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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라서 실수하고 뉘우친다

삶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 <굿’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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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가 납관사가 되어 겪는 일들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일본 영화 <굿’바이>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사람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후회, 그리고 아쉬움 같은 것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잔잔하게 밀려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지막 그 순간을 위해서 살아요. 내가 죽는 날, 내 장례식에 와서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나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도 생각하게 된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장례식이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담담하게 받아들여야지요.” 이 말씀은 영화가 끝난 후 연세가 제법 지긋하신 관객께서 잔잔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모두 숙연해진 채 그 분의 말씀을 꼭꼭 새겨듣고 있었습니다.


<우리동네 작은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상영할 때는 추석 전이었습니다. 추석을 앞두고 가족의 의미와 사랑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영화를 상영했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난 후 서로 대화를 주고받는 중에도 눈시울을 붉히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하는 분도 계셨고, 또 지금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가 생각나 울컥하는 심정이 된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덩달아 저도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채 진행을 해야만 했습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 다이고와 어릴 적 집을 나가서 얼굴도 기억할 수 없는 아버지를 보면서 그래도 끝끝내 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가족’이라는 이름일거라는 생각만큼은 분명해졌습니다. 


첼리스트와 납관사 사이


첼리스트가 납관사가 되어 겪는 일들을 한 편의 파노라마처럼 펼쳐놓은 일본 영화 <굿’바이>는 우리에게 삶의 의미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주는 사람은 그래도 가족밖에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후회, 그리고 아쉬움 같은 것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잔잔하게 밀려왔습니다. 죽음은 문 밖에 와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하지요.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삶이 참 외롭기도 합니다.


우아한 오케스트라에서 첼로 연주자였던 다이고가 장례 도우미인 납관사가 된다는 것은 그 자신도 아내 미카에게도 상상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거액의 대출을 받아 간신히 마련한 첼로였는데 오케스트라는 해체되고, 악기를 팔아 빚을 갚고 빈털터리가 된 그와 미카가 선택한 것은 귀향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여인을 좇아 집을 나갔고 홀로 남은 어머니가 운영했던 카페에서 그들은 새로운 삶을 준비합니다. 실직한 가장이라는 무게 때문에 직업을 구하는 일이 급하던 차에 우연히 ‘고소득, 무경험자 환영, 여행 도우미’란 구인 광고를 보고는 관광 가이드쯤으로 생각하고 직접 찾아가 면접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사장인 이쿠에이는 광고가 잘못됐다며 ‘여행 도우미’라는 말 앞에 ‘영원한’이라는 글자를 끼워 넣고, 다이고는 얼결에 납관 도우미가 됩니다.


아무리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납관사에 대한 선입견은 일본이나 우리나 다름이 없나 봅니다. 아내 몰래 시작한 납관 도우미 일은 그에게 적지 않은 보수를 안겨주기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의 냉대와 차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고, 무엇보다 아내 미카의 동의를 얻는 일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갈등 때문에 가출했던 미카가 돌아와 임신했음을 알리고, “우리 아이에게 당신의 직업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나요?”라고 다이고에게 물었을 때 그의 심적 부담과 갈등 또한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 아이가 밖에 나가서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직업.’ 이것을 위해 모든 아빠는 세상으로 달려 나가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건 아빠에게 용기를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빠를 가두는 벽이 되기도 하지요. 


굿바이.jpg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


여고 3학년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대기업 중역인 아빠를 둔 아이가 있었습니다. 양복을 입은 큰 키의 그분이 우리 반 교실로 뚜벅뚜벅 걸어와서는, 어리광 부리듯 달려간 딸애의 어깨를 살포시 안고 토닥거려주던 장면은 반 아이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지금은 흔한 풍경이지만 그때만 해도 그렇게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빠가 얼마나 되었으며, 게다가 학교까지 당당하게 찾아와 교실 문을 열고 딸을 안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으니까요. 우린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부러워했으니, 그 풍경을 생각하면 미카와 다이고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누군들 그렇게 당당하게 자식들 앞에 나서고 싶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다이고는 자신의 아이를 생각하면서도 납관사를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장례식을 생각하니 최명희 선생의 《혼불》이 문득 기억납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가는 다리로 생각하셨다지요. 그래서 어느 지방에서는 신부가 결혼할 때 입고 온 옷을 장례식 때 입혀서 저승으로 보내는 풍습도 있었다고 하는데 다이고는 첼로를 놓은 이후 또 다른 무대를 만나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장례식이라는 생의 마지막 공연장입니다. 장례식은 이승에서의 삶을 마무리하는 문임과 동시에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 때문에 회한과 안타까움이 실타래처럼 엉켜서 남은 이들의 가슴을 아프도록 두드려댑니다. 서로 미워하고 갈등하면서도 고인을 마지막으로 배웅할 때는 숙연하고도 정중하게 작별 인사를 하게 마련인가 봅니다. 영화 속의 에피소드들은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생길 수 있는 일들이라는 데 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인간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연주를 지휘하고 연출하는 사람이 바로 다이고였으니, 그러고 보면 첼로 연주와 납관사는 아주 무관한 일이 아닙니다. 


