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최민석의 영사기(映思記)
스파게티를 먹는 간달프 <호빗>
어째서 간달프는 이탈리아어에 능통하게 되었는가.
가장 염려가 되는건 제임스 본드나, 브루스 윌리스가 악당을 소탕하고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물론, 머릿속에 그려본 장면이지만, 예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임스와 브루스는 한 건 하고 나서 별 것 아니라는 듯 농담을 건넨다. 예컨대, ‘해피 뉴 이어!’.
한 동안 본심을 잃고, 너무 진지하게 영화 이야기를 했다. 반성한다. 새해가 된 만큼 초심을 회복하여 열심히 이야기의 지경을 넓혀보려 한다(즉, 삼천포로 빠지려 한다). 그런데, 나는 지금 조금 정신이 없다. 원래부터 맑은 정신의 소유자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이유는 현재 스페인의 한 가정집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이 집에서 틀어놓은 TV 때문이다. 물론, 이곳에 객(客)으로 온 주제에 ‘시방 전 인류의 심금을 울릴 명문을 쓰고 있으니, 바보상자 좀 꺼주시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게다가, 이 말을 스페인어로 해야한다).
그렇다면, 나는 고작 TV 하나 틀어놓았을 뿐인데, 왜 원고에 집중하지 못하는가. 그건 바로 성우들의 과장된 어투와 연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제작된 일반 TV 프로그램이라면 별 위화감없이 들리겠지만, 문제는 TV에서 방영되는 건 미국 드라마다. 간단히 말해 미국 드라마를 스페인 성우들이 (마치 홈쇼핑 광고의 더빙처럼) 과장된 어투로 연기하는 걸 듣고 있는 셈이다(게다가 스페인어에는 된소리 발음이 많다. 예컨대, ‘요 뗑고 운 쁘로블레마(I have a problem). 쓰고보니, 정말 문제를 겪고 있는 것 같다). 물론, 공중파 TV라면 남녀노소가 함께 보므로 더빙이 필요하지만, 극장에서 보는 영화까지도 전부 더빙이 되어 있다는 건 좀 과하다 싶다. (영어를 구사하는) 외국인 전용 극장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자국어로 더빙된 헐리우드 영화를 상영한다. 프랑스도, 독일도, 스페인도, 이탈리아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DVD까지도 자국어로 더빙이 되어 있다(원한다면 영어버전으로 볼 수도 있지만, 수고를 들여 ’설정’에서 ‘메뉴’를 선택해야한다).
자, 무슨 연유로 이렇게 되었을까. 2차 대전을 일으키기 전에 히틀러는 헐리우드 영화에 흠뻑 빠져 있었다. 하루에 서 너편 씩 보는 영화광이었다. 얼마뒤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일 히틀러까지 헐리우드 영하에 취해 있었으니, 어쩌면 독일 국민들이 할리우드 영화에 빠져 자신들의 ‘민족성’을 잃어버릴까 염려하는 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유럽의 국가들은 이런 연유로 헐리우드에서 수입된 영화는 더빙을 하여 상영하기로 결정했다(물론, 문맹자들을 위한 배려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 탓에 유럽에서 지난 3개월을 보낸 나로서는 항상 ‘영어로만 상영되는 외국인 (전용) 극장’을 찾아 다녀야했다. 그러다, 결국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피해다닐 것만 아니고 한 번 경험을 해보자’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지난 주에 이탈리어로 더빙된 <호빗> 완결편을 극장에서 보았다(현재는 스페인이지만, 지난주에는 이탈리아의 밀라노 근교에 있었다. 아, 복잡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간달프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이 이탈리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마치 시칠리아 섬 어디에선가 태어나서 평생 스파게티와 피자만 먹고 살아온 것처럼, 어떠한 어려움도 없이 이탈리아어를 구사했다. 당연히 내용을 세세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단, 여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그렇듯, 이야기를 짜는 사람이라면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아아. 설마 이런 식으로 전개되진 않겠지’라고 우려한 대로, 영화가 전개되어 버렸기에 이야기의 큰 틀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야기의 전달이 목적이 아닌 영화이(었을지도 모르)므로,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그림을 감상하기엔 별 어려움이 없었다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건 철저히 개인의 문제인데, 나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며 줄곧 잠에 빠져들었기에, 이번에도 무슨 마법에 빠진 것처럼 꿈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판타지 영화라서 그런지,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그림도 꿈과 같았고, 꿈에서 본 장면도 영화 같았다. 그 때문에, 극장 문을 열고 나왔을 때 꿈과 영화를 구분하기 어려웠다.
내가 꿈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오로지 간달프가 스파게티를 ‘후루룩 후루룩’ 소리를 내며 굉장히 맛있게 먹은 장면 뿐이다. 손으로 집어 먹으며, 다 먹고 난 뒤엔 손가락에 묻은 토마토 양념까지 쩝쩝대며 빨아 먹었다. 게다가, 이탈리안 제스처로 손 끝을 모아 키스를 한 뒤 ‘우우우우우우움, 부오노(아아아아아아! 좋아!)’라고 했다. 이것만이 내 꿈 속의 장면일 것이라 생각한다. 다른 건 스크린으로 본 것인지, 내 감긴 눈 안에서 펼쳐진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혹시, 간달프가 실제로 영화 <호빗>에서 손으로 스파게티를 먹었다면 나는 깊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러다보니, 한국어로 더빙된 헐리우드 및 유럽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상상을 해볼 수 밖에 없었는데, 도무지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예컨대 혹성탈출 속편에서 유인원이 ‘애쁠!’하는 장면을 ‘사아과아!’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유인원이 영어를 쓰는 백인에게 실망하고 배신 당해 ‘노우!’하며 외치는 장면에, 뜬금없이 한국어로 ‘안돼!’하는 것 아닌가. 이때에도, 예의 바른 유인원이라면 ‘안 돼요!’라고 할 것인지, ‘싫어요!’라고 할 것인지, ‘아니요!’라고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번역가가 안 된 게 다행이다). 다이하드에서 악당을 죽이고 마침내 여유를 찾은 브루스 윌리스가 ‘메리 크리스’하는 건 자연스럽지만, 그가 한국어로 ‘즐거운 성탄 보내세요’라는 하는 건 서먹하다.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해야할 것 같다. 가장 염려가 되는건 제임스 본드나, 브루스 윌리스가 악당을 소탕하고 인사를 건네는 장면이다. 물론, 머릿속에 그려본 장면이지만, 예의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제임스와 브루스는 한 건 하고 나서 별 것 아니라는 듯 농담을 건넨다. 예컨대, ‘해피 뉴 이어!’. 하지만, 한국어로 더빙을 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변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세뱃돈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될 정도다. 공중파 TV야 어쩔 수 없더라도 영화관 만은 계속 오리지널 사운드로 상영해줬으면 한다. 물론, 아니면 말고(그나저나, 해피 뉴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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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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