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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홀로를 찾아서
조선시대의 독신여성
제도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자유는 생존을 담보로 한다. 비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였기 때문에 선택지는 그토록 극단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규범 안에서 보호라는 명목으로 구제 대상이 되는 것과, 천민과 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그러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상상력은 무한하다고들 하지만, 때때로 그것은 우리의 틀에 맞춰 주조되는 찰흙과도 같다. 편견과 무관심으로 찍어낸 상상력은 고정관념을 만들고 실체인 양 군림한다. 한동안 이 꼭지의 정체성인 ‘비연애’에 대한 고찰이 소원했는데, 오늘은 우리의 홀로를 찾아 조선시대로 가볼까 한다.
이 글에서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조선시대의 독신여성이다. 이때 ‘독신여성’은 단순히 혼자 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혼기가 찼음에도 혼인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여성으로 한정한다. 즉 과부가 아닌 비혼 여성, 시쳇말로 ‘노처녀’. 으아니 조선시대에 싱글 레이레가?! 물론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극히’ 드문 경우였지만 그녀들은 엄연히 존재했다. 사실 조선시대 여성이라고 해서 모두 장옷 쓰고 다니면서 외간남자랑 손 끝 닿았다고 물에 뛰어들고 은장도로 자결하고 이러지는 않았는데, 조선시대와 여성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만큼 빈곤하고 판에 박힌 게 또 없다. 조선 초기만 해도 여성들은 가마가 아닌 말을 타고 다녔는데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으니까. 사극에서 가마 타고 다니는 것은 현대적 상상력이 덧붙여진 것으로,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선 왕조는 여성들의 행실을 단속하고자 말 타는 것을 금지했다. 그런데도 그렇게 죽자고 말을 타고 다니고, 하도 못 타게 하니까 신나게 걸어 다녔다고 하니, 이 언니들…쫌 멋있지 않아여?
20대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여성들은 결혼 압박에 시달린다. 오죽하면 여자 나이를 크리스마스 트리에 빗대어, 24살이 지나면 그때부터 똥값이라는 비아냥이 유머인 척 대화 속에 끼어들까. 얼마 전 설날특선영화로 방영된 <수상한 그녀>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잘 빠진 코미디의 탈을 쓰고 엄청나게 흥행했지만, 이 영화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혐오가 도사리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화 속 ‘노처녀’ 캐릭터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비난이다. “시집도 안 간 게”, “시집이나 가”라는 말들은 한 인간의 삶을 결혼여부 연관시켜 폄하하고 비난하며 조롱한다. 지금도 이럴 지언데, 극소수의 전문직 여성(궁녀, 무당, 의녀 등)을 제외하면 결혼 외의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도 독신/비혼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조선시대의 혼인 장려 정책은 바꾸어 말하면, ‘혼인을 장려’해야 할 만큼 결혼 제도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이들이 가시화되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혼인정책은 『경국대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무 것도 안 해주면서 결혼 좀 하라고 빼액빼액 오지랖이 풍년인 현재와 달리, 조선시대의 혼인 정책은 꽤나 구체적이다. “사족(士族)의 딸로서 나이가 30이 가깝도록 가난하여 시집을 가지 못한 자에게는 예조(禮曺)에서 임금에게 아뢰어 곡식과 옷감을 헤아려서 준다(그 집안이 궁핍하지 않으면서 나이가 30세 이상이 되도록 시집가지 못하였을 경우에는 그 가장을 엄중히 논죄한다).”
가난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물품을 지급한다는 정책은 지금의 정부가 제발 계승해줬으면 하는 복지정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가난하지 않음에도 자녀가 결혼을 하지 않으면 가장을 처벌한다는 조항은, 혼인이 단순한 권장사항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처벌한 기록은 없다.) 에 그러니까 여러분이 서른 넘어서도 결혼 안하면, 어느날 갑자기 경찰이 문 쾅콰와콰와와쾅콰와코아쾅 두들겨서 여러분의 아버지를 끌고 가 곤장을 때린다 이겁니다. 워후. 세종 때 남성의 혼인에 대해서도 물품을 지급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지만 국가에서는 여성의 혼인을 더 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이러한 논의는 기각되었다. 이것은 시간을 거슬러 여성에게 더 높은 강도로 가해지는 결혼 압박을 보여주는 동시에, 혼인 장려 정책의 주 타깃이 될 만큼 여성의 혼인 거부가 빈번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혼인 장려책은 영조 대에 이르면 신분과 성별에 상관없이 혼기를 놓친 이들을 돕는 것으로 확대된다.