이쿠에이 사장은 갈등하는 그에게 “죽은 것은 미안하도록 맛있다”며 그의 흔들림을 다독입니다. 모든 생물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그 죽음은 또 하나의 부활을 상징하기도 하지요. 이청준의 소설 《축제》는 그래서 더욱 와 닿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장례식을 계기로 식구들이 갈등을 봉합하고 서로 화해하는 것, 그리고 새삼 서로의 존재를 깨닫는 것을 보면 죽은 자가 외려 살아 있는 자들을 위로합니다. 그러니 다이고가 납관사라는 엄숙한 직업을 포기할 수 없게 되지요. 그러한 납관사로서 그가 가장 잘한 일은 아버지와의 만남이었습니다. 어린 날 집을 떠나버렸던 아버지가 어느 날 문득 그를 찾아온 것이지요.


돌은 딱딱하기만 할까?


다이고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아버지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으니까요. 단, 그가 강가에서 아버지와 주고받았던 돌이 그들 사이가 부자였음을 나타내는 단서가 됩니다. 언어가 없던 아득한 그 옛날에는 돌을 통해 주는 이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이고는 아버지에게 가볍고 매끈하며 보기에도 좋은 작은 조약돌을 주었지만 반면 아버지에게서 받은 돌은 투박하고 거칠며 무거운 것이었습니다. 그 돌을 이해하는 과정은 어쩌면 아이들에게 부모의 마음을 전해주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돌 모양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니 아버지가 짊어졌던 삶의 무게와 형상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합니다. 


집에 있던 아내 미카는 시아버지의 부고를 받게 됩니다. 이미 작고하신 시어머니 앞으로 온 전보지요. 그러나 다이고는 선뜻 아버지에게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엄마를 버리고 갔다는 것만 기억하는 다이고에게 아버지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싸늘한 시신으로 변한 낯선 아버지의 손에는 다이고가 주었던 작고 빛나는 조약돌이 쥐여져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다이고가 정성껏 아버지를 씻기고 다듬자 예전의 모습이 조금씩 살아났습니다.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다이고의 모습에서 그동안 쌓아두었던 미움과 원망이 눈 녹듯이 흘러내리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아버지에 대한 간절함이 크게 없습니다. ‘두 집 살림’을 하는 아버지도 드물고 자상한 아버지들이 많은 덕에 그 존재감에 대해 그리 고민하지도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귀찮은 존재로 치부하지요. 좋은 아버지란 잔소리하지 않고 재산이나 좀 넉넉히 물려주면 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앞서 소개한 <자전거 도둑>이나 <굿’바이>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새삼스럽게 던져줍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극복하기 위해 태어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아버지와 아들은 세상에서 가장 질긴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인간은 그 마지막 날을 위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놓을 수 없는 사랑이 있다면 바로 가족이 아닐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그래서 또한 좌절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이름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유품이 된 다이고의 조약돌은 이제 미카의 배 속에 있는 아기에게로 건네질 것입니다. 물론 다이고의 돌은 그의 아버지가 그러했듯 좀 더 투박해지고 무거워지겠지요. 

다이고의 눈물을 보면서 그래도 서로 화해하고 용서할 시간을 가져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슬프도록 우리의 마음을 울렸다고 생각합니다. 추석이 지난 후 영화관에서 만난 젊은 관객은 또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 영화 때문에 그래도 명절을 버틸 수 있었어요. 참… 힘들었거든요."


우린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지만 함께 고개를 끄덕여줬습니다. 다이고는 단지 영화 속의 인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숱한 다이고가 있을 것이고 가족이라는 이름을 슬퍼하고 무거워하는 이들도 있겠지요. 이 영화를 보면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배웅 길에 다이고가 함께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다이고가 용서와 화해를 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작은 조약돌을 간직한 다이고의 아버지 또한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담요 한 장 속에

-권영상


담요 한 장 속에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누웠다. 

한참 만에 아버지가 

꿈쩍이며 뒤척이신다. 

혼자 잠드는 게 미안해

나도 꼼지락 돌아눕는다.

밤이 깊어 가는데

아버지는 가만히 일어나

내 발을 덮어주시고

다시 조용히 누우신다.

그냥 누워 있는 게 뭣해

나는 다리를 오므렸다. 

아버지 ? 하고 부르고 싶었다. 

그 순간 

자냐? 하는 아버지의 쉰 듯한 목소리 

…네. 

나는 속으로만 대답했다. 







   함께 읽을 책과 영화


축제

이청준 저 | 열람원

서편제를 만들었던 중견작가 이청준과 임권택 감독 콤비가 만든 작품으로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 돌아가신 어머 니의 장례식을 배경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 직간접적 으로 관계를 맺었던 인간군상들의 갈등과 화해를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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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자신을 닮은 똑똑한 아들, 그리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누리고 있는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어느 날 병원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6년 간 키운 아들이 자신의 친자가 아니고 병원에서 바뀐 아이라는 것. 료타는 삶의 방식이 너무나도 다른 친자의 가족들을 만나고 자신과 아들의 관계를 돌아보면서 고민과 갈등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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