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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관현악으로 그려낸 인상주의 회화
인상주의 음악의 문을 마침내 열어젖힌 걸작,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는 확연히 맛이 다른 프랑스 근대음악의 첫걸음으로 기억되는 관현악곡입니다.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
드뷔시의 음악 중에 이 지면에서 이미 언급한 것으로는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가운데 ‘달빛’, 또 지난 달 게재했던 <바다 -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가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드뷔시의 빼놓을 수 없는 걸작인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골랐습니다. 연대기적으로 보자면 1890년 작곡했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과 1903년부터 3년간에 걸쳐 썼던 <바다 -관현악을 위한 3개의 교향적 소묘>의 중간쯤에 위치합니다. 드뷔시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1892년부터 3년 동안 작곡했습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문을 마침내 열어젖힌 걸작, 독일?오스트리아 음악과는 확연히 맛이 다른 프랑스 근대음악의 첫걸음으로 기억되는 관현악곡입니다.
음악으로 들어서기 전에 드뷔시의 성장 과정을 잠시 복기해 보겠습니다. 그는 1862년 8월 22일, 생 제르맹 앙레(Saint-Germain-en-Laye)라는 곳에서 태어났지요. 파리 중심부에서 서쪽으로 20km쯤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입니다. 드뷔시는 다섯 남매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고 부모는 그릇가게를 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풍족한 집안은 아니었지요. 게다가 장사도 잘 안됐던 모양입니다. 드뷔시가 태어나고 2년 뒤에 가게를 정리하고 파리로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후 이런 저런 직업을 전전하던 드뷔시의 아버지는 1871년에 시민들과 노동자들의 봉기로 세워졌던 혁명정부 ‘파리 코뮌’(3월 18일~5월 28일)에 참여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물론 파리 코뮌은 2개월 만에 정규군에게 진압되고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옥살이를 했습니다. 드뷔시의 아버지도 이때 감옥에 갇혔다고 합니다.
그런데 드뷔시가 다섯 살로 추정되는 시절에 찍은 사진이 한 장 남아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누구나 귀엽지만 드뷔시도 역시 그렇습니다. 모자를 쓰고 망토를 두른 꼬마가 세발자전거에 앉아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사진이지요. 눈매를 약간 찡그리고 있는 꼬마의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고집스러워 보입니다. 1862년부터 1918년까지 살았던 드뷔시는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겨놓고 있는데, 이 다섯 살 무렵의 사진이 가장 어린 시절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홉 살 무렵부터였지요. 한데 이 대목에서 또 재미있는 것은 드뷔시의 음악선생이었던 모테 드 플뢰르비유(Maute de Fleureville) 부인이 프랑스의 상징주의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장모였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베를렌의 아내였던 마틸드 모테의 어머니였던 것이지요. 그런데 모테 부인이 드뷔시를 가르치기 시작하던 그 무렵에 베를렌은 17세의 천재시인 랭보를 향한 동성애적 사랑에 광적으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1년밖에 안된 아내 마틸드와 장모인 모테 부인이 마음이 편했을 리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모테 부인은 그렇게 속을 끓이면서도 어린 제자를 손주처럼 아끼며 정성껏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마 교습료도 거의 못 받았을 겁니다. 드뷔시의 아버지는 감옥에 갇혀 있었고 그렇다고 어머니가 경제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모테 부인은 참으로 탁월한 선생이었습니다. 어린 드뷔시를 가르친 지 1년 만에 파리 국립음악원에 입학시킵니다. 그러니까 드뷔시는 고작 열 살 때 이 유명한 음악원의 입학을 허가받습니다. 할머니뻘인 모태 부인 덕택이었다고 봐야 하겠지요. 그때부터 드뷔시는 12년 동안 이 학교에 다니면서 공부합니다.
비슷한 연배의 동시대 작곡가들인 말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처럼 드뷔시도 한때 바그너의 음악에 매료됐지요. 하지만 어린 시절의 고집스러운 눈매에서도 느껴지듯이 드뷔시에게는 반골 기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파리 국립음악원 시절에도 정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교수들과 충돌이 잦았다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그는 혁명기의 프랑스를 몸으로 겪으면서 독일?오스트리아의 음악어법과는 다른 새로운 방향에 대해 늘 고민했다고 합니다. 학창시절에 접한 바그너의 음악을 통해 풍부하고 새로운 화성에 대해 눈을 뜬 것이 분명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예술가적 자의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봐야 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드뷔시의 음악을 통해 독일?오스트리아와는 다른 ‘프랑스적 분위기’를 확연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드뷔시 개인의 기질과 취향에서 비롯하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동시에 드뷔시가 살았던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예술에서 나타났던 흐름들을 도외시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달빛’을 설명하는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드뷔시의 음악은 당시 프랑스 예술의 새로운 조류였던 시에서의 상징주의, 또 회화에서의 인상주의와 깊은 연관성을 갖습니다. 파리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드뷔시가 이탈리아 로마에서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프랑스로 돌아와 ‘화요회’ 멤버로 참여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앞에서 했습니다. 시인 말라르메가 자신의 집에서 매주 화요일 밤마다 열었던 이 모임에는 상징주의 시인들과 인상주의 화가들이 참여하고 있었지요, 참, 조금 전에 등장했던 시인 베를렌도 이 모임의 멤버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듭니다. 술독에 빠져 살았던 이 천재시인은 랭보와 말다툼 끝에 권총을 발사했다가 감옥에 다녀왔고 아내인 마틸드와는 이혼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시인으로서의 재능은 여전히 시들지 않았지요.
