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쌩얼을 보다, <프랭크>
희비극의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치유함을 기대하게 되는 다른 음악영화와 달리 <프랭크>는 기괴한 곡과 가사, 특이한 사람들로 가득한 영화다. 치유되거나 다시 듣고 싶을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는 없지만, 주인공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
가려진 것과 보이는 것, 가면을 쓰고 있어 더 잘 보이는 얼굴과 아무 것도 가려지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하는 얼굴, 그 사이의 간극. <프랭크>는 가면을 쓴 천재 뮤지션과 재능 없는 작곡가 지망생 사이의 여정을 통해 간절한 열정과 타고난 재능의 다른 얼굴이 결국은 하나로 묶일 수 있는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희비극의 정서를 공유하는 영화다. <원스>를 시작으로 기대 이상의 흥행으로 모두를 놀라게 한 <비긴 어게인>처럼 뮤지션의 생활을 다루는 음악 영화이긴 하지만, 앞선 두 영화가 매끈한 종이에 질문과 해답을 적어주었던 것과 달리 <프랭크>의 종이는 거칠다. 그래서 선명하게 찍힌 질문지 아래 답을 적어나가기는 조금 껄끄러울 수 있다. 그렇다고 <프랭크>가 독해가 어렵다거나 오독할 만큼 잠재적이고 복잡한 이야기라는 것은 아니다. 호불호가 분명히 갈린다는 얘기다.
직장인 존(돔놀 글리슨)은 키보드로 곡을 만들어 보는 아마추어 작곡가다. 그는 세상의 모든 소리와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영감을 얻어 보려고 하지만, 몇 마디의 멜로디와 가사를 쓰기도 힘들어 하는, 그다지 재능은 없는 지망생이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인디 밴드 소론프로프브스에 키보드 주자로 참여할 기회를 얻는다. 존과 밴드 멤버들은 녹음을 위해 아일랜드 시골의 집을 빌려 단체 생활을 한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작곡방식, 괴짜처럼 보이지만 단단한 팀원들, 예측불허의 멜로디와 기이한 전자 사운드 사이에서 존은 그들과 함께이고 싶지만 어딘가 늘 한발 물러서 부유하는 듯하다. 소론프로프브스 밴드의 생활을 몰래 촬영한 존은 트위터와 유튜브에 올리고, 존이 올린 영상 때문에 이 밴드는 미국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게 된다. 드디어 유명해진 기회를 얻은 이들, 클라라는 마지막까지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알려지는 것을 거부한다. 과연 이들의 공연은 성공할 수 있을까?
<프랭크>는 관객들에게 진기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가면을 뒤집어 쓴 프랭크를 중심으로 모인 밴드 멤버들은 어떻게 보면 프랭크처럼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이다. 가장 평범하고 일상적 생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주인공 존도 음악 이외에 누구와도 쉽게 소통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프랭크가 뒤집어 쓴 가면은 세상과 단절된 사람들 사이를 소통하게 만드는 가장 진실한 얼굴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조용하게 읊조린다. 그리고 그 관망 속에서 우리들은 프랭크의 가면을 벗기고 싶어 하는 존의 욕망에 동조하기도 했다가, 끝내 얼굴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 프랭크의 속사정에도 동조하게 된다.
<프랭크>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유형의 예술가를 만난다. 빼어난 재능에도 세상과 단절된 채 소통하고 싶어 하지 않는 클라라, 천재 뮤지션이고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욕망도 있지만 그 방법을 도통 모르는 프랭크, 방법도 알고 소통도 하고 싶지만 재능이 없는 존. 이 예술가들의 욕망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만나고 그 얼굴을 바꾼 채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욕망, 욕심, 혹은 좌절된 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세 가지 욕망은 화합되지 못하고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존은 모든 것을 망쳐버린 듯하지만, 다시 존을 통해 뭉친 멤버들은 이전과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미 큰 깨달음을 얻은 존은 그들을 등지지만,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 <프랭크>를 다 컸지만, 역시 덜 자란 어른들의 성장담으로 봐도 무방한 이유다.
음악을 통해 소통하고 치유함을 기대하게 되는 다른 음악영화와 달리 <프랭크>는 기괴한 곡과 가사, 특이한 사람들로 가득한 영화다. 치유되거나 다시 듣고 싶을 만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노래는 없지만, 주인공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다독거리는 감독의 따뜻한 시선은 충분히 공감 가능하다.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혹은 밴드를 소통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존의 선의는 외부의 공기와 만나면서 특이하지만 결코 나쁘지는 않은 밴드 멤버들을 ‘괴짜’, ‘미친 년’이라 불리게 만든다. 밴드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였지만 각자의 생활은 역시 각자 버티고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주장도 넌지시 건넨다. 관객을 치유하려는 정서적 움직임 대신, 치유되어 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통해 나 역시도 살풋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힘을 가진 영화가 <프랭크>이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수순으로 이어지는 영화의 결말 역시도 파격적이진 않지만, 에이브러햄슨 감독은 큰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가장 순수한 표정을 드러내는 프랭크라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는 나와 다른 개인의 삶과 그 태도를 존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벗어도, 가려도 역시 마이클 패스벤더
<쉐임>에서의 전라 노출은 영화의 화젯거리였지만, 영화를 보고나면 섹스중독에 걸린 채 황폐해진 내면을 다스리지 못해 무너지는 그의 흔들리는 눈빛과 공허한 표정만 기억에 남긴다. 일명 미모낭비라는 우스개를 만들어낸 <프랭크>를 통해 마이클 패스벤더는 상영시간 거의 대부분을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가면 속에 마이클 패스벤더가 있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도 가면 속 얼굴이 궁금해질 만큼, 그의 연기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목소리와 몸짓만으로 우리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던 다양한 표정을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다. 2015년 <맥베스>는 물론 2016년까지 필모그래피를 가득 채우고 있는데도 또 보고 싶은 배우가 마이클 패스벤더다. <어바웃 타임>의 귀여운 주인공 돔놀 글리슨은 순박하고 귀여운 매력으로 어쩌면 밉살스러울 수 있는 밴드의 훼방꾼을 사랑스럽게 만들어 낸다. 제이크 질렌할의 누나 매기 질렌할은 까칠하고 폐쇄적인 클라라로 분해 갈등을 조장하고 봉합한다. 영화가 필요이상으로 점점 길어지는 요즘, 1시간 30분이라는 적당한 러닝 타임을 탄탄하게 조여 주는 배우들의 연기 덕분에 대중적이지 않은 영화지만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기괴하다고 생각되지만,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프랭크>의 음악 역시 중독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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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