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잘 가요, 나의 영웅 신해철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던 나의 영웅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아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그가 아프다는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는 곧 털고 일어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10월의 마지막 주, 뉴스에서는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처음엔 뭔가 아주 이상하고 나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나를 지배했던 것은 바로 신해철이었다. 88년도 대학가요제에서 기타 메고 노래하던 그 남자, 정말 잘 생긴 것 같다며 친구와 전화로 호들갑 떨던 때부터 말이다. 처음엔 곱상한 외모와 감미로운 노래를 들려주는 아이돌이었으나,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그는 점차 자신의 색깔이 분명한 음악을 만들며 밴드를 결성하는 등 뮤지션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또한 그는 우리들의 밤을 책임지던 라디오 DJ로도 활약했다. 대개 신해철의 라디오, 라고 하면 ‘음악도시’나 ‘고스트 스테이션’을 떠올리는 이들이 더 많겠지만, 나에게 신해철의 라디오는 “밤의 디스크쇼”였다. 학창시절 나의 밤을 책임지던 그가 마이크를 놓던 그 밤엔 얼마나 울었는지! 지금도 그 마지막 밤에 틀어줬던 Camel의 ‘long goodbyes’나 New trolls의 ‘Adagio’, Alan Parson Project의 ‘Old and Wise’는 아직도 즐겨 듣는 노래들이다.


대학 시절까지도 그의 음악을 즐겨 듣고 공연에도 빠지지 않았으나,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서서히 신해철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가 고스트 스테이션 DJ로 ‘마왕’이라는 호칭을 얻기 시작한 시점과 일치하는 지라 아직도 나는 그가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것이 약간은 낯설긴 하다. 아무튼 내가 그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동안 그는 거침없고도 솔직한 언행으로 많은 추종자들과 적을 한꺼번에 거느리게 되었고, 음악 활동 역시 모노크롬, 비트겐슈타인 등 다양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20140711_151811.jpg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그의 사인이 담긴 앨범


다시 그의 음악을 찾아 듣게 된 것은 바로 올해의 일이었다. 그간의 활동 공백을 깨고 <Reboot Myself>라는 타이틀의 미니 앨범을 낸 그와 ‘김태훈의 편견’ 코너를 통해 인터뷰 요청을 하게 되면서 간만에 앨범을 구입해 듣게 된 것. (인터뷰 보러가기)

 

<Reboot Myself> 라는 타이틀처럼, 이번 신보는 예전 원맨밴드를 표방했던 <Myself> 앨범의 사운드를 떠올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7월의 어느 날, 신사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신해철은 예전보단 조금 더 살이 찌고 피곤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음악과 가족에 대한 얘기를 하는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고도 재미나게 들려주는 그의 모습은 ‘아, 그 역시 아빠로구나’라는 생각에 나를 웃음짓게 했었다. 모든 인터뷰와 촬영을 마친 후 내가 바로 아까 당신이 얘기하던 ‘내 음악을 듣고 자라난 세대’라는 말을 수줍게(?) 건네고 CD에 사인을 요청했는데…마왕은 심드렁했고 나 혼자 가슴 벅차 올랐건 것이 마치 엊그제의 일만 같은데…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그게 나의 학창시절 우상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결국 발인 전날 팬들이 조문할 수 있도록 24시간 개방한다는 소식을 듣고 택시를 타고 다녀왔다. 나 말고도 그의 음악과 생각을 사랑하고 아꼈던 이들이 밤 11시를 훌쩍 넘긴 시간까지도 줄을 지어 조문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 너무도 의연한 영정 사진을 마주하고 보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20141031_113519.jpg

팬들이 직접 만들어 장례식장에서 나눠주던 조문보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을 사들고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는데, 때마침 TV에서 신해철이 2007년에 출연했던 언플러그드 공연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첫 곡으로 흘러 나오는 ‘날아라 병아리’를 듣고 울고, 마지막 영상에 쓰여 있는 낯선 글자 ‘故’를 보고 또 한 번 울었다.


잘 가요, 편히 쉬어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던 나의 영웅.
같이 늙어가길 바랐고 그럴 거라고 믿었는데 이제는 나만 나이를 먹어가겠네요. 


그대 현실 앞에 한없이 작아질 때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영웅을 만나요
무릎을 꿇느니 죽음을 택하던 그들
언제나 당신 안의 깊은 곳에 그 영웅이 잠들어 있어요
그대를 지키며 그대를 믿으며
- The Hero, N.EX.T 4집 Lazenca / A space Rock Opera 中


 

 

 

[추천 기사]

- 신해철 “부활 김태원은 나의 진짜 스승”
- 뮤지션 신해철의 세상과 나
- ‘가수’가 아닌 ‘음악가’로의 상승을 꿈꾸다 - 신해철 (1991)
- 신해철 낭만주의, 요즘 시대에도 통할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오늘의 책

첨단 도시 송도를 배경으로 한 세태 소설

제1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화려한 고층 건물에 살고 있는 중산층부터 그들의 건물이 반짝일 수 있도록 닦아내는 청년 노동자까지 오늘날 한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계층의 서사를 써냈다. 그들의 몸을 통해 욕망과 상처로 얼룩진 저마다의 삶을 복합적으로 표현했다.

사유와 성찰의 회복과 공간의 의미

빈자의 미학' 승효상 건축가가 마지막 과제로 붙든 건축 어휘 '솔스케이프’. 영성의 풍경은 파편화된 현대 사회에 사유하고 성찰하는 공간의 의미를 묻는다.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공간이야말로 건축의 본질이기에, 스스로를 어떻게 다듬으며 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여정은 담담한 울림을 선사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을 만든다.

마인드 셋 전문가 하와이 대저택이 인생철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제임스 알렌을 만났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집어 들었던 제임스 알렌의 책이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담담하게 써 내려갔다. 생각하는 대로 삶이 이루어지는 내면 생각의 힘과 그 실천법을 만나보자.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순간

‘이기주의 스케치’ 채널을 운영하는 이기주의 에세이. 일상의 순간을 담아낸 그림과 글을 통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소재를 찾는 것부터 선 긋기, 색칠하기까지,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 인생이 배어 있다고 말한다. 책을 통해 그림과 인생이 만나는 특별한 순간을 마주해보자.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