니다.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구성하는 나라로서 특히 잉글랜드와의 그 애증의 역사를 모르고서는 문장 뒤에 숨은 뉘앙스를 온전하게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영화 <브레이브 하트(Brave Heart)>는 지금도 스코틀랜드의 어느 극장에선가 반드시 상영되고 있는 국민 영화입니다.
"Freedom!"
마지막 한 단어가 그토록 의미심장한 까닭입니다.
[BBC News]
아이폰 4s가 처음 나왔을 때, 미국, 영국, 호주 등 대부분의 영어는 잘 인식하는 데 반해, 유독 스코틀랜못 알아듣는 것이 문제가 됐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으로 BBC 기자가 직접 출동해서 Siri가 스코틀랜드 영어발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대부분의 질문을 거의 못 알아듣는 Siri. 그래도 시민들의 반응은 재미있어 하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업그레이드 될 테니 꾹 참고 아이폰을 쓰겠다는 시민도 있고요. 음성인식 프로그램과 스코틀랜드 액센트의 문제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요. 같은 영어권에서조차 이해하기 힘든 발음이지만 자신들만의 고유한 말씨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서인지 이들의 반응은 여유로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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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외교관이 되었다. 주호놀룰루 총영사관 영사, 주네덜란드 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했으며, 2013년 노벨평화상 수상 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의 법률의제 의장을 역임했다. 이후 삼성전자로 자리를 옮겨 홍보팀 상무, 글로벌 스포츠마케팅담당 상무를 거쳐, 현재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실 전무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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