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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위한 시간> 선의를 결정할 용기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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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며 자학하던 산드라가 용기를 얻는 순간, 그녀의 이틀은 기적처럼 작은 변화들을 만든다. 사람의 선의를 믿고, 그 요청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순간 연대가 생기고, 변화 가능한 희망이 싹튼다는 것을 영화는 줄곧 주문처럼 읊조린다.

‘선의’라는 명사에 따르는 동사는 ‘주다’가 아니라 ‘베풀다’이다. ‘베풀다’가 내포하는 것이 희생, 포기, 관용이라는 점에서 타인에게 선의를 요구하거나 바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서로를 위해 맞잡은 손과 돈독하게 이어가는 연대는 그게 판타지일지라도 믿어보고 싶다.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다르덴 형제의 <내일을 위한 시간>은 조금 더 냉정하다. 그들은 기대가능한 판타지를 최대한 걷어내고, 노동자일 수밖에 없는 자들의 낮은 목소리와 이기심까지도 품어낸다. 그리고 타인을 위한 선의를 가지기가, 타인에게 선의를 요구하기가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지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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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으로 오랜 병가를 마치고 복직을 앞둔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는 복귀를 앞 둔 금요일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직장 동료 16명이 참여한 투표 결과 산드라는 복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드라의 복직과 각 1,000 유로의 보너스를 결정하는 투표에서 동료들이 보너스를 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이의가 받아들여져, 다음 주 월요일 재투표가 결정되었다. 영화의 원제처럼 산드라에게 주어진 시간은 ‘두 번의 낮과 한 번의 밤 Deux jours, une nuit’이다. 복직을 위해 과반수의 표를 얻어야 하기에 그녀는 주말 동안 동료들을 직접 만나 설득하려 한다. 산드라의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 과정은 마주하기 두려운 먹먹한 현실이다. 동료들과 마주 서서 자신의 복직을 위해 보너스를 포기하라고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7년 올리비에 다한 감독의 <라 비 앙 로즈>에서 신경병적인 에디트 피아프의 삶을 고스란히 재현하면서 2008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마리옹 꼬띠아르가 이번에는 힘겹게 우울증을 겪으면서, 자신의 직장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산드라가 되었다. 그녀는 산드라가 겪는 모든 감정의 굴곡을 눈빛과 표정, 그리고 투덕거리는 발걸음 속에 모두 녹여낸다.

 

다르덴 형제는 산드라가 겪을 많은 경우의 수를 보여주면서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이야기를 다채롭게 변주한다. 관객들은 산드라의 상황에 공감하며 동료들의 선의를 함께 기대하고 갈구한다. 그 결과에 따라 산드라가 겪는 무안함, 좌절, 용기, 분노, 절망, 고마움, 미안함 등의 다양한 감정을 공유한다. 산드라가 만나는 동료들의 면면은 모두 다르다. 첫 투표에서 보너스를 선택한 것이 미안하다며 우는 사람도 있고, 보너스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을 애써 변명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문전박대를 하는 사람도 있다. 계약직 직원은 산드라를 도왔다가 재계약을 못할까봐 불안해한다. 다르덴 형제는 산드라의 내적 갈등을 충실히 따르면서, 보너스를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의 현실에도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준다. 시험에 든 사람은 산드라 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너스와 동료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들 역시 절박한 갈등 앞에서 망설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산드라의 복직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동료를 위해 당장 필요한 돈을 포기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되씹게 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산드라의 처지를 되짚어 보자. 이미 16명의 동료 중 14명이 자기 자신이 아닌 보너스를 선택했다는 냉혹한 현실을 그녀는 안다. 그 결론을 앞에 두고, 용기를 내야하지만 그 용기를 내는 것 자체가 산드라에게는 두려운 일이다. 의사가 끊으라고 하는 약을 계속 먹어대고, 자식과 남편의 격려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물을 삼키지만, 사람들과의 만남은 숨통을 끊어버릴 것처럼 힘들다.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도 없다. 최초의 목적은 동료들의 마음을 돌려 복직을 하는 것이지만, 동료들과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산드라는 진정 나를 구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 있는지, 사람들의 선의를 마주하는데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실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화를 내거나 소리치기는 쉽지만, 나의 권리를 찾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그 민망하고 낯 뜨거운 장면과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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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했을지 모를 그 일을 산드라는 되짚어가면서, 나의 생존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복직과 동료들과의 만남에서 인간에 대한 믿음, 신의, 그리고 따뜻한 배려를 배운다. 차곡차곡 쌓은 감정의 격랑을 고스란히 함께 겪은 관객들은 산드라의 거취를 결정하는 마지막 투표를 앞두고 함께 마음의 소동을 공유한다.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키는 촬영기법과 인물의 뒤를 쫓는 카메라의 불안한 떨림, 연기자라기보다 이웃의 노동자 같은 조연 배우들의 평범한 모습에는 산드라의 우울증 못지않게 무겁고 지겨워 보이는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때문에 산드라도, 그녀를 응원하는 관객도 산드라의 복직 대신 보너스를 선택한 동료들에게 반감을 가지기는 힘들다.

 

다르덴 형제가 말하는 <내일을 위한 시간>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난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며 자학하던 산드라가 용기를 얻는 순간, 그녀의 이틀은 기적처럼 작은 변화들을 만든다. 사람의 선의를 믿고, 그 요청에 진심으로 반응하는 순간 연대가 생기고, 변화 가능한 희망이 싹튼다는 것을 영화는 줄곧 주문처럼 읊조린다. ‘내일 tomorrow’과 ‘내 일 my job’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아낸 한국 제목처럼 산드라의 주말은 ‘내 일을 위한 내일’의 시간이 된다. 여기서 밝힐 수는 없지만, 다르덴 형제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순식간에 마무리되는 엔딩 장면에 담겨있다. 그때까지 산드라는 사람들의 선택에 좌지우지 되는 상황일 뿐, 정작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선의를 선택할 수 있는 그 순간에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 결말은 너무나 단호해서 경쾌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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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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