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음악 > 주목, 이주의 앨범
f(x), 걸그룹의 새로운 패러다임
도발이자 메이저답지 않은 도박
음악이 좋든 나쁘든 에프엑스는 색다른 스타일로 듣는이를 당혹시켜 왔습니다. < Red Light >도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습니다. 모 아니면 도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에프엑스(F(x)) < Red Light >
「무지개 (Rainbow)」를 듣다가 웃음이 터졌다. 미국의 인디밴드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의 노래 「Chores」에서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브릿지가 콩닥콩닥 이라는 가사로 난입한 느낌이었다. 물론 이 밴드의 노래를 참고했을 리는 없겠지만 무엇을 듣고 생각하면서 만든 앨범인지 새삼 궁금해진다. 삽시간에 시대의 유행으로 자리 잡은 트랩이라는 장르가 이렇게 난감하게 거듭날 수도 있다.
원래 「NU 예삐오(NU ABO)」 시절부터 듣는 사람 당혹시키기는 에프엑스의 특기였다. 시간이 지나 이들의 카오스는 대중에게 어느 정도 각인되었지만 이렇게 다시 놀라게 할 줄은 몰랐다. 타이틀 곡 「Red light」부터 제정신이 아니다. 최대의 아이돌 기획사가 만들어낸 노래답지 않게 그 흔한 후렴구 멜로디 하나 없이 비틀어댄다. 전작 「첫 사랑니 (Rum pum pum pum)」에서는 발견할 수 없던 도발이자 메이저답지 않은 도박이다.
도박인 만큼 온몸에 위험을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를 비롯한 에프엑스의 팬들은 괴짜를 자처하며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 이들의 차별성을 높게 평가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는 않다. 몇 번의 반복 청취를 끝낸 지금까지도 수록곡에서 흡인력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MILK」나 「바캉스 (Vacance)」등의 다른 수록곡들은 중독성 있는 훅이나 멜로디는 고사하고 한두 번의 재생으로 기승전결조차 확인하기 어려웠다. 「뱉어내 (Spit it out)」에서는 여태까지의 무기였던 가사까지도 비유에 대한 강박을 드러내면서 공감대를 잃는다.
난국에서도 판을 뒤집는 트랙은 존재한다. 처음 듣자마자 입가에 후렴구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All night」과 이번 앨범에서 최고의 노랫말을 들려주는 「종이 심장 (Paper heart)」는 분명 압권이다. 특히 종이라는 사물의 속성을 감정 위에 덧씌우는 「종이 심장 (Paper heart)」는 에프엑스의 난해함과 어린 소녀의 감성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순간을 만든다. 이런 곡들이 각각 러닝타임의 중간과 끝을 맡음으로써 유기성과 극적인 여운을 거두는 것에도 성공한다.
음반 크레디트를 빼곡하게 메우는 외부 작곡가들과 작사가들의 이름을 보면서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 일까. 기획의 산물인 아이돌에게 굳이 또 음악가의 자율성을 운운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발자취에 배어있는 독특한 작가주의와 고집이 온전히 이 소녀들의 것이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하다. 그만큼 이들의 행보는 남다른 구석이 많았다.
그룹의 경력과 무관하게 신보는 뼈를 취하면서 약점을 잔뜩 내어놓았다. 대중가요의 흔한 클리셰를 답습하는 노래들 또한 은근히 보인다. 하지만 장기적인 활로 역시 얻었다. 전작 < Pink Tape >에서의 음악적 기행(奇行)이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에프엑스는 이 안전한 지대 위에 뿌리를 내릴 것이라 예상했다. 예상을 넘고 이들은 새로운 좌표축을 세우며 다른 차원으로 움터 나갔다. 그저 놀랍다. 함수의 치역(値域)을 예측하고 개형을 그려보려던 욕심이 무의미해졌다.
글/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관련태그: f(x), 에프엑스, red light, 설리, 크리스탈, 빅토리아, 엠버, 루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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