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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웃고 싶은 이들에게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작가들이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독특한 형식 외에도 입체 배경을 만들고 실사 인형을 세워두고 촬영하는 기법, 마치 연극무대 같은 공간, 『빨간 모자』의 나무꾼과 돈키호테 등 고전에 대한 패러디 등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만한 요소들이 깨알처럼 숨어있다.
길게 쉬고 나면 꼭 다음 휴일이 언제인가 싶어 달력을 뒤적거린다. 늘 그렇듯 다음 연휴는 멀기만 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해야 할 일이 쏟아진다. 설을 앞두고 조금은 양해하고 배려하고 미루었던 일들을 이제는 해야 한다. 냉정한 평가와 질책이 앞서 기다리고 있기도 있다. 몇 일 만 참으면 휴가라는 기대도, 도망갈 곳도 없다. 이럴 때 맥 바네트가 글을 쓰고 애덤 렉스가 그림을 그린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를 추천한다. 갖가지 이유로 정신없이 웃고 싶은 이들에게 딱 좋다.
맥 바네트는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작가로 독창적인 그림책을 여러 권 썼다'는 허풍 섞인 자기 소개를 스스럼없이 하는 작가인데, 말뿐은 아니다. 존 클라센과 함께 작업한 그림책 『애너벨과 신기한 털실』과 『샘과 데이브가 땅을 팠어요』로 두 차례나 칼데콧 아너 상을 수상했다. 자기 자랑이 심한 맥 바네트와 함께 일한 그림 작가 애덤 렉스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프랑켄슈타인, 샌드위치를 만들다』를 쓰고 그린 실력파다. 두 사람은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에 이어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를 함께 작업한 끈끈한 사이다, 라고 말하면 좋을 텐데 선뜻 그 말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나면 두 사람이 어떤 사이일까 궁금해진다. 그림책은 분명 꾸며낸 이야기일 텐데 왠지 현실에서도 티격 티격 싸울 것 같고 서로 이를 갈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글 작가 맥 바네트는 엉뚱한 꿍꿍이가 많은 사람이다. 그는 과거의 물건을 팔아, 마치 그 곳에 가면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에코 파크 시간 여행상점'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에게는 현실과 상상이 외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현실 속에 상상이 깃들여 있고, 상상이 곧 현실 같은 공간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첫 그림책인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엄마 말을 안 들으면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흰긴수염고래를 돌보게 하겠다는 엄포는 그저 말이 아니라 바로 현실이 된다. 주인공 빌리는 옷장이나 기차역에 갈 필요가 없다. 택배 아저씨가 친절하게 로스앤젤레스의 주택가에 위치한 빌리의 집으로 흰긴수염고래를 배달해준다.
하지만 엉뚱하고 의뭉스럽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맥 바네트와 애덤 렉스가 호흡을 맞춘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클로이라는 소녀의 모험담이다. 회전목마 타기를 좋아하는 소녀가 엉뚱한 일에 휘말리게 되고 결국 용기와 지혜로 사자에게 잡아먹힌 어른을 구한다는 이야기다. 한데 이 책의 독특함을 더하는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맥과 애덤이다. 그저 글 작가와 그림 작가로 만족하지 않고 그림책에 떡하니 등장한다.
발단은 회전목마를 너무 많이 타서 어지러워진 클로이가 숲에서 길을 잃고 용과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갑자기 맥 바네트가 그림책에 얼굴을 들이밀고 이렇게 말한다. “아, 미안, 잠깐만, 애덤, 이리 좀 나와 봐.” 뭐야, 맥이 나타난 것도 황당한데 그림 작가 애덤까지 그림책 속으로 불러들인다. 그리고는 둘의 말싸움이 시작된다. 요지는 이렇다. 맥이 쓴 글에는 ‘클로이가 사자를 만난다’라고 되어있는데 왜 용을 그렸느냐는 거다. 애덤의 대답은 간단하다. 용이 훨씬 멋있으니까. 화가 난 애덤은 감정 섞인 말을 내뱉는다.
“자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하나도 안 중요해. 이 책의 작가는 나고, 자네는 이야기에 맞추어 그림을 그리는 화가야. 그러니까 이 책의 이야기는 내가 정하는 거고 자네는 시키는 대로 그리기만 하면 돼. 내가 만약 클로이가 예쁜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썼다면, 자네는 다음 쪽에 분홍 리본이 묶인 큼직하고 예쁜 생일 선물을 그려야 해.”
