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인도를 대하는 몇 가지 자세
인도에 관한 말 한마디, 글 한 줄을 상기하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혹은 환상이 깨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한 깊은 사유야말로 진정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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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여행하고 난 후든 가기 전이든 인도에 대한 평은 극단을 오간다. 신비의 나라, 명상의 나라, 가난해도 행복한 나라,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경제 대국 등 환상적일 만큼 긍정적인 평에서부터 거지 많은 나라, 더러운 나라, 온갖 모순이 깃든 나라, 그걸 고칠 만한 능력도 없는 나라 등 극단적인 부정의 평까지 나오는 나라가 인도다.
나는 인도를 매우 좋아한다. 그래서 인도를 여섯 차례 다녀왔고 약 1년 반을 인도에서 보냈다. 하지만 이 정도의 기간은 이제 아무것도 아닐 만큼 인도에 푹 빠진 인도 마니아들이 많아졌다. 나는 인도를 늘 그리며 사랑했지만 함몰되고 싶지 않아 다른 세상으로 발을 넓혔다.
그러나 여전히 인도는 내 마음의 고향이다. 인도가 편하고 환상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곳에 가면 여전히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많이 기다린다. 또 깨달음을 편의점에서 물건 사듯이 쉽게 얻거나 망고 열매처럼 어딜 가나 툭툭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인도에서 내 가슴을 치는 것은 사람들의 삶이다. 그 삶의 열기에 감동받고 눈물 흘리며, 때론 화도 내고 분노도 한다. 그네들의 삶을 보고 있노라면 편한 세상에서 나도 모르게 낀 정신의 기름기가 쭉 빠진다. 그 순간이 내게는 너무도 소중하다. 또 인도에는 인류 역사에서 생성된 것들이 유일신 종교나 산업화에 의해 소멸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다. 수많은 지층으로 이루어진 혼돈과도 같은 땅. 그곳을 걷다 보면 세상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된다. 자기 성찰과 세상에 대한 사유가 나를 자꾸 인도로 이끄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이 인터넷 카페나 오프라인에서 서로 다른 인도에 대해 논하는 것을 본다. “영적 기운으로 가득 찬 인도. 나는 그곳에서 생과 사의 비밀을 엿보았다.”
“당신이 본 인도는 환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지 압니까?”
“나는 인도 사람이 좋다. 욕망을 체념한 채 살아가는 선량한 사람들….”
“나는 인도놈들이 싫다. 위선적이며 얼마나 끈적거리고 야비하게 여행자들을 등쳐 먹는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대부분 수긍이 가는 이야기들이다. 그 코끼리 같은 나라에 오죽 얘기들이 많겠는가. 내가 본 인도 역시 코끼리의 일부분이며, 결국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자신의 주관이 가미된 자기만의 환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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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인도에 대해 말할 때는 자신의 처지와 상태를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내가 인도에 일하러 갔는지, 여행하러 갔는지 먼저 생각해볼 수 있다. 일로 갔다면 짜증 나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아니면 기회가 보일 수도 있다. 반면 여행하러 갔다면 현실보다는 낭만적인 기분에 젖을 것이다. 여행자들의 시선은 처음부터 다르다. 자기가 목적으로 한 그 틀 안에서 인도를 접하게 된다.
인도에서 오래 살았는지, 아니면 여행자로서 스쳐 지나갔는지도 한번 고려해볼 만하다. 오래 머문 사람들은 인도의 현실에 대해 깊이 안다. 반면 잠시 떠나온 여행자들은 작심하고 현실을 외면하며 슬쩍 한쪽 눈을 감고 인도를 바라본다. 현지를 잘 아는 이들의 눈에는 이런 여행자들의 이야기가 한심하게 들릴 것이다. 인도를 부정적으로 얘기해도 ‘그게 아냐, 임마’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너무 긍정적으로 얘기해도 ‘그것도 아냐, 임마’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당연한 현상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여행자의 단편적인 시선과 깊이는 현지에서 오래 머문 사람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 다른 관점으로는 내가 인도에서 돈을 벌고 있었나, 돈을 쓰고 있었나 하는 점이다. 돈 버는 일은 어디나 힘들지 않던가? 그런 처지에서 만나는 인도인들은 엄청 머리를 굴리는 것처럼 보인다. 인도인의 상술은 보통이 아니다. 반면 돈을 쓰는 일은 즐겁다. 물론 바가지요금 때문에 옥신각신 싸우고 흥정하느라 골치 아프지만 그래도 칼자루는 돈 쓰는 사람이 쥐고 있다.
인도에서 공부한 사람들과 인도에 놀러 온 사람들의 관점도 당연히 다르다. 공부하는 학생들이 볼 때 놀러 온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 말하고 생각하는 것이 얕고 무식해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먹고 놀러 온 여행자들은 과도한 지식과 정보를 오히려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듯 여행자들은 지식과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낭만이란 특권이 있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은 자는 쉽게 맛보지 못하는 기쁨이다. 모든 나라가 다 그럴 것이다. 아무리 인도의 현실을 잘 아는 사람이라도 아프리카나 러시아처럼 낯선 곳에 가면 그들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가 되어 낭만적으로 바라본다. 그게 인간의 한계다. 세상은 따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주관과 시선 속에서 자기 식대로 담아올 뿐이다. 결국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겸손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면 존중받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도에 대한 과도한 기대나 환상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삶을 단번에 깨우치겠다는 달콤한 환상은 오히려 삶을 부실하게 만든다. 인도에 간다고 단번에 깨달음을 얻고 자기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디 인도뿐이랴. 여행이란 게 원래 그렇다. 여행 그 자체보다도 여행하고 돌아오는 그 과정에서 얻는 자기 성찰과 각성이 중요하다. 여행지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왜 내가 그렇게 보고 있는가’라는 자신에 대한 깊은 생각이 삶이라는 여행길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인도에서 느꼈던 작은 깨달음의 기운은 영원하지 않다. 6개월을 여행하고 한국에 돌아오면 그 기운이 6개월 간다. 그 기운이 빠져 나가면 다시 원래대로 일상은 굴러간다. 사람의 몸이 그렇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삶의 진리는 인도에 있지도 않고 한국에 있지도 않으며 아프리카에도 유럽에도 중국에도 동남아에도 중남미에도 없다. 그건 땅 위에 잠시 만들어진 환상일 뿐, 결국 그곳을 여행하면서 끊임없이 사유하는 우리의 정신과 영혼만이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그 무엇이다.
인도에 관한 말 한마디, 글 한 줄을 상기하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혹은 환상이 깨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에 대한 깊은 사유야말로 진정 소중한 것이다.
* 저자 이지상의 블로그 - 이지상의 여행카페
※ 운영자가 알립니다.
<낯선 여행길에서>는 ‘중앙books’와 제휴하여, 매주 수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이지상> 저10,800원(10% + 5%)
『슬픈 인도』『나는 늘 아프리카가 그립다』 외에 다수의 여행기로 잘 알려진 여행 작가 이지상의 첫 번째 산문집으로, 지난 20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온몸으로 체험하고 얻어낸 것들에 대한 작은 기록이자, 여행의 매혹에 빠져 늘 세상 밖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마음으로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