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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일국의 <나는 너다>는 뜨거운 연극

연극 <나는 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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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와 그의 아들 안준생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나는 너다>가 연장 공연을 시작했다. 민족의 영웅과 민족의 배신자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부자의 치열한 삶은 관객들의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리고 쉽게 떨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 뜨거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 뜨거움에 답하는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

안준생, 가엾은 아이인가 가문의 망신인가


여섯 발의 총성은 극장을 침묵에 잠기게 했다. 이어 무대 위에는 황량한 공간이 펼쳐졌다. 시간도 장소도 짐작할 수 없는 곳. 이승과 저승 그 어디에도 매이지 않은 영혼이 떠도는 곳이 있다면 바로 저곳이 아닐까, 싶은 공간이다. 그 속을 남루한 차림의 한 사내가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실체 없는 그림자에 쫓기면서,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기를 두려워하면서, 사내는 한없이 움츠러든다. 그의 이름은 안준생.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둘째 아들이다. 얼굴조차 본 적 없는 아버지였지만 이름만은 남아 한시도 아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안준생에게 있어 그것은 빛나는 영광이 아니라 참혹한 고난이었다. 일본인들에게 그는 테러리스트의 아들이었고 감시와 탄압의 대상이었다. 살기 위해 그들에게 고개 숙였을 때 민족은 그를 변절자라 비난했다. 살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이 생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안준생은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너다>는 관객을 향해 묻는다. 안준생은 가엾은 아이인가, 가문의 망신인가. 시대에 맞춰 살 길을 도모한 회색분자인가, 스스로 흰색이기를 거부하고 검댕을 뒤집어 쓴 자인가. 팽팽한 의견의 대립을 지켜보며 관객들은 바짝 긴장한다. 작품의 의도를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사당 앞에서 아버지의 죄를 속죄한다는 다짐을 하고, 이토 분카치(이토 히로부미의 둘째 아들)와의 만남에 아버지의 위패를 들고 나가 용서를 빌었던 그의 행동을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말로 덮어주고 싶은 것일까. 아니면 끝없이 이어졌던 비극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걸까. 의문은 짙어지지만 작품은 좀처럼 의도한 바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되돌려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조명할 뿐이다.

 

어쩌면 그것은 <나는 너다>의 진짜 의도일 것이다. 어떠한 이념의 틀에도 갇히지 않은 안중근과 안준생의 삶을 보여주는 것. 그것만이 자신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므로 작품이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변할 것이라는 관객의 기대는 어긋나고, 숨은 의도를 찾으려는 노력 역시 허망하다. 눈앞에 되살아난 두 개의 인생과 그 안의 사람을 보면 그만이다. 단지동맹으로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는 이라면 한 번도 품어보지 못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로서의 안중근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아들에게 친일파라는 낙인을 깊게 새긴 자라면 ‘매를 맞고 돈을 쥐어주기에 사진을 찍었을 뿐이며, 총독을 아버지라 부른 적도 없다’며 절규하는 안준생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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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으로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가


<나는 너다>가 기록하고 있는 안중근 부자의 삶은 민족 역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자신이 믿는 대로 살기 위해 떠났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신념을 버렸다. 우리들 가슴을 뜨겁게 데우는 것은 냉엄한 신념이지만 ‘그 신념으로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늘 주저하게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고 있다. 살아남은 자에게도 홀연히 떠난 자에게도 섣불리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다면 우리는 대답해야 한다. 개인의 신념과 공동체의 운명을 등진 채 살아남은 생에게 과오를 묻지 않는다면, 어떤 이가 그것들을 지키겠다며 모든 것을 던져버릴 수 있을 것인가. 비겁하다 한들 살아남아서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다면, 모두가 그 길을 걸을 때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나는 너다>는 서늘한 질문을 품게 했지만 이번에도 정답을 일러주지는 않았다. 정해진 대답 같은 건 없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지막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신념에 따라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할 때 그 곁에는 ‘선비는 뜻을 세워 지킬 뿐 목숨을 구걸하지 않는다’는 말로 마지막을 배웅한 어머니가 있었고 ‘두루마기를 휘날리며 돌아오실 날을 기다리면서 고름을 길게 늘어뜨렸다’며 직접 지은 옷으로 작별 인사를 대신하는 부인이 있었다고. 그들이 보여준 숭고한 정신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념을 버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말 따위는 감히 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아들을 앞세워 보내고 ‘혹시 내 아들은 살고 싶었던 것 아닐까, 개처럼 비열하게라도 오래오래 사는 것이 더 나은 일이었을까’라는 씻을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도, 그것까지도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았던 어머니가 아니었나.

 

그러나 안준생은 여전히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 피 맺힌 울분을 토한다. 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냐고, 가족을 버리고 아들을 버리면서까지 그렇게 했어야만 했느냐고. 그의 물음에 안중근 의사는 어떤 말로 응답했을까. 위대한 선택이었다고 했을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을까. 아니면 자신과는 달리 살아남기를 택한 아들을 위로했을까. 진실은 극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기대한 답변이 무엇이었든 안중근의 말은 당신의 가슴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필 것이다.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때, 이제는 당신이 그 뜨거움에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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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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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너다
    • 부제: I am you
    • 장르: 연극
    •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 등급: 만 7세 이상
    공연정보 관람후기 한줄 기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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