아, 어디선가, 많이 듣던 소리다. 직장 상사에게서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들었던 것과 똑같은 소리다. “시키는 대로 해!” 맥에게 이런 말까지 들은 애덤은 과연 어떻게 했을까? 다음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그야말로 빵터지지 않을 수 없다. 애덤이 그의 말대로 맥을 분홍리본이 묶인 선물로 그려 놓은 것! 이런 순간 우리는 얼마나 여러 번 머릿속으로 비슷한 상상을 했던가. 그 상상이 그림책 속에 그대로 재현되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맥의 오만을 장난으로 맞받아치며 애덤과 맥의 기 싸움이 시작되고, 급기야 맥은 사자에게 애덤을 잡아먹으라고 시킨다.
세상에 아직 사건은 전개 되지도 않았는데, 돌연 나타난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서로 싸우기만 하다니 대체 이 그림책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독자가 슬슬 걱정 될 무렵, 현명한 클로이가 나타난다. 모든 걸 포기할 지경인 맥 아저씨를 설득하고, 사자에게 잡아먹힌 애덤 아저씨를 구해내는 것도 결국은 이기적이고 잘난체 하는 어른들이 아니라 용감한 클로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상상과 현실의 뒤섞임은 이 그림책의 묘미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어린이다.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는 작가들이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끌어가는 독특한 형식 외에도 입체 배경을 만들고 실사 인형을 세워두고 촬영하는 기법, 마치 연극무대 같은 공간, 『빨간 모자』의 나무꾼과 돈키호테 등 고전에 대한 패러디 등 알고 보면 더 재미있을 만한 요소들이 깨알처럼 숨어있다. 또 한 가지, 전작인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에서 빌리가 착한 어린이 대신 거짓말하는 피노키오 되기를 선택했듯 이 그림책에서도 어떤 교훈이나 메시지를 기대하지 말길. 한바탕 얼렁뚱땅 소동을 벌이고 난 후 그저 모두 모여 함께 회전목마를 타는 것, 우리가 할 일을 오직 그것뿐이다. 물론 직장동료에게 혹은 클라이언트에게 이 책을 선물해도 좋다. 단 그가 유머를 즐길만한 사람이라면!
함께 보면 좋을 책
엄마 말 안 들으면… 흰긴수염고래 데려온다!
맥 바네트 글/애덤 렉스 그림/장미란 역 | 다산기획
엄마들이 아이에게 말 안 들으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고 했듯, 빌리의 엄마는 흰긴수염고래를 데려온다고 협박한다. 결국 흰긴수염고래를 돌보게 된 빌리의 좌충우돌을 담았다. 흰긴수염고래에 대한 생태적 지식을 배우게 되는 건 덤이다. 피노키오의 모티브를 이용한 결말도 도전적인 그림책.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맥 바네트 글/애덤 렉스 그림/고정아 역 | 다산기획
글 작가 맥은 그림 작가 애덤과 함께 클로이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둘은 여러 번 그림책 작업을 같이 했으니 호흡이 척척 맞을 법한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글 작가 애덤은 주인공 클로이가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순간 커다란 떡갈나무 뒤에서 사자가 불쑥 튀어 나오도록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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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한미화,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사자 사냥꾼 클로이의 끝없는 이야기
독일문학을 공부했고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일했다. 현재는 책과 출판에 관해 글을 쓰고 방송을 하는 출판칼럼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황정민의 FM대행진]에서 ‘한미화의 서점가는 길’을 진행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에 어린이책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시대 스테디셀러의 계보』 『베스트셀러 이렇게 만들어졌다 1-2』 등의 출판시평과 『잡스 사용법』, 『책 읽기는 게임이야』,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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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1세~만 3세의 유아를 위한 명작 시리즈인 은 유아 연령과 특성을 최대한 반영, 귀엽고 단순한 구성이 특징이다. 쉽고 재미있게 엮은 내용, 단순한 스케치와 산뜻한 칼라의 삽화, 작고 폭신한 느낌을 잘 조화시켰다. 명작을 읽으며 그 속에 담겨 있는 슬기와 지혜, 그리고 용기 등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