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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사랑이야?

로맨스가 은폐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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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할 때의 당사자들은 때때로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놀라울 만큼 감정적이고 통제불능이다. 그 자체는 사랑의 특성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필자는 길을 가다가 술에 취한 남자로부터 갑작스럽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목을 잡아 조르다가 뿌리치자 끌어안고 어깨와 머리 등을 때렸다. 남자가 만취한 상태라 다치지는 않았지만 몹시 당황했다. 살려달라고 소리쳤으나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순간 분노가 치솟았다. 소리를 지르면서 남자를 밀치자, 다행히 만취한 남자는 나에게 떠밀려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더 모았다.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몰려든 사람들이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고.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자 남자는 나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소리쳤다.


“너 나 알잖아, XX년아! 왜 모르는 척 해!”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이라고 하자 사람들이 당황하며 남자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알았다. 행인들이 쉽게 끼어들지 못했던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취객과 나를 연인으로 오해했기 때문이었다. 누가 봐도 일방적인 남자의 폭행은, 연인 사이라는 옷을 입는 순간 갑자기 사적인 영역으로 도피하면서 특별한 것으로 바뀌어버린다. 연인 간의 싸움만큼 끼어들거나 제지하기 힘들며 괜히 독박 쓰기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로맨스는 핑크빛 베일로 폭력을 은폐한다. 그것도 아주 은밀하고 집요하게.

 

2014년 8월 26일자 <프레시안> 보도를 참고하면 데이트 폭력은 매일 18명이 당한다. 또한 3년간 143명이 자신의 애인 또는 남편으로부터 살해당했다. 데이트 폭력은 ‘애인 사이’라는 이유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피해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되며, 일회성에 멈추지 않는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한 논문에 따르면 피해 여성들의 40%는 폭행 당한 이후에도 관계를 지속하는데, 헤어지자는 요구를 폭력으로 무마시키거나 일시적으로 사과해 피해자의 마음을 돌려놓기 때문이다. 피해 여성 역시 관계가 지속되길 원하거나 가해자가 무서워서 이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신문이나 뉴스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연인 사이였던 이들이 앙심을 품고 저지르는 폭력이나 살인 사건이 등장한다. 요즘에는 당사자를 해치는 데 그치지 않고 피해자의 가족이나 피해자가 사는 집 전체를 노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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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쓰이게 된 것도, 부부 강간이 범죄로 인정받은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연애 관계는 다양한 룰과 합의로 이루어지며, 독점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 그 지극히 사적이고 배타적인 성격 때문에 그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은 철저히 두 사람의 문제이다. 누군가 끼어들 수 없으며, 끼어들 경우 된서리를 맞기 일쑤다. 연애 상담에 시달려본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실컷 자신의 열과 성의를 다하여 이런 저런 조언을 내놓으면 돌아오는 그 말, “네가 그 사람을 몰라서 그래.” 빡침이…휘모리장단으로 몰려온다. 덩 따따 쿵따쿵 따 쿵 쿵따쿵 덩덩 쿵따쿵 더더덩 더더덩 더더덩 더더덩…무수한 감정 노동과 연애 상담으로 빼앗겼던 나의 시간과 젊음을 돌려다오.


정서적인 폭력에 속하는 ‘통제’나 ‘감시’는,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연애 관계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취급될 정도다. 둘만의 독점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단속’이라는 이름 아래 상대방을 통제하고 감시하며, 물리적 폭행이나 성적 폭력은 이를 어겼을 때 돌아오는 처벌로 기능하는 것이다. 연애를 할 때의 두 사람은 때때로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이며, 놀라울 만큼 감정적이고 통제불능이다. 그 자체는 사랑의 특성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정당화하거나 은폐해서는 안된다. 이 폭력에는 결국 권력이 개입하며, 대부분 약한 쪽이 피해자가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맨스가 끼어든 폭력에서 피해자는 종종 폭력을 유발한 원인으로 지목되어 손가락질 당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행하는 폭력이 가장 대표적이지만, 여성이 남성에게 가하거나 동성애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도 엄밀하게 존재한다.


