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자주 놀랐다. 수시로 울려대는 경적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고, 엄마 손을 꼭 잡은 나도 덩달아 놀랐다. 앞장선 내 발이 김이 피어오르는 소똥에 조금만 닿으려 해도 “똥!”하고 소리를 질렀으며 “엄마, 카메라를 어디다 두었더라?”하고 물으면 이미 카메라를 도난당한 사람처럼 “뭐? 카메라?”하고 식겁했다.
“승혜야 기차표는 어디에 넣었어? 잘 있어? 지퍼는 잠그고?” 엄마는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어마에게는 조심해야 할 것들, 확인해야 할 것들이 넘쳐났다. 그런 철두철미함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엄마에게 가는 곳마다, 보는 것마다 놀랍고 또 놀라운 것투성이였다.
Incredible India! 인도 관광청의 자국 홍보 문구는 이런 엄마를 위해 만들어진 듯했다. 인도는 그런 나라였다. 이제껏 유럽과 북미 등 비교적 편한 나라만 여행해온, 그것도 깃발을 따라다니는 패키지 여행객이었던 엄마에게는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나라, 한마디로 더럽고 시끄럽고 미운 나라다.
그럼에도 왜 인도였을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지구본을 돌리며 여행할 나라를 고민할 때 우리는 큰 고민 없이 인도를 가리켰다. 엄마와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 중에서 ‘배낭여행’ 콘셉트와 잘 어울리는 나라를 고르다보니 인도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이후 숱한 인터넷 게시물에서 ‘인도는 힘들다, 고생스럽다’는 소감을 접했다.
법정스님도
『인도기행』 에서 ‘인도는 여행하기 힘든 나라다. 인도는 더러운 나라다’라고 했고, 한비야 씨 또한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에서 ‘신비한 듯하지만 막상 가면 정 떨어지는 나라’라고 한 바 있다. 그래도 엄마와 나는 ‘거기도 사람 사는 나라이니 익숙해지면 괜찮겠지’라며 서로를 다독였다. 더욱이 인도를 고수한 데에는 앞서 언급한 법정스님과 한비야 씨를 비롯한 수많은 여행자들이 덧붙인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힘들고 정 떨어진다며 욕을 한바가지 했던 사람들이 결국은 하나같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가고픈 나라, 고마운 나라’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뜬구름 같았던 계획은 어느 날 갑자기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극기 훈련 못지 않은 체력 소모와 감정의 양날을 세웠던 수많은 순간들….
엄마와 함께한 보름의 여정은 분명 아름답고도 찬란했다. 무엇보다 그토록 밀도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었던 데에는 우리가 발을 디딘 곳이 인도였기 때문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여행을 마친 우리 모녀에게 인도에 다시 가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엄마의 대답은 이럴 것이다.
“응, 또 가고 싶어, 우리 큰딸이랑.”
나도 그렇다. 또 가고 싶다. 우리 엄마랑.
다시 가도 ‘이 사람이 내 엄마인가?’ 혹은 ‘이 사람이 내 딸인가?’라는 의문을 품는 순간이 또 찾아올 것이다. 인도의 매력은 호두와 같아서 진짜 속살을 훔쳐보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쳐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노 프라블럼! 모녀간의 정은 타지마할보다 숭고하고 갠지스 강보다 깊어질 테니까. 바로 이번 여행이 그러했으므로.
저자 유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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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이 오길 잘했어 유승혜 저 | 리스컴
유럽, 북미 등으로 패키지여행만 다니던 엄마와 배낭여행이 체질인 딸이 난생처음으로 함께 14일간의 여행을 떠났다. 모녀는 타지마할부터 갠지스 강 화장터까지, 전통시장 찬드니 초크부터 최대 번화가 코넛 플레이스까지 인도의 대표 여행지들을 다녔다. 기차 객실을 확인하느라 진땀을 빼고, 낙타 사파리를 하며 사막의 일몰을 만끽했다. 14일간의 인도 여행길에서 모녀가 겪은 에피소드들을 여정에 따라 각각 짧은 이야기로 풀어놓아 마치 여러 편의 단편을 보듯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또한 내숭 없는 솔직한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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