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멋대로 뽑았습니다 2014년 베스트
별다방, 유나의 거리, 그리고 또?
이런 흔한 표현 굳이 나까지 쓰고 싶지 않지만, 다사다난했던 14년이 저물고 있다. 무엇을 생각해도 항상 그 이상을 볼 수 있었던 놀라운 한 해. 단군 이래 최악을 넘어 빅뱅 이래 최악이었다던 14년을 돌이켜 본다. 그래도 꼭 나쁜 일만 있던 건 아니었구나.
모두들 힘든 한 해였다고 말한다. 경기는 계속 불황이고, 들려오는 소식은 좋은 건 별로 없고 신문을 읽어봐도 화딱지 나는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내년이라도 딱히 좋아질 것 같지도 않다.
개인적으로도 2014년은 최악의 해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13년을 기점으로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 된 나는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허덕거리며 살고 있다. 가끔 뒤를 돌아보면 그래도 이만큼 지나왔구나 뿌듯하다가도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온다. 어쩌랴, 이렇게 시작했으니 이제 내 맘 내키는 대로만 살 수는 없음을.
원래는 이쯤에서 내가 2014년 읽은 최고의 책 10권이라거나, 최고의 음반 10선을 제시하는 게 편집장의 격에 맞을 듯 하나 불행하게도 나는 올해 뭐 하나 내세울 만한 독서를 하지도 못 했고, 음악을 듣지도 못 했다. 무엇 하나 이룬 것 없이 동동거리며 보낸 최악의 한 해였지만, 꼭 나빴던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좋았던 기억들을 끄집어 내보려 한다.
2014년 가장 열심히 한 일
역시 누가 뭐래도 가장 열심히 한 일은 온라인 쇼핑. 나의 본분에 걸맞게 우리 서점에서부터 시작하여(당연히 읽지 않은 것이 수두룩)이거니와 온갖 종합 쇼핑몰과 오픈마켓, 소셜커머스에서 각종 생필품, 아이용품을 사들이는 것도 모자라 직구에도 손을 뻗었고 이젠 일본 직구까지 시작했다. 세계는 넓고 내가 살 물건도 써볼 물건도 많다. 그리하여 지갑은…얇아졌다. 지갑이여, 홀쭉해져야 할 것은 그대가 아니라 나인데!
홀쭉해진 지갑을 아예 나노 수준으로 분해해 준 별다방 여의도일*점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4개월의 짧고도 긴 출산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온 나에게 작은 위로이자 낙이 되었던 것은 바로 한 잔의 커피였다. 이전에도 커피를 내려 먹긴 했지만, 별다방이 주는 작은 사치와 즐거움은 2014년 나를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리고 내게 남겨진 것은 골드 카드와 빈 지갑… 통장을 들여다 보면 그대가 나에게 준 위로가 가끔 분노로 바뀔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내일도 한 잔의 커피를 위로삼아 들이키리라.
나의 자랑 모비딕 텀블러와 골드 카드, 끽다의 상징 2015 별다방 다이어리
2014 나를 울렸던 그 드라마 그 노래
아이를 키우게 되면서 다소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레저 활동 1위는 TV 시청이 아닌가. 아이를 재우느라 고군분투하고, 이후에 분노의 이유식 제조를 하면서 흘낏흘낏 보게 된 JTBC <유나의 거리>. 진짜 이렇게 찌질하면서도 애달프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창조해 낸 김운경 작가에게 감사의 편지를 쓰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들(그러니까 JTBC 제작국과 편성국, 광고주님하들…)이 허락만 한다면 50부작 받고 거기에 50부작 더 얹어서 보고 싶었다. 도끼 형님 요양원 가던 날은 만복씨만 운 게 아니라 나도 울었다. 덕분에 홀로 깨어 이유식을 만들던 밤도 그리 외롭지만은 않았다.
워낙 음악을 안 듣는 사람이기에 감히 2014 최고의 노래라는 표현까진 좀 그렇고, 가장 나의 마음에 와 닿은 노래라고 하는 게 좋겠다. 다시 돌아온 god의 ‘미운 오리새끼’는 그 선율이나 가사 모두 오랜 공백을 뛰어넘어 마치 예전 그대로인 듯한 느낌인데, 개인적 상황과 맞물려서 그런지 정말 하루에 열 번도 넘게 돌려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 역시. 정작 앨범을 샀을 당시엔 이 노래는 항상 건너뛰었던 것 같은데 이제서야 이렇게 즐겨 듣게 되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직도 서울 어딘가의 다세대 주택에서 유나와 그들이 복닥복닥 살고 있을 것만 같은 건 왜일까.
그래도 조금 읽긴 했으니…읽은 중 굳이 고른 최고의 책
2014년 읽은 책 중 가장 내 마음을 뒤흔든 것은 한강의 『소년이 온다』였다. 그간 80년 오월의 광주에 대한 책은 읽을 만큼 읽었다고 생각했고 과연 여기에 대하여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해왔는데 『소년이 온다』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보여주었다. 책이 나온 시기와 세월호가 맞물려서일까, 소년의 입을 통해 흘러 나오는 이야기는 내 마음을 아프게 헤집었다.
그리고 또 한 권 꼽는다면 서효인의 『잘 왔어 우리 딸』. 부모들이 처음 아기를 만났을 때 생각하는 게 바로 이 책의 제목과 같은 생각이 아닐까. “잘 왔어 우리 OO이” 시인의 딸 은재는 다운 증후군을 갖고 태어났다. 시인은 담담하게 아이 얘기를 써내려 가는데, 어째서 그게 더 아프고 짠하게 다가올까. 이렇게 써내려 가기까지 남편이고 아빠인 남자는 얼마나 많은 울음을 울었을 것인가. 부디 은재와 아빠가 행복하길.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길. 2015년에는 모쪼록 어른들 때문에 우는 아이들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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