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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를 추억하는 책 2권

동네마다 레코드샵이 있었던 1990년대 『Paint it Rock』 『청춘을 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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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와중에 1990년대는 정말 (어떤 의미로는) 아름다웠구나 생각하게 한 두 책이 『Paint it Rock』(남무성 저), 『청춘을 달리다』(배순탁 저)이다.

마침내 드래곤볼 7개를 모두 모은 용사와 마법사. 그들 앞에 나타난 거대한 용. 잠이 덜 깬 눈치다.
“신성한 용이시여. 저희가 마침내 드래곤볼 7개를 모았습니다. 이제 저희의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저희의 소원은 세계평화입니다.”
청룡언월도처럼 빛나는 발톱으로 코딱지를 파던 용. 톡, 튕기며 입을 연다.
“진짜냐? ㅋㅋ”
“네, 그렇사옵니다. 여전히 지구에는 많은 폭력이 존재합니다. 신성한 용께서 어서 평화를 내려주시옵소서.”


“안타깝지만 해주고 싶어도 못해. 너네 두 명이 70억 명 소원을 부탁하는 건 반칙이잖아. 딴 거 말해 봐. 아니, 그전에 내가 선택지를 줄게. 소원을 건건으로 들어주니 좀 힘들더라고. 지금까지 소원을 빅데이터화해서 분석해 보니 크게 두 가지야. 1번, 청춘으로 돌아간다. 2번, 로또 1등. 아, 로또 1등 대신 연금복권도 가능해. 두 가지 중 골라봐.”
용사와 마법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외쳤다.
“2번이요.”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은 드라마나 <건축학 개론>과 같은 영화에서 청춘은 왠지 아련하면서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러나 현실로 들어가서 청춘을 지난 사람에게 드래곤볼 7개를 주고 용신을 소환하라고 하면 2번을 고르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을 테다. 10대, 20대로 돌아간다 한들 딱히 좋을 건 없으니까. 


대학입시 경쟁도 다시 해야 하고, 남자라면 군대도 가야 하고, 졸업한 뒤에는 지난한 취준생 시절도 겪어야 한다. 지금도 수중에 있는 돈은 늘 부족하지만, 그때는 부족 정도가 아니라 전무했다. 호르몬의 활동은 왕성해서 오늘은 울증, 내일은 조증, 감정 기복도 심하다. 대충 이런 이유로 나 역시 마트에서 유통기한 얼마 안 남은 계란판을 샀는데, 거기에 마침 드래곤볼이 있어 용신을 소환할 수 있다면 2번을 택하리라. 연금복권 말고 로또 1등으로.

 

그럼에도 청춘을 돌아보면 아름다운 시절은 있었다. 눈치챈 독자라면 알겠지만, 이제부터 무려 본문이다. 우리는 독해 문제를 풀 때 시간이 부족하다면 ‘그러나’, ‘하지만’, ‘그럼에도’ 등의 접속사를 찾으라는 말을 듣지 않았던가!

수지와 같은 여성과 대화라도 해 봤다면, 그게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남중남고를 졸업하고 대학에서는 겉돌았다. 그런 추억이 있을 리가. 대신 1990년대와 2000년대 나를 보듬어 준 건 팔 할이 음반이었다.

 

채널예스.jpg

 

