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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하고 살아야 하나?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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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직업, 그리고 의미 찾기와 더 나아가 적절한 삶에 대한 보상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온전히 혼자 해낼 수 없다.

 

격주 월요일, 하지현 건국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추천하는 심리책 이야기,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가 연재됩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요”
“대학원 마치고 유학갔다가 와서 교수가 되고 싶어요”
“대기업에 입사해서 임원까지 되면 좋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냐는 질문에 젊은이들이 하는 대답이다. 사실 이 정도라도 이야기는 욕망에 충실한 편인 내용이라 꽤 가까워진 다음에야 내놓을 속내다. 그런데, 이 지향점이 내재하고 있는 문제가 몇 가지 있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향하는 것이 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라 ‘직업’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직업이 필요로 하는 자리는 한정된 반면 그 자리를 원하는 사람은 훨씬 많다. 경쟁이 치열하고 경쟁을 위해 준비할 것은 점점 많아진다. 어느새 그 자리가 원하는 준비보다 더 많이, 오랫동안 준비해서 그 직업을 갖는 역전현상이 벌어진다. 그러니, 막상 그 직업을 차지하고 난 다음의 만족도는 떨어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준비를 오래하다보니 그 직업을 시작하는 나이가 이전 세대보다 늦어지고, 사회 분위기는 평생직업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제든지 퇴출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것이 지금 청춘인 세대의 특징이다. 세칭 386세대, 베이비붐 세대가 사회 전반적으로 팽창하고 발전하면서 많은 기회와 보상이 주어지던 상승국면의 오르막 세대였다. 반면 상대적으로 경제적, 사회적 발전이 더 이상 고성장 국면을 가지기 어려우며 촘촘하게 직조된 사회로 내부경쟁만 더 치열해지고 있는 지금 세대에게는 더욱 힘든 상황만 주어질 뿐이다. 이전 세대가 하던 방식대로 열심히 꾸준히 노력해서 더 나은 직업을 갖는 것은 해법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주어진 이 시대에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할까?

 

같은 세대에 속하면서 조금은 앞서 여러 경험을 해본 이가 쓴 책이 있다.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어크로스)다. 저자인 제현주는 KAIST를 졸업하고 경영컨설팅, 투자전문가로 10년간 일을 한 후 협동조합 롤링다이스의 대표이며 번역가며 경영컨설턴트로 일을 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내리막세상이라고 정의한다. 이전 세대는 경제성장이란 큰 파도가 모두를 실어 올려주던 오르막 세상에 살았고 그 파도에 오르기만 하면 많은 것이 해결되었다. 지금 세대는 반대로 멈춰 서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사람이 더 많을 수 밖에 없는 내리막  세상이다. 대세가 이렇게 변화했으니 삶의 태도도 여기에 맞춰서 변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생존확률을 높이고, ‘행복하다’라고 여기면서 살아갈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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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한나 아렌트를 빌어서 인간의 활동을 노동, 작업, 행위로 구분한다. 노동은 생물학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으로 고대 사회에서는 노예의 일이었다. 유능한 것을 창조하고 싶은 욕구인 작업은 장인의 몫이었고, 마지막 행위는 타인의 인정을 받고 자기 실현을 하기 위한 행위로 귀족의 몫이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세 가지 활동의 구분이 사라진 시대다.  이제 일과 직업, 자기 실현을 구분하는 것은 사라져야한다. 무엇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에만 고민을 하고 애를 쓰고 있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자기 실현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소홀한 상태다. 저자의 의견 중에 가장 공감이 가는 것은 ‘일이 직업보다 크다’는 말이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일은 가변적이고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직업은 그 일의 한계를 규정하기 쉽다. 일이란 개념을 갖고 살아갈 생각을 해야 직업이 규정하는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저자 본인이 지난 십 년간 여러 일을 해보면서 어느 순간 ‘길을 잃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직업에서 소모당하는 것이 느껴지고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저자는 동시에 그 직업을 갖고 하는 일이 주는 보상과 만족감도 완전히 부인할 수 없었다. 이전에 나온 수 많은 책들과 이 책의 제일 중요한 차별점은 저자의 솔직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그렇다고 이 모든 상황을 사회 시스템의 문제, 이전 세대의 탐욕으로만 돌리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진보적인 집단행동이나 사회적 개혁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개인적 욕망의 실현을 기대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다.

