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가 왜 베스트셀러죠?
좋은 소설이니까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지 안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저자로 변신했거나 아니면 출판사를 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점에서 일하면, 보통 사람보다는 좀 더 보이지 않느냐고 묻지만, 글쎄다.
하는 일이 책과 관련 있다 보니, 동료와 이야기하면 종종 이런 식으로 대화가 흐른다.
“A라는 책, 잘 팔리겠어?”
“글쎄. 요즘 그런 부류의 책은 별로이지 않나. 그것보단 B 책이 반응이 더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나도 그럴 거 같아.”
그리고 몇 달 후. 우리의 예측은 빗나간다.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를지 안다면, 우리 중 누군가는 저자로 변신했거나 아니면 출판사를 차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점에서 일하면 보통 사람보다는 좀 더 보이지 않느냐고 묻지만, 글쎄다. 책 표지만 봐도 대충 어느 정도 팔릴지 감이 온다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
나의 무능함을 탓할 수만은 없는 게, 미디어 환경이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방송이나 신문에 소개되는 것만으로 책이 유명해질 수 있었지만, 요즘은 매체가 워낙 다양해졌다. 그만큼 매체 하나의 영향력은 줄었다. 게다가, 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는 나날이 느는 반면, 독서 인구는 계속 준다고 하지 않나. 이런 상황에서 어떤 책이 잘 팔릴지보다는 어떤 책이 안 팔릴지를 예측하는 게 좀 더 쉬워 보인다.
유명하지 않은 소설가가 쓴 두꺼운 장편소설. 이 책은 잘 팔리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요즘 한창 인기를 끄고 있는 『미 비포 유』가 바로 그런 책이다. 조조 모예스라는 영국 작가가 쓴 책인데,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저 작품으로 유명해졌다고는 하나 한국에 소개되기에는 첫 책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말아먹은 데이비드 모예스 감독 덕분에 저자 이름이 빨리 각인될 수는 있었겠지만, 한국에서는 신인 작가라 해도 무방할 지명도. 그리고 이 소설, 굉장히 두껍다. 500쪽이 넘는다.
루이자 클라크라는 여성과 윌 트레이너라는 남자가 있다. 둘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장르를 굳이 따지자면 로맨스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다. 윌 트레이너가 처한 상황이 밝지만은 않아서다. 그는 런던에서 잘 나가던 M&A 전문가였으나, 교통사고로 사지마비 환자가 된다. 한때 모든 걸 다 가졌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었던 그는 자유를 박탈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자살을 시도한다.
윌은 자살에 성공하지 못했다. 깨어난 그는 부모님에게 말한다. 6개월 뒤에는 확실한 방법을 써서 죽겠다고. 안락사가 허용된 스위스에서 삶을 끝내겠다는 윌을 부모님은 설득하지 못했다. 대신, 6개월 동안이라도 자살하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 간병인을 구하기로 한다.
루이자 클라크가 바로 그 간병인. 특기도 없고 꿈도 없는 그녀는 6년 동안 일했던 카페가 문을 닫으면서 윌의 간병인으로 취직한다. 보수도 좋고, 집 근처에서 다닐 수 있어서 더없이 좋은 일이었다. 다만, 한 가지 루이자를 괴롭히는 건 윌의 독설과 까다로운 취향이었다. 더 살고 싶은 욕구도 없는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다정하게 굴 필요가 없지. 사지마비가 된 뒤 윌의 심사는 뒤틀릴 대로 뒤틀려 있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루이자는 계속 출근하다. 그러던 어느 날, 폭발한다. 당한 만큼은 아니지만 루이자는 윌을 향해 쏟아낸다. 사회에서는 모범생이었고, 사고 뒤에는 돌봐야 할 환자였던 그에게 거침없이 공격적인 말을 했던 사람은 루이자가 처음이었다. 이 순간부터 남자는 여성에게 관심이 생긴다.
둘의 애정 관계가 순탄하게 발전하지는 않는다. 둘 사이가 좋아졌다 싶으면, 루이자의 실수로 윌이 토라진다는 식으로 밀당이 반복된다. 그러던 중, 루이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전까지는 윌이 거동이 불편한지만 알았지, 그가 안락사를 결심했다는 사실은 몰랐다. 윌이 인생을 스스로 의지로 끝내기로 했다는 걸 안 뒤로 루이자는 간병인 노릇을 계속 해야 할지 고민을 하지만. 소설이 이어지려면, 그녀는 윌 곁으로 와야 하는 법. 이렇게 죽으려 하는 자와 살리려 하는 자 사이의 긴장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이상 줄거리 끝.
『미 비포 유』는 500쪽이 넘지만 흡입력이 대단하여 한 번에 쑥, 은 아니고 네 번 정도에 걸쳐 읽을 수 있다. 이야기가 가진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시한부 인생과 시한부 인생을 안타까워하며 지켜보는 연인, 이라는 설정은 감동적이긴 하지만 새롭지는 않다.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조 모예스는 설정을 약간 비틈과 동시에 예전부터 인기 있었던 설정을 함께 넣는다. 먼저, 둘의 관계는 다소 특이하다. 시한부 인생이 있고, 그(그녀)를 절망에서 구하려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때 보통은 시한부 인생은 주로 받는 처지고, 후자가 주는 위치다. 그런데 『미 비포 유』에서 경계가 모호해진다. 둘은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창창한 루이자가 더 많이 받았을 수도 있다. 윌은 원하는 걸 다 해 봐서 죽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삶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서야 할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루이자라는 주장. 실제로 루이자는 윌 덕분에 독서라는 취미가 생기고, 문신에도 도전하며, 고급스러운 파티에도 참석해본다. 모리셔스 제도로 외국여행도 떠난다. 죽으려는 사람은 주고, 살리려는 사람이 받는다. 이런 식의 비틈은 소설이 식상한 이야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돕는다.
그에 비해 백마 탄 왕자님과 그를 기다리는 공주, 라는 예전부터 인기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는 설정은 비틈이라기보다는 전형적이다. 계급으로 봤을 때, 루이자는 노동계급의 평범한 여성이고 윌은 성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다. 집안 잘 둔 덕택도 있겠지만 윌은 똑똑하기까지 해서 자수성가했다. 그에 비해 루이자는 내세울 만한 능력이 없다. 그나마 있다면 성실함과 쾌활함? 그런데 이런 루이자에게 윌이 끌리기 시작한다. 루이자도 윌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고. 둘의 이런 관계 덕분에 독자는 등장인물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지만 ‘제발 이뤄져라, 이뤄져라’는 구호를 계속 외치게 된다. 우리 대부분은 루이자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다소 두서없이 쓰긴 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 비포 유』는 좋은 소설이다. 둘 사이의 사랑 이야기도 재밌고, ‘죽음이라는 절망이 기다리고 있음에도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그런데, 좋은 소설이라고 다 베스트셀러가 되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도 참 좋은 소설이었는데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한 것 같다. 글 처음으로 돌아가자면, 역시 어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지는 모르겠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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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모예스> 저/<김선형> 역10,500원(0% + 5%)
죽음 앞에서 사랑이 물었다. 내 곁에서 그냥, 살아주면 안 되나요? 오만하리만큼 잘났지만 불의의 사고로 사지마비환자가 된 젊은 사업가 윌 트레이너와 괴팍하리만큼 독특한 패션 감각을 지닌 엉뚱하고 순진한 여자 루이자 클라크. 맞닿을 것 하나 없이 다른 둘은 어떻게 만나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