데이트 성폭력도 마찬가지다. 로맨스와 성범죄는 안타깝지만,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누가 나한테 “뿅뿅 씨 나랑 오늘 술 마실래요?” 했는데 그 사람한테 나는 1도 관심이 없고 우리 사이에 그런 말이 나올 만한 아무런 배경이 없으면, 그 사람에겐 로맨스 나에겐 희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연서복? 넝~담ㅎ) 요즘에 대법원이 자기 맘대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부위’ 어쩌구 하면서 손목은 성희롱이 아니니 코도 괜찮니 하고 되도 않는 판결을 빵빵 때리는데, 아니 저기 잠깐만요. 웨이러미닛. 내 코와 손목을 만질 자유를 왜 니가 판단하고 난리? 세 놓으셨어요? 그것도 결국은 피해자가 맥락에서 판단해야 하는 문제다. 부위는 중요하지 않다. 나의 동의 없이, 불쾌감을 느낄 수 있는 접촉을 했다면 그것을 중지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로맨스가 끼어들면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이다. 상대가 그 접촉의 원인으로 로맨스를 들고 나오면 갑자기 폭력의 물이 싹 빠지고 남녀 간의 사랑 놀음으로 변질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고려대 의대생 성추행 사건 역시, 중간에 피해 여성이 세 남성에게 소위 말하는 ‘끼를 부렸다’는 식으로 문제의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썸’이라는 게 있는 관계였다는 사실은 성범죄 판례에서 언제나 판결을 뒤집는 요인으로 존재한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종종 판사가 성폭행 피해자와 가해자를 짝 지어주려 했고 실제로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으니, 아아. 판사님은 바버야 바버. 사랑밖에 모르는 바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시화되었을 때 일본의 일부 소설가들은 일본군과 ‘위안부’ 사이의 사랑과 동지의식을 다루었다. 후루야마 고마오의 소설 『개미의 자유』를 예로 들 수 있다. 그 참혹한 순간에도 일본군과 사랑한 ‘위안부’가 있고 ‘위안부’를 사랑한 일본군이 있었다는 핑크빛 판타지는 전범 국가가 주도하고 피해 국가가 침묵한, 성적 착취와 거대한 폭력을 은폐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우리나라의 월남 파병 군사들이 저지른 현지 여성 성폭력 사건 등을 미화한 조성모의 뮤직 비디오 <아시나요>도 있다.) 이런 시선들은 어떤 순간에도 인류는 사랑을 한다는 절대적 운명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순간에도 사랑이 있었으니 아주 나쁘지는 않았다’고 미화할 뿐이다. 뭐가 사랑이라는 겁니까? 예에? 예―에?!!


드라마는 또 어떤가. 남자 주인공의 강제 키스나 일방적인 들이댐(=클리셰로는 차를 몰면서 “너 나랑 사귈래 죽을래”가 있다)이 없으면 전개가 안 되고, 소유욕을 과시하느라 여자 주인공을 곤란하게 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증명으로 미화된다. 괜찮아? 주인공이니까, 사랑하니까? 하지만 주인공이 아닌 인물이 그런 짓을 하면? 바~로 사랑의 이름으로! 주인공 남자한테 쌍코피 터지게 얻어맞고 비실비실 퇴장하는 것이다. 지랑 똑같은 짓을 한 인간을 응징해놓고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돌아보며 말하겠지. “괜찮→아↘요? 다친 데 없↘어→요? 많이 놀→랬→쬬↘?” 하나도 안 멋있다. 그건 그냥 인지부조화거덩.


때때로 지지부진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은 과감한 한 방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로맨스와 성범죄의 완전한 분리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누군가는 상대방이 박력 있게 손목을 잡아채고 벽에 밀어붙여주기를 기대하지만(두근) 누군가는 그런 일을 당하면 공포와 위기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 촘촘한 경계(!)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을 읽으려는 노력과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상대방과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고, 상대방의 특성을 파악해서 해도 될 행동과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구별하는 것, 나의 호의가 상대를 다치지 않도록 각별하게 살피는 것. 아, 정말 어렵고 모호하며 주관적이긴 하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해내야 한다.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서라면 더더욱. 편한 대로만 하다 보면, 그 순간 자신이 바로 폭력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의 이름으로, ‘나’의 기준을 들이밀고 그것에 포섭되지 않는 대상을 해치는 일은 너무나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탄탄한 보호막(=모니터)으로 둘러싸인 대상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윤리적인 사랑일지도…(?)


주변의 누군가가 로맨스를 빙자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고 돕도록 하자. 원래 연인들 일에는 끼는 것이 아니라지만, 그리고 그 폭력의 여파가 자신에게까지 미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섣불리 권하기 두렵지만, 하다못해 그 상황이 탈출 가능한 것임을 알려주자는 말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기관을 알려주어도 된다. 왜 바보처럼 맞고 있냐는 말은 실수로라도 하지 말자. 피해자인 너는 잘못이 없고, 너를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스럽게 하는 그 폭력은 결코 사랑이 아니며, 그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자는 말이다. 로맨스는 힘이 세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과 뒤섞여 있는 폭력에 더욱 끈질기게 저항하고, 거절해야 한다. 폭력은 저절로 낫지 않는다. 방치하면 더욱 강해지고, 전염되며, 당신을 모조리 파괴하기 전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괜찮지 않다. 사랑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다. 사랑이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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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진송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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