 

저자는 솔직하게 “ 돈을 잘 벌고 싶지만 돈이 아니라면 의미없을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배울 것이 있는 일에 구미가 당기지만 너무 어려워 실패가 뻔 한 일은 하기 싫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살면서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인정하자고 한다. 그러면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마음. 그 일을 잘 해내고 싶은 마음, 그 일에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싶어한다.

 

저자는 일을 돈벌이로만 보면 속물로 보일 것 같고, 일이 곧 자기 자신인 위인전에나 나올듯한 사람을 옆에 두고 같이 일을 하면서 열정을 비교당하고 경쟁해야만 하는 불편감이 미움으로 번지는 것도 싫다고 하다. 또한,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지만, 일과 내 삶을 동일시 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와 모든 것을 나누고 싶지 않다. 우리는 놀듯이 일하고 싶지만 놀이대신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 사이 어디쯤이 내가 원하는 일하는 방식이 놓여있기를 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일과 직업, 그리고 의미 찾기와 더 나아가 적절한 삶에 대한 보상 사이 어딘가에서 균형을 찾기 위한 끊임없는 시도와 노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온전히 혼자 해낼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롤링다이스라는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운영하는데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직업을 따로 갖고 있으면서 이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었다. 10명의 조합원 모두에게 두 번째 일터인데 10명중 3명은 풀타임 직장을 갖고 있으면서 주말과 퇴근후에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은 역동적인 헤쳐 모여를 이용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고 있다. 저자는 보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는다. 사회적 기업이나 시민단체에서 뜻깊은 일을 하거나, 예술을 하는 경우 자기가 원해서 의미있는 일을 하니, 혹은 놀듯이 일을 하는 것이니 객관적 보상을 바래서는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비판한다. “일이 즐거워요”라고 외치는 순간 정당한 대가를 원하면 안되는 팔자좋은 한량이 되어버린다. 그래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적당한 보상과 만족, 자기 일에서 찾는 의미 사이에서 균형이 없이는 그 일을 절대 오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위해서 저자는 몰입할 수 있고, 판을 직접 짜고 장악하고 있다는 일하는 재미를 주며, 결과물을 만들어내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공동체 의식을 갖는 일을 찾아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책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실현하는 흐름안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일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는 개인과 사회의 객관적 흐름을 잘 직시하며 욕망의 총합안에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균형점을 찾아내서 방향성을 찾아낸 후, 혼자 고군분투할 때의 여러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대안으로 ‘무리짓기’를 제안한다. 집단안에 개인이 복속되어 사멸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온전한 개인이 정체성을 유지한 채 느슨한 연대를 하면서 함께 나아갈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노마드들이 생존을 넘어선 만족과 삶의 의미 찾기를 함께 해낼 가능성을 높일 가장 가능성 높은 방법론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 책을 읽다보면 대부분 어느 정도 자기 일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를 포함해서 학력, 이전 직장의 경력등 출발선이 다른 사람들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면이 있기에 이와 같은 다른 시도를 해 볼 엄두를 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할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사회는 앞으로 내리막 세상이란 거스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에서 각자 정처없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현 젊은 세대에게 주어진 환경이다. 여기에 같은 세대가 먼저 가보고 깃발을 꽂아놓고 고민과 시행착오를 보여주고 있다. 오르막 세상의 방식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전혀 다른 큰 인식과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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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제현주 저 | 어크로스
우리 시대의 일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되물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조건 속에서 어떻게 일에서 의미를 찾고 만족을 얻으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답을 찾아나선 저자의 끈질긴 모색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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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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