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god 플라이투더스카이, 그리고 나의 20대

응답하라, 다시 돌아가라면 절대로 사양하고 싶은 그 시절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얼마 전 god가 컴백하면서 음원 차트를 휩쓸더니, 플라이투더스카이도 5년 만에 컴백하여 새로운 노래를 발표했다. 평소엔 노래와 담 쌓고 지내는 나지만, 이번에는 간만에 음원 사이트에 접속해 출퇴근길에 두 그룹의 노래를 들어봤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나의 파란만장했던(?) 20대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0b9d6bea01c99a953488de3446ec5560.jpg

  

나의 회사 생활은 작은 음악 잡지사에서 시작되었는데, 2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는 음악 잡지였지만 내가 처음 들어 갔을 당시 잡지의 대부분을 장식했던 건 10대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아이돌 가수들이었다. 잡지의 절반 이상은 H.O.T, 젝스키스, 유승준, 핑클 등의 사진과 선문답들로 채워졌다. 이를 테면 "30년 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평소에 즐겨 뿌리는 향수는 뭐니?" "여자친구가 생긴다면 가장 해보고 싶은 프로포즈는" 뭐 이런 종류. 명색은 음악 잡지였지만, 음악 얘기는 새 앨범 나왔을 때나 양념 치듯 간단히 오고 가는 게 전부였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열정 노동이란 얘기들 많이 회자되고 있는데 생각해보면 그 시절의 내가 바로 열정 노동자였다. (그 후유증으로 인하여 저는 대가 없는 노동을 혐오합니다) 최저임금에도 한참 못 미치는 월급을 받으면서도 잡지 마감을 위해 한 달에 2~3일 밤샘은 기본이었다. 추운 스튜디오에서 촬영할 때 쓰던 스티로폼 깔고 침낭 덮고 깜빡 잠들며 밤새워 취재하고 기사를 썼던 것은 열정인가 애정인가 무모함인가. 기사보다는 어떤 사진이 실렸는가가 잡지의 판매량을 좌우하니 취재나 인터뷰, 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남대문의 문구도매상과 꽃 시장을 누비며 소품 조달에 열을 올리다 보면 내가 취재기자인지 공작기자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이었지만 그래도 그걸로 밥도 사 먹고 동료들과 동대문 시장으로 우르르 달려가 옷도 사 입었고, 여행도 다녔으니 돌이켜 보면 이게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 


잡지사 사장은 조직 폭력배 출신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전무는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사무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어깨가 넓고 소위 말하는 '깍두기' 머리를 한 사람들이 태반이었으며, 그들이 한 번 왔다 갔다 하면 곧 앨범을 낸다는 (하지만 실제로 앨범을 냈는지는 이후 확인이 잘 안 되는) 가수를 취재하라는 지시가 떨어지곤 했다.


이처럼 뒤죽박죽 참으로 고단했던 시절, 나를 위로해주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분칠하고 꽃단장한 취재원들과 그들의 음악이었다. 마감이 코 앞에 닥친 밤 무한반복되며 나를 위로해주던 god의 ‘거짓말’이라거나, 1집 마지막 인터뷰 때 ‘그동안 고마웠구요~ 사랑해요 누나’라는 인사를 녹음기에 몰래 남겨둔 플라이투더스카이라거나.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힘이 되어 주는 건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작은 것이니까. 그리고 그 사소한 것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추억이 되는 것이 아닐까.

 

309915977b2696872e7795a404ae03dc.jpg


2014년을 살고 있는 내가 god와 플라이투더스카이의 신곡을 듣고 가슴이 먹먹한 이유는 한심하지만 치열했던 그 시절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라면 사양하고 싶지만, 만약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완전히 다르게 살아낼 것 같진 않다. 아마 또 비슷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한 내 자신을 죽어라 원망하면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지 않을까.


그 시절의 나는 주어진 시간은 10분뿐인데, 도저히 답을 쓸 수 없는 답안지를 받아 들고 막막해 하던 학생 같았다. 스물 세 살의 나는 스물 일곱이 되면 온통 뒤죽박죽인 내 삶도 좀 더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루 하루를 살았다. 그러나 스물 일곱이란 나이가 까마득한 옛날이 된 지금의 나 역시 답안지에 답을 제대로 쓸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정답 비슷하게는 적어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건 그 때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훗날의 나도 지금의 나처럼, 20대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서 가슴 먹먹해질려나?


 

 

[추천 기사]

- 바나나 전염병, 갑자기 왜 화제일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바퀴족이잖아!
- 비틀어 보면 잔인한 동화, 피노키오
- 어떤 시대의 사운드, 엑소와 god
- 안녕하다는 말, 듣고 싶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조선영(도서1팀장)

뽀로로만큼이나 노는 걸 제일 좋아합니다.

오늘의 책

물 부족 지구 인류의 미래는

기후 위기와 인류의 미래라는 주제에 천착해온 제러미 리프킨의 신작. 『플래닛 아쿠아』라는 제목이 시사하듯 주제는 물이다. 물이 말라간다는데 왜일까? 농경에서 산업 혁명을 거쳐 현재까지, 위기의 근원을 분석하며 체제 전환을 촉구한다. 지금 바로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

어제와 오늘이 만나는 곳

두근두근 설레는 마법과 오싹오싹 짜릿한 마법이 펼쳐진 편의점! 이번에는 어떤 마법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아빠와 그린이가 특별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마음을 더 깊게 이해하는게 되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몽글몽글 편의점으로 놀러 오세요!

우리가 기다렸던 어른의 등장

『빅토리 노트』 이옥선 작가의 신작 에세이. 그간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명랑하고 자유로운 어른로 살아가는 즐거움을 전한다. 인생의 황금기는 지금이라는 작가, 특유의 맵싸한 유머와 호탕한 명언들을 읽다 보면 '어른'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 짐을 느낄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이 펼쳐지는 우주 판타지

외계인과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리보와 앤』 어윤정 작가의 어린이 SF 동화. 연필을 간식으로 사 먹고, 콩나물을 나무처럼 키우고, 똥 기저귀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 달에 한 번, 외계인과 중고 거래를 할 수 있는 빅뱅 마켓. 그곳에서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사건들과 반전, 그리고 감동적인 이야기.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