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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어디까지 믿을까요?

도대체 언제부터, 또 왜, 피와 인간의 마음이 엮이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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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혈액형 유형론이 안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부터가 혈액형으로 스스로를 단정 지으면 다양한 가능성 자체를 막아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A형인 당신의 소심함은 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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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지하철에서도 발을 밟혔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 당신, 습관처럼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가 쌀쌀한 공기에 아차 싶어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바꾸고 싶지만 말 못 하는 당신, 오전 회의시간에 다른 의견을 말하고 싶지만 꾹 누르는 당신. “나는 A형이니까.” 그렇게 소심한 마음을 달래며 속으로 자기를 끌어안는 당신. 이 모든 게 정말 혈액형 때문일까요? 적혈구에 붙어 있는 단백질의 차이가 인간의 복잡한 성격을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흔히 혈액형별 특성을 말하면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를 칩니다. 인간을 고작 네 가지로 분류하는데도 어쩌면 그리 정확한가 싶지만, 사실 이런 현상의 이면에는 ‘바넘 효과’라 불리는 심리학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바넘은 19세기 말 미국에서 활동한 어느 서커스 단원의 이름입니다. 그가 했던 묘기는 공중제비를 돌거나 맹수를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종류가 아니라 말로 하는 일종의 심리 게임이었죠. 관람객 중에서 자원하는 사람을 무대로 초대해 그 사람의 성격을 알아맞히는 것이었는데요, 그가 속임수를 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막상 무대 위로 올라가면 바넘의 비범한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바넘은 어떻게 사람들의 성격을 알아맞힐 수 있었을까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초능력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 비밀은 바로 애매모호한 표현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애매모호한 표현을 들으면 그중에서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는 것을 떠올리기 때문에, 마치 자신을 아주 잘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혈액형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매모호한 표현에 동조하는 심리인 것이죠.
 
혈액형 유형론이 안 좋은 이유

 
도대체 언제부터, 또 왜, 피와 인간의 마음이 엮이게 되었을까요?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가장 먼저 1901년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란트 슈타이너가 혈액형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후 독일의 내과 의사 둥게른과 폴란드의 생물학자 힐슈펠트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라 인종 간 우열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펼쳤습니다. 이 당시에는 인종 간 우열을 기정사실처럼 믿는 과학자들이 많았고, 자신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 온갖 생물학적 증거를 갖다 붙이기에 급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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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혈액형을 발견한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란트 슈타이너


이 영향이 일본까지 미치게 됩니다. 1927년 일본의 한 철학자가 <혈액형을 통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혈액형과 인간의 성격을 구분하기 시작한 이후, 일본에서는 이력서에 혈액형을 써넣는 칸이 생길 정도로 열풍이었다고 하네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혈액형 열풍은 1970년대 들어서 다시 불기 시작했습니다. 저널리스트 노미 마사히코가 『혈액형 인간학』이라는 책을 낸 것이 계기였습니다. 하지만 여러 과학적 연구를 통해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구분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일본에서 유행했던 혈액형 유형론이 한국으로 들어온 계기입니다. 일본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혈액형을 연구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둥게른과 힐슈펠트가 시작한 혈액형에 따른 인종 우열 이론을 일본이 받아들여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라는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의 혈액형 분류에 집착했다는 것입니다. 한림 대학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는 논문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따져보는 혈액형 얘기 속에 식민지적 근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권력의 계보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의식뿐만 아니라, 혈액형의 네 가지 타입으로 간단하게 사람을 이해하려는 태도는 좋지 않습니다. 특히 혈액형 유형론이 안 좋은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부터가 혈액형으로 스스로를 단정 지으면 다양한 가능성 자체를 막아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A형인 당신의 소심함은 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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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 강현식 저 | 한빛비즈
저자는 그간 심리학에 대한 대중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면서도 가능한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의 입장을 많이 담아내려고 노력했다. 심리학 핵심개념들을 간결하면서도 통찰력 있게 풀어주고,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예시를 들고자 노력했다. 이를 위해 영화나 대중가요, 다큐멘터리 등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들을 이용해 심리학을 알려왔다. 흥미와 재미 위주가 아닌 보다 객관적이고 다양한 정보로 심리학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은 두고두고 읽을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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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현식

‘누다심’이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심리학 칼럼니스트로, 〈누다심의 심리학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심리학을 쉽고 재미있게 알리겠다는 일념하에 다양한 주제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제로 각종 모임과 집단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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