지금은 다 사라졌지만, 1990년대만 해도 동네 곳곳에 레코드샵이 있었다. 유명 뮤지션의 신보가 나오면 레코드샵 쇼윈도우에 음반 포스터가 붙곤 했다. 음반 포스터가 없다면 색 도화지에 ‘전람회 1집’을 손으로 써서 붙이기도 했다. 레코드샵을 지나면서 어쩜 저리도 글씨가 예쁠까 하고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레코드샵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필체가 필수였던 것 같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동네 레코드샵에서 욕망을 충족했지만,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듣는 음악이 좀 더 다양해졌다. 더는 동네 레코드샵에서 욕구 채우기가 불가능했다. 마침 레코드샵 주인이 바뀌었는데, 그 주인은 내가 부탁한 음반을 갖다 놓는다고만 말하고는 제대로 준비한 적이 없었다. 할 수 없이 큰 레코드샵이 있는 남포동, 서면 일대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가장 기다리는 날은 주말이 아니었다. GMV나 HOT MUSIC 발간일이었다. 서점에 들러 사고 집에서 메모하면서 읽었다. 듣고 싶은 음반을 리스트업해뒀다, 용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싶으면 대형 레코드샵으로 갔다. 취향은 달랐지만 음악을 좋아했던 친구와 함께 가서 쓸쓸하지는 않았다. Rhapsody,  Dream Theater, 예레미를 들고 계산대 줄에 선 나는 Oasis, Rasidohead를 손에 쥔 친구를 보며 니체가 당시 유럽을 쇠락해가는 문명이라고 깔보던 느낌과 비스무리한 감정을 느꼈다. 저런 연약한 소년 같으니라고. 친구와 나는 누가누가 더 많이 아는가를 경쟁하려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 뮤지션을 듣곤 했다. 그래서 집에는 뮤지션 이름도 생각 안 나는 다크 앰비언트 계열의 CD가 내려오는 먼지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대학에 가고, 군대에 다녀 온 뒤, 레코드샵은 자취를 감췄다. GMV와 HOT MUSIC도 없어졌다. 지금도 음반은 예스24에서 오전에 주문해서 오후에 받아 저녁 때쯤이면 ‘이야, 기타 쥐긴다’ 할 수 있지만, 뭔가 예전의 어렴풋하게 아름다웠던 그 느낌은 복원할 수가 없다.

 

그런 와중에 1990년대는 정말 (어떤 의미로는) 아름다웠구나 생각하게 한 두 책이 『Paint it Rock』(남무성 저), 『청춘을 달리다』(배순탁 저)이다. 『Paint it Rock』은 록 역사를 진지하면서도 우스꽝스럽게 그린 책이다. ‘역사’는 자칫 고루해질 수 있는데, 저자 특유의 언어유희와 냉철한 비판력이 만화와 어우러진 수작이다. 아직 12월이 남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올해의 책을 꼽으라면 감히 이 책을 꼽겠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Dream Theater의 Pull me under 소개가 나올 때, 뿜어버렸다. 풀 밑 언덕, 풀 밑 언덕~~~~!

 

『청춘을 달리다』는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인 배순탁이 저자다. 왠지 팝을 다뤘을 것 같지만, 가요를 소재로 했다. 1990년대 가요를 수놓은 여러 뮤지션과 명반에 얽힌 저자의 개인사를 공개한다. 복잡한 장르 계보, 음악적 전문 용어를 최대한 지양해서 음악평론적 용어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그 음악이 왜 음악적으로 위대한지보다는 그 음악이 왜 배순탁에게 뜻깊은지에 좀 더 초점이 맞춰있는 책이라, 1990년대 음악을 좋아한 사람이라면 공감 갈 이야기가 많다. 결론적으로 두 책 모두 음악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두 책을 읽고 한동안 존재를 잊고 지냈던 WASP의 「Crimson Idol」을 다시 듣는 중이다. 문득 생각 나서 검색했더니, 국내에서는 구하기 힘들고 해외구매로 예스24에서 살 수 있다. 검색한 김에, 2003년에 분실해버린 Heavenly 2집 「Sing of the Winner」를 찾아봤다. 품절이다. 딴 사이트도 없다. 아마존재팬에서도 못 찾겠다. 아…

 

생각이 바뀌었다. 드래곤볼 7개를 모은다면.

“신성한 용이시여 제 소원은 Heavnely 2집 재발매 및 내년 내한 공연 성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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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을 달리다배순탁 저 | 북라이프
감성이 가장 충만했던 그 시절,‘운 좋게’도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었지만 그에게 ‘청춘’이라는 단어는 조금 특별했다. “나에게 있어 청춘이란, 낭만적인 동시에 비참함을 어떻게든 견뎌야 했던, 흑역사의 한 페이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낭만보다는 비참과 좌절을 겪어내면서, 나는 어른이 되는 법을 조금은 배울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있었던 것이 바로 음악이다. 음악이 없었다면 글쎄, 나는 아마도 정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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