국가가 앞장 서서 혼인을 장려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지지 않은 점이다. 그것은 혼인과 이를 통한 가족의 구성이 국가 질서의 안정과 직결되었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황 알져? 모르면 지갑 열어보시라능. 그 분이 이런 의견을 냈다. “<주례>의 황정 12조에 보면 혼례에 예절을 갖추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것은 남녀가 시기를 잃으면 화기를 상하기 때문에 그 시기를 잃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화기’란 백성에게 억울한 일이 있어서 고통 받고 울부짖을 때 상한다고 합니다. 화기가 상하면 음양의 조화가 깨지고, 예기치 않은 재변이 일어나기 때문에 국가에서는 백성의 화기를 상하는 일-과도한 노역이나 공평치 않은 재판 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살펴야 했다. 그런데 이 ‘화기’를 상하는 일에 처녀가 늦도록 혼인하지 못한 경우가 들어간다?! 총각 아니다 처녀다. 처녀만이다! 모든 문제를 결혼 여부로 환원하는 ‘노처녀 히스테리’에 대한 편견은 이때부터 아주 야무지게 영글었다.
이것을 여성에 대한 보호라고 보더라도, 이는 1) 여성은 당연히 혼인해야 하며, 2) 혼인하지 못한 여성은 불쌍하고 구제해야 할 대상이며, 3) 끝내 혼인하지 못한 여성은 비정상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처녀들의 화기가 쌓이면 나라에 재앙을 가져온다고 여긴 조상님들은 이후에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속담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뻥)
뒤집어 생각하면 나라에 재앙이 있을 때 그 원인으로 결혼하지 못한 처녀가 지목되었다는 뜻이다. 서구의 마녀사냥이나 관동 대지진 때의 조선인 대량학살과 유사한 귀결이다. ‘처녀’는 조선이라는 유교 국가를 떠받치는 건강한 백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존재였다. 그 안에, 개인의 처지나 의도가 설 자리는 없다. 처녀가 결혼을 원하지 않거나, 결혼하지 못했지만 그 점에 대해 비관하지 않는다고 해도 국가는 관심이 없다. 왜? 국가의 입장에서 그녀는 그저 구제 대상, 결혼하지 못해 울부짖는 불쌍한 백성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조선시대에서 독신 여성은 장애인, 부랑자와 같은 부류에 들어가는 관리 대상이었다.
독신 여성들이 엄연히 존재했다고 해도 그들의 기록을 찾는 일은 녹록치 않다. 일단 그들은 공식적인 기록을 남기기 힘들었고, 그 ‘비정상적인 존재’는 배제와 억압 속에서 뒤안길로 사라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 여성들은 대개 조선시대 설화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관계를 맺은 남성과 결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자 독신의 길을 택했거나 부모에게 효를 다하기 위해 결혼을 포기하거나, 사납고 능력이 있는 경우 등으로 나타난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찾자면 여승(女僧)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에서 여성이 독신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방법이 바로 승려가 되는 것이었다. 유일하게 여성들이 집단을 이루어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직업이기도 했고.
유교 국가인 조선은 불교를 천시했는데, 여성이 승려가 된다는 것은 국가의 기대를 두 번 배반하는 무엄한 행위였죠. 이럴 수가 싫은 것과 싫은 것이 결합해따! PO싫음WER. 따라서 양반자제가 아닌 다른 직분이 있는 사람이나 독자, 처녀는 승려가 되지 못하도록 할 것을 주장하고, 환속을 명했으며, 처녀가 중이 될 경우 그 가장을 처벌하자는 논의가 일어났다. 게다가 여승에 대한 인식이 어찌나 나쁜지, 그들은 간음을 하고 모여서 간사한 짓을 한다는 모함을 받기 일쑤였다. 그들은 ‘비정상’이고, 그것을 가시화하며(여승의 경우 외양을 보면 즉각 그녀가 독신여성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집단을 형성한다. 따라서 여승은 도성에 왕래하지 못하고 가축들의 길로 다니는 등 사람 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여승이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종교적인 믿음에 따른 것이지만, 혼인을 강제하는 세계 밖으로 미끄러지는 탈주이기도 하다. 제도 바깥으로 걸어 나가는 자유는 생존을 담보로 한다. 비혼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사회였기 때문에 선택지는 그토록 극단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회적 규범 안에서 보호라는 명목으로 구제 대상이 되는 것과, 천민과 같은 취급을 받더라도 그러한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역시 우리 조상님들은 참 터프하다. 머리 깎을래? 연애 할래? 하면 나 같으면 그냥 헝 연애할게요ㅠㅠ머리는 손대지 마ㅠㅠ할 것 같은데. 머리 깎을래 연애할래? 하면 헝 그냥 연애할게여ㅠㅠ내 머리ㅠㅠ할 거 같은데)
이 외에도 확고한 독신 정체성을 유지한 여성은 조선시대 여성 공무원에 해당하는 ‘궁녀’를 들 수 있다. 궁녀의 경우 잠정적으로 왕의 여자이기 때문에 그녀의 성(性)을 단속했다는 점에서 이번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독신 여성과는 조금 맥락이 다르다. 이 주제는 다음에 좀 더 깊게 다뤄볼까 한다. 평생 궁궐에 들어가 비연애상태를 강요당하는, 젊고 예쁘고 전문직에 우아한 궁녀쨩들의 삶은 눈물 없이는 쓸 수 없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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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 발행인. 문충이(文蟲)가 되고 싶은 그냥 식충이. 뭐든지 재미 있어야 하지만 재미의 기준은 내 마음. 읽고 쓰고 덕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