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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문의 꽃, 개인사 쓰기 하향식 역사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소중한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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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지식인이라면 그런 내용의 글을 끊임없이 써서 사람들의 의견을 통합해 나아가야 한다. 이런 목표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가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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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글


개인사(個人史, personal history)란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글이다. 개인의 전 생애 또는 특정 시점의 삶의 이야기를 적은 것인데, 자기의 기억을 더듬거나 남의 도움을 받아 적을 수도 있다. 개인사는 자기가 직접 쓰기에 기록문 가운데에서 가장 손쉬운 글이다.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다.

 

사람들은 자기의 과거를 기록으로 남겨서 다른 사람이 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았다고 평가하는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므로 일부러 그에게 물어서 그의 삶을 기록으로 남기는 경우도 있다. 후자와 관련된 책으로는 나많이(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구술한 내용을 적은, 뿌리깊은나무사가 간행한 ‘민중자서전’이 대표적이라고 할 만하다. 요즘 언어학자들은 지역어 연구를 위하여 나많이들에게 살아온 이야기를 구술하게 하여 이를 전사하는 작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이들의 구술이 지역어 조사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역사 또는 문화사를 복원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서전은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자신이 특정한 시기에 겪은 이야기를 기록한다.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사건에 관계된 일을 한 사람들이 쓴 자서전은 많은 사람들이 읽고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 다만, 이런 자서전은 대개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자신의 가문이나 집단을 자랑하려는 경향이 있어서 객관성이 떨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개인사는 개인의 역사이므로 어찌 보면 사실성이나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을 확률이 높은 기록문이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의 역사물로 인식하고 마치 역사학자가 역사를 기록하는 것처럼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면 일반 역사가 품지 못하는 소중한 기록을 개인사가 갖추게 될 것이므로 일반 역사를 보완하는 자료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통치자 중심의 기록으로 만들어져서 중앙 중심, 권력자 중심의 서술이었다면, 개인사는 보통사람의 눈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생활인의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기록하는 것이어서 기왕의 역사가 담을 수 없는 것들을 다양하게 품게 된다. 그래서 개인사를 통해서 그 지역의 문화와 그 시대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탁월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개인사는 이제까지의 하향식 역사를 민주적으로 재구성하는 소중한 가치를 가진다.

 

한편, 개인사는 개인의 역사를 본인이 직접 적는 것이므로 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지 못한 사건이나 사람과의 관계를 기록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찌 보면 사소한 기록이라고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소한 기록이 전승되는 과정을 통해서 문화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것이므로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기록이다.

 

개인사 쓰기

 

글쓰기는 주제를 드러내는 작업이라는 말을 여러 번 한 것처럼 개인사도 주제가 있는 글쓰기를 한다는 생각으로 써야 한다. 개인사 전체는 자기의 경험이나 보고 들은 바를 자기 손으로 쓰는 행위이지만, 각 꼭지의 글은 모두 주제가 있는 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하나하나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에 맞는 글감을 선정하여 글쓰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사의 글감은 매우 광범위하여 그것을 하나로 묶을 만한 큰 주제를 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로지 자기의 기억과 판단력을 동원하여 자기 손으로 쓰는 글이라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다. 붓다의 모든 경전이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말로 시작하는 것처럼


개인사는 “나는 이렇게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했다.”에 해당하는 글이다.

 

개인사를 쓰기 시작하려면 먼저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해 두어야 한다. 사건에 대해서는 사건의 실제 상황에 대한 것이 사실과 부합해야 하므로 그 사건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다른 사람의 기억을 빌리거나 자료를 찾아서 사실 관계를 확정해 놓아야 한다. 사람에 관해서는 그가 누구이고 어디서 태어나 무슨 일을 한 사람인지, 그의 가족과 친구는 누구인지 등등 사실관계를 할 수 있는 한 폭넓게 찾아 메모를 해 두는 것이 좋다. 글을 쓸 때 이 메모가 자기 글의 사실성을 뒷받침해 주어 글이 주관적으로 흐르지 않도록 도울 것이다.

