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그림책으로 마음 선물하기
상급학교 진학하는 주위의 아이들에게 어떤 축하 선물을 하는 것이 좋을까, 며칠째 고민중이다. 결론은 틀림없이 책이나 그림책이 되겠지만, 선물을 건넬 주인공에게 딱 맞는 어떤 책이며 어떤 그림책을 고르자니 자꾸 생각이 길어지는 것이다. 먼저, 그 시절의 내게는 무엇이 가장 기뻤던가를 더듬어보자. 중학교 입학식 날에 어머니의 오랜 친구에게서 하늘색 ‘빠이로뜨’ 만년필과 스카이블루 색 잉크를 선물 받았던 기쁨이, 비단 리본을 풀고 아름다운 포장지를 조심조심 펼치던 감각과 함께 떠오른다. 그것을 갖게 된 뒤로 손가락에는 물론 책상보며 새 교복이며 노트와 책이며 심지어 이불 깃에까지 잉크 얼룩 가실 날 없었으니, 만년필 선물의 기쁨이 꽤 오래 이어졌던 듯하다. 아니, 지금껏 글쓰기며 필기구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것을 보면 그때 그 만년필은 진정한 선물이었다.
앙리 마티스가 화가의 길을 걷게 된 데에도 작은 선물이 동기가 되었다는 얘기가 있다. 프랑스의 작은 공업도시 보엥에서 곡물상 아버지와 아마추어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티스는 그저 공상하기 좋아하는 평범한 소년으로 자라다가 대도시 파리로 법률 공부를 하러 떠나게 된다. 일 년 후 법률사무소의 서기가 된 어느 날, 마티스는 갑작스레 복통을 앓아 병원 신세를 지게 되고, 맹장수술 후 무료하고 기나긴 회복 기간에 어머니로부터 물감 한 상자와 그림 그리기에 대한 책을 선물 받는다. ‘내 손이 물감 상자를 받아 든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나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천국을 발견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완벽하게 자유롭고 온전히 혼자였으며 평화로웠다’라고 마티스 스스로 회고한 바, 오직 안정된 진로를 추천하는 어른들의 안내에 따라 살아온 이 스무 살 청년은 물감상자 선물이 일깨운 감각에 의해 스스로 생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법률사무소 서기 노릇을 그만두고 미술학교에 들어가 그림 공부를 시작한 마티스는 마침내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며 현대회화사의 한 장을 차지한다.
뉴욕현대미술관의 보조 큐레이터 사만사 프리드만이 글을 쓰고 이탈리아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스티나 아모데어가 작업한 그림책 『마티스의 정원』은 이 늦깎이 화가가 더없이 강렬하고도 격렬한 이미지의 ‘야수파’ 작업 이후, 다시 한번 붓을 놓게 된 만년의 어느 날 선물인 듯 손에 잡은 ‘가위’로 작업하게 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티스가 가위로 종이를 오려서 시도한 새로운 이미지의 세계를, 페이퍼아트paperart작업으로 재구성한 큼직한 판형의 이 그림책 장면들은 무엇보다 내용과 형식이 일치하는 풍요를 선사한다.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할아버지 화가 마티스가 어느 날 하얀 종이에서 작은 새 한 마리를 오려서 벽에 붙이는 장면에서
벽에 붙여 둔 하얀 새가 외로워 보여 친구 새 하나를 더 오려 붙이고 또 하나를 오려 붙이다가, 손 가는 대로 오려낸 조각들이 언젠가 여행했던 타이티 섬의 물고기며 해조류를 닮았다고 화가가 생각하는 장면에서,
하늘빛 바다빛 종이 위에 조각 새며 물고기며 물풀을 붙여보고, 오리고 남은 종이의 우연한 형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구성하며, 늙고 병든 화가 마티스가 몸도 생각도 날고 헤엄치며 마음껏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에서......
마티스의 종이 작업은 그렇게 바다 세계를 만들고, 하늘 세상을 만들고, 아름다운 땅 세계- 정원을 만들어내었다. ‘물감 상자’에 이어 ‘가위’라는 선물이 세속 가치를 넘어 마티스에게 거듭 새로운 예술세계를 문 열어준 것이다. 더없이 자유롭고 풍요로운 이 정원을 천천히 거닐어보자. 진정한 선물에 대한 영감과 지혜 또한 얻게 되리라.
마티스의 정원사만사 프리드만 글/크리스티나 아모데어 그림/지혜연 역 | 주니어RHK
이 책은 마티스가 색채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담아내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색이 등장하는데, 마티스가 색채 실험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져 있습니다. 그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은 서로 다른 색이 어떻게 잘 어울릴 수 있는지 직접 눈으로 체험하면서 색채 감각을 키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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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마티스
마저리 블레인 파커 글/홀리 베리 그림/홍연미 역 | 문학동네어린이
마티스가 꿈을 품기 시작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어린 소년 마티스는 어떤 아이였는지, 어떻게 그림과 처음 만났는지, 그 이후 그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생생하게 전해집니다. 마티스가 물감 상자를 받아 든 그 순간의 기쁨과 설렘은 어떤 색깔로 빛났을까요? 책장을 넘기며 만나는 이야기들은, 마치 마티스의 인생에서 중요한 장면들을 찍어서 차곡차곡 꽃아 둔 사진첩을 넘기듯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앙리 마티스
폴크마 에서스 저/김병화 역 | 마로니에북스
그에게 있어 색이란 주관적 느낌을 표현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빛 자체이기도 했다. 그림의 소재는 주로 실내풍경이나 구상적 형태였으며 주제를 다루는 방식에는 지중해 특유의 활기가 넘쳐흐른다. 마티스는 말년에 방스에 있는 로제르 성당 프로젝트에 깊이 몰두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일부를 도안하고 벽화를 그렸으며, 예배당이 완공되기 전에 색종이를 오려 만든 거대한 작품을 제작했다.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그를 1950년대 초의 가장 젊은 화가이자 가장 혁신적인 예술가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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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