시에서의 상징주의가 언어의 지시적 측면을 벗어났던 것처럼 회화에서의 인상주의는 사물의 고유한 색에서 탈피합니다. 언어가 나의 심상 속에서 새로운 의미로 재생되는 것처럼, 사물의 색감이란 빛에 의해 달라진다는 것이 당시 인상주의자들의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고유한 색’이란 일종의 고정관념일 수 있지요. 인상주의자들에게 ‘사과는 빨간색, 바나나는 노란색’이라는 관념은 의미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함께 사물의 정해진 모양, 그 항구적인 형태도 함께 사라져 버립니다. 대상과 배경을 구분해주는 경계, 이른바 윤곽선이 흐릿해지면서 아련한 느낌의 몽환적 화풍을 낳았던 것이지요.
물론 드뷔시 본인은 ‘인상주의’라는 표현을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을 불편해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의 음악이 보여주는 인상주의적 특징마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예전에 이 지면에 썼던 글에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을 ‘귀로 듣는 회화’라고 표현했었는데요, 말하자면 그 음악은 피아노 한 대로 그려낸 인상주의적 회화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특히 세 번째 곡인 ‘달빛’은 몽롱하면서도 달콤한 달밤의 정경을 인상적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지요.
이번에 듣는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관현악으로 그려낸 인상주의 회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곡은 ‘화요회’의 리더였던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시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지요. 사실 말라르메가 <목신의 독백>이라는 제목으로 이 시를 처음 썼던 시기는 1865년이었습니다. 드뷔시가 고작 세 살 때였지요. 11년 뒤에 말라르메는 이 시를 개작해 <목신의 오후>라는 시집으로 다시 간행했고 당시 그 시집에 삽화를 그린 인물이 인상주의 화가 마네였습니다. 그도 역시 ‘화요회’의 멤버였지요.
시에 등장하는 ‘목신’(牧神)은 그리스 신화에서 판(Pan)으로, 로마 신화에서는 파우누스(Paunus)로 불립니다. 반은 사람이고 반은 염소(양)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시칠리아의 초원을 배경으로, 물의 요정 님프와 나이아드에게 완전히 반한 목신이 꿈인지 현실인지를 잊은 채 그 요정들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몽롱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드뷔시는 이 상징주의 시를 모티브로 삼아 관능성마저 느껴지는 인상주의 풍의 음화(音畵)를 그려놓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지요. “이 곡은 말라르메의 시를 극히 자유롭게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목신의 갖가지 욕망과 꿈이 열기 속을 헤맨다. 님프와 나이아드는 겁을 먹고 달아나고, 목신은 깊은 잠에 빠져들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된다는 꿈에 취한다.”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은 악장 구분 없이 약 10분간 연주되는 곡입니다. 가장 먼저 플루트가 아지랑이처럼 아련하게 흔들리는 주제를 연주합니다. 아라베스크 풍의 선율이지요. 잠에서 깨어난, 하지만 아직은 정신이 몽롱한 목신이 갈대피리를 부는 모습을 떠올리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오보에와 클라리넷, 하프가 가세합니다. 이 주제를 여러 번 변주하면서 목신의 욕망과 몽상을 관능적으로 그려냅니다. 빠른 선율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겁을 먹고 달아나는 요정들의 모습을 상상하길 바랍니다. 이어서 환상에 빠진 목신이 관능에 빠져드는 장면이 점점 고조됩니다. 후반부로 접어들면 약간 우스꽝스러운 느낌의 목관 선율이 잠시 울려 퍼지다가 음울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로 되돌아옵니다. 처음의 아라베스크 주제선율이 다시 연주되고, 아스라한 여운을 남기면서 다시 잠에 빠져드는 목신을 묘사합니다.
▶앙세르메,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1957년/Decca
드뷔시의 <바다 - 3개의 교향적 소묘>를 언급했을 때도 추천했던 음반이다. 드뷔시의 음악에서 가장 중요하게 거론되는 색채감, 아지랑이처럼 퍼져나가는 몽롱함을 잘 표현해낸 연주다. 앙세르메의 지휘를 구식일 것이라고 예단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실제로 그의 지휘는 요즘 들어도 여전히 생기 넘치는 감흥을 전해준다. 드뷔시의 다른 관현악 걸작들, <바다>와 <야상곡> <봄>이 함께 담겨 있다.
▶장 마르티농, 프랑스 국립방송교향악단/1973년/Warner Classics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듣는 음반이다. 프랑스 태생의 지휘자인 마르티농이 프랑스 악단을 이끌고 들려주는, 깔끔하고 세련된 연주다. 과도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 음악의 표정을 충실하게 살려내고 있다. 드뷔시의 음악에 관한 한, 교과서처럼 가까이에 둘 필요가 있는 음반이다. 1910년 태어난 마르티농은 1970년부터 프랑스 국립방송교향악단을 이끌다가 1976년 세상을 떴으니 이 녹음은 그의 말년작이라고 해야겠다. 8장의 CD에 드뷔시와 라벨의 관현악곡들을 수록한 전집을 구매하는 것이 낱장 구매보다 가격적으로 유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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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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