 

한편 개인사는 우리가 무엇을 잃었고 그것을 어떻게 다시 우리의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복원해서 후세에 물려줄 수 있을지도 생각하게 해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주위에는 개인사 글감이 널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있고 의지가 있다면 우리는 매우 다양한 개인사를 집필하여 공유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예문>

친일 하다가 겪은 고생

 

윤 선생은 입과 붓을 움직이는 사람이니까 그런 쪽으로 움직이는 게 좋지 않겠소? 그쪽에서 선생에게 바라는 것은 민심을 융화시키는 데에 선생의 뛰어난 재능을 발휘해 달라는 것입니다. 국가가 큰일을 할 때에는 안에서 잘 뭉쳐서 이를 뒷받침해 줘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와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겠소?” 하면서 그는 ‘오족협화회’에서 나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에 만주에는 중국 사람, 만주 사람, 소련 사람, 일본 사람, 한국 사람이 모두 모여 힘을 합치자고 해서 생긴 단체로서 그 단체의고문이 관동군 사령관이고 회장은 일본군 육군 중장인 혼다였으니 두말할 것 없이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단체였다. 그 단체는 정치 일에 실권은 없었지만 암암리에 무시 못 할 만큼 세력이 커서 한국사람 가운데에도 그 단체에 가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못하고 승낙하지도 못하고 그저 시간을 달라고만 했다.

 

그런 지 며칠이 지난 뒤에 이시다가 또 나를 불러냈다. 그를 만나 보니 그의 눈초리가 전과 달리 싸늘해져 있었다. 그는 나를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밤낮 시간만 끌면 어떻게 하겠다는 거요?” 하고 짤막하게 말하고선 나를 돌려보냈다. 그제는 나도 그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거절하고 싶었지만 용기 없는 마음에 뭔지 꺼림칙하게 걸리는 구석이 있어서 섣불리 거절을 하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그 단체에 들어가자니 나의 민족 감정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일 저런 일을 생각만 하며 마음을 정하지 못하다 보니 스무 살의 젊은 나잇적엔 아이들에게 민족 감정을 불어넣어 주겠다고 정열에 넘쳐 노래말도 쓰고 동요도 짓던 내가 고작 스무 해 남짓한 세월에 이토록 약해졌는가 싶어서 자신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식이 일본의 승리를 전하는 말뿐이요, 최남선이나 이광수와 같은 선배들도 입을 모아 일본에 협력하기를 권하고 있으니 나도 일본을 편들어서 영?미를 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움터 나오기도 하고, 세력 있는 협화회에 들어가서 명성을 떨쳐 보고 싶은 생각도 일어났다.

 

- 윤극영 외, 『털어놓고 하는 말』


 

이 글은 동요 작곡가이며 아동문학가인 윤극영(1903~1988)이 자신이 친일 행위를 하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해서 겪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다. 당시의 상황이나 겪은 바를 거짓 없이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적어 놓는다면 당시 일부 지식인에게 덮친 갈등의 정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만 자신의 과오를 덮기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거나 사실을 감추는 일이 있으면 그만큼 개인사 자료로서 가치는 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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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사 함께 쓰기

 

개인사는 개인의 기록이므로 공동으로 집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개인사를 모아서 하나의 주제를 드러낼 수는 있다. 이러한 방식을 구현하는 것이 개인사 공동 집필이다. 예를 들면 그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 생긴다면 그 사건을 겪은 수많은 사람들은 모두 각기 다른 시각에서 그 사건을 바라보고 이야기할 것이다. 가령 한국전쟁을 겪은 수많은 한국인이 있는데 한국전쟁이 한국인에게 끼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말하게 된다면 누구의 경험을 토대로 말할 수 있을지 쉽지 않다. 물론 모든 경험을 추상화하여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은 나와 조금 다른 경험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한국전쟁의 경험을 여러 사람이 적고 그것을 모으면 한국전쟁에 관한 경험을 공동집필하는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광주항쟁의 경험을 몇 사람이 공동으로 집필하면 그것도 개인사를 이용해서 한 사건이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글이 된다.

