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연재종료 > 차우진의 사운드 & 노이즈
TV는 음악을 싣고
실시간 차트 10위권에는 OST가 4곡이나 올라 있다 「너를 사랑해」「괜찮아 사랑이야」「잠시 안녕처럼」
21세기의 드라마 사운드트랙은 맥락보다 보편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박효신이나 백지영을 비롯해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처럼 ‘누가 불렀는가?’란 점이 더 부각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차우진의 사운드 & 노이즈’가 연재됩니다.
실시간 음원 차트를 종종 뒤적인다. 나름 동시대적인, 물론 찰나에 사라지거나 뒤집어질 것이지만, 유행이 대략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행의 감각은 오직 최신곡에 국한되지는 않는다. 차트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건 텔레비전이다. 요새 누가 TV를 보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TV야말로 스마트 시대에 가장 스마트한 지위를 누리고 있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해도 TV가 사라질 일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TV는 여전히 강력한 멀티미디어 플랫폼이다. 아무튼, 2014년 9월 1일 현재, 실시간 차트 10위권에는 TV프로그램의 삽입곡이나 관련곡이 4곡 포함된다. 영화 사운드트랙도 한곡 있다.
일단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사운드트랙 음원이 두 곡 있다. 윤미래가 부른 「너를 사랑해」와 다비치의 「괜찮아 사랑이야」. 아무래도 인기 드라마여서 삽입곡이나 주제곡도 관심을 받는 것이다. 에일리가 부른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의 「잠시 안녕처럼」도 순위권에 들었다. <쇼미더머니 시즌3>에 출연 중인 바비의 「연결고리」도 상위권에 머문다. 키이라 나이틀리와 마크 머팔로가 출연한 <비긴 어게인>의 사운드트랙 「Lost Stars」도 있다. 10곡 중 5곡이 드라마와 영화의 삽입곡인 이런 상황을 보면서 누군가는 현실을 개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문화 산업에 있어서 이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불만을 성토할 일도 아니다.
중요한 건 음악이 점차 영상화되고 있다는 점
애초에 대중음악은 미디어와 밀접했다. 1960년대의 록 음악은 당시 청년 세대와 밀착되어 성공했는데, 여기에 크게 기여한 것이 라디오다. 비틀스가 바다 건너 미국으로 ‘침공’할 때 라디오 뉴스는 10시간 이상 소요되는 이동 루트를 생중계로 보도했다. 1980년대 MTV의 성공은 말할 필요 없이 1가구당 두 대 이상 설치된 텔레비전 덕분이었다. 80년대의 10대들은 거실이 아닌 자신의 방에 놓인 텔레비전을 통해 마이클 잭슨, 듀란듀란, 마돈나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1990년대 팝의 지구적 성공 배경에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시스템이 존재했다. 셀린 디옹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 중 하나가 된 건 <타이타닉>의 무시무시한 성공 덕분이었다. 21세기의 대중음악은 드라마 삽입곡과 유튜브 공유 버튼을 통해 시장을 선점한다. 대중음악과 미디어의 관계는 TV가 탄생하던 때부터 밀접했고 영화가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부터는 더욱 더 강화되었다.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스, 록큰롤과 록이 10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 데에는 TV와 영화의 역할도 컸다. UIP직배로 대변되는 1980년대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지구적인 확장은 영화 사운드트랙의 상업적 가치를 드높였고 음반사들은 영화의 기획 단계부터 개입해 사운드트랙을 구성했다. 21세기 이후, <C.S.I.>로 대변되는 ‘미드’ 열풍이 유럽과 남미, 아시아를 지배하면서 드라마의 삽입곡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중요한 건 음악이 점차 영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9년에 유니버설, 소니뮤직, 아부 다비 미디어가 지분을 나눠 투자한 고화질 동영상 서비스 베보(VEVO)는 현재 가장 대표적인 동영상 채널이 되었고, 2000년의 <C.S.I.>나 <어메이징 레이스>이후 급성장한 드라마/리얼리티 쇼는 각 에피소드에 삽입된 음악이 곧장 싱글 차트 상위권에 진입한다는 공식을 낳았다. 현재 가장 유명한 록 밴드 중 대다수가 그렇게 알려졌다. 이점에선 한국도 마찬가지다. 2000년 이후의 한류는 드라마를 통해 동아시아라는 시장을 개척했고, 사운드트랙 역시 곳곳에 소개되었다. 조수미나 이문세 등 중견 가수들의 ‘고급’ 사운드트랙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의 솔로, 인디 밴드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현재 드라마 사운드트랙은 한국 음악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특히 산업적으로 <가을동화>가 한류를 이끈 2000년 이후부터 기존과 다른 양상을 보였다.
한류로 인해 대규모 자본과 기획이 가능한 드라마 전문제작사가 등장했는데,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상징적이다. 하나는 드라마 판권에 대한 방송국의 권리가 절대화되며 계약상 제작사가 사운드트랙에 한해 저작권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또 하나는 그로 인해 드라마제작사와 음반제작사가 협업, 혹은 합병되는 구조적 변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2004년 이후 국내에서 온라인/모바일 플랫폼을 기반으로 디지털 싱글시장이 형성되자 드라마 사운드트랙의 시장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드라마 사운드트랙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건 꽤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그런데 뭔가 개운하진 않다. 요컨대 사운드트랙은 말 그대로 영상을 보조/보완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점에서 일관성을 우선하게 된다. 1980, 90년대의 활발하게 드라마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김수철(<TV문학관>, <사랑이 뭐길래>)이나 최경식(<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 송병준(<여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고개숙인 남자>), 신중현/신윤철(<코리아 게이트>), 윤상(<파일럿>), 최진영(<사랑을 그대 품안에>) 같은 이들이 그랬다.
하지만 21세기의 드라마 사운드트랙은 맥락보다 보편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박효신이나 백지영을 비롯해 아이돌 그룹의 멤버들처럼 ‘누가 불렀는가?’란 점이 더 부각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물론 이것은 앞서 말한 시장과 산업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란 점에서 옳고 그름을 따질 일은 아니다. 다만 아쉬운 건 아쉬운 대로, 궁금한 건 궁금한 대로 남는다. 10년 후쯤 우리는 여기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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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웹진 <weiv> 편집장. 『청춘의 사운드』를 썼다. 대체로 음악평론가로 불리지만, 사실은 지구멸망과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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