 

우리 사회에는 엄청난 사건과 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났다. 일본의 침략에 따른 망국(1910년), 해방(1945년)과 한국전쟁(1950년), 4월 혁명(1960년)과 5?16 쿠데타(1961년) 그리고 유신 쿠데타(1972년), 신군부의 등장과 광주항쟁(1980년), 6?10 항쟁(1987년)과 민주적 정권교체(1997년)같은 정치적 사건을 비롯해서,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서울)나 대구 지하철 화재(2003년 대구), 씨랜드 청소년수련원의 화재(1999년 화성)로 인한 어린이 참사 사건, 태풍 매미(2003년) 피해 같은 자연재해,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 사건(1995년 여수 소리도 앞바다)과 삼성-허베이 스피리트호 기름 유출 사건(2007년 태안 앞바다) 같은 해양 오염 사건처럼 한 개인의 경험으로만 풀어낼 수 없는 일들이 매우 많다. 이런 사건에 관한 공동 집필 기록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매우 유용한 글이 될 것이다.

 

주제가 다른 개인사를 하나로 모으는 방법도 있다. 이런 공동 집필은 각기 다른 사람이 각기 다른 주제로 집필한 개인사를 모으는 것이어서 지역별로 공동작업을 하게 되면 지역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쓴 개인사를 하나의 책으로 발행하기에는 그 양이 적은 경우에 여러 사람의 개인사를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발행할 때에 유용한 방법이다.

 

우리 사회는 이념과 지역, 계층에 따라 그 어느 사회보다 더 심하게 분열되어 있다. 선거에서는 지역 분열이 심각하고, 경제 정책에서는 계층의 분열이 심각한데, 이 차이를 이념 분열이 확대하고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북한을 중심에 두고 친북 내지 종북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자국민을 노예 상태로 이용하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나쁜 권력 국가인 북한을 우리 정치의 중요한 변수로 악용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암적 존재이다. 권력 획득과 유지를 위해서 동족의 아픈 현실을 이용하는 추태야말로 가장 불의한 행태인 것이다.

 

여기에 친일과 반일의 논쟁, 독재와 민주의 논쟁이 아직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중심에서 모든 주제를 통합할 수 있어야 할 대한민국이 오히려 갈가리 찢어져 있는 상태이므로 어지간한 논쟁은 기왕의 이념 갈등, 지역 갈등, 계층 갈등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면이 있다. 여기서 지금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에도 이 문제 제기를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함부로 문제를 제기하기조차 두렵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 공동체에 공통되는 담론을 만들어 꾸준히 의견을 나누는 마당을 만듦으로써 갈등을 치유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릇 지식인이라면 그런 내용의 글을 끊임없이 써서 사람들의 의견을 통합해 나아가야 한다. 이런 목표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글쓰기가 기록하는 글쓰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쓰기는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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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주제다 남영신 저 | 아카넷
글쓰기는 작가나 기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이 기획안이나 보고서를 쓰고 공무원이 공문서를 작성하는 일, 사회운동가가 사회문제에 관해서 발언하고 학생과 교수가 논문을 쓰는 일 등, 적어도 지적 활동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글쓰기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글쓰기를 시작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자신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내고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서 글을 써야 한다. 어떻게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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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영신

남영신은 언어에 바탕을 둔 사회 발전을 꿈꾸며 국어 문화 운동을 하고 있다. 1971년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에, 토박이말을 정리한 『우리말 분류사전』을 펴낸 것을 시작으로 『국어용례사전』, 『한+ 국어사전』, 『국어 천년의 성공과 실패』, 『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 『4주간의 국어 여행』, 『한국어 용법 핸드북』을 통해 꿈을 지향하고 있다. 이제 이 책을 읽는 분들과 그 꿈을 공유하려고 한다.

글쓰기는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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