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학평론가 힐리스 밀러는 ‘모든 독서는 오독’이라는 이론을 주장했다. 모든 텍스트가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종결되지 않은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작가의 의도와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오독의 자유는 독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에게도 ‘오독’의 자유는 필요하다. 특히
<인사이드 르윈> 같이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고, 전미비평가 협회의 영화상,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을 휩쓸고, 평론가들이 별점 10점(10점 만점)으로 칭송하며,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영화에 대해서 관객은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해석 가능한 다양한 층위의 은유로 가득한
<인사이드 르윈> 같은 영화를 본 관객에겐 자기 방식대로 맘껏 오독할 권리가 주어지는 것이 맞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싫으면 싫다고 얘기해도 좋다. 포크 송이 들을만한 음악영화네, 라고 할 수도 있고 삶의 근원을 더듬어 가는 머나먼 여정으로 읽어도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화 속 숨겨진 상징들과 다양한 은유를 찾으면 찾을수록
<인사이드 르윈>은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 속에 아주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숨겨둔 영화가 된다는 것이다. 무겁고 어려울 거란 선입견은 가뿐하게 젖혀도 좋다. 하지만 한 가지 결론적으로 말해두고 싶은 건 있다. 절대
<원스>의 낭만을 기대하진 말자.
시작의 끝, 끝의 시작
영화는 주인공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작)가 클럽에서 공연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잔잔한 기타 연주와 짙은 음색, 삶의 쓸쓸한 정서를 담아낸 노래 가사 등 몰입도 높은 장면이 끝나면, 정체 모른 남자에게 폭행을 당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르윈이 맞은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처음과 끝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를 위해 방치된 첫 장면은 고스란히 쌓여, 마지막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그 치밀함 속에 숨겨둔 다양한 은유와 확대 가능한 상징들을 되짚다보면 이야기의 귀재, 역시 코엔 형제답다고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장면을 통해 관객들은 르윈의 고단한 삶 속에서, 오직 반짝 거리던 그 순간이 언제였는지 깨닫게 된다. 길게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음악의 본질과 그 소중함의 가치를 두드려 맞고서야 깨닫게 되는 르윈의 자각(혹은 상상)은 관객에게도 똑같이 전이된다. 그리고 두들겨 맞은 그 순간이 실제였는지, 르윈의 상상이었는지,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폭행의 주인공이 대체 누구인지, 두들겨 맞은 르윈은 왜 떠나가는 남자를 보며 그토록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는지는 관객이 찾아내야 할 흥미로운 퍼즐이 된다. 찾아낸 퍼즐 조각이 많을수록 엔딩의 감흥은 커질 것이다. 하지만, 삶을 이야기하는 음악영화려니 하면서 무심히 흘려보내도 상관없다. 그 무심한 흐름 속에 어쩔 수 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삶과 음악, 화음과 불협화음 그 자체도
<인사이드 르윈>이 말하는 또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폭행 장면 이후, 르윈은 자신에게 잠자리를 내어준 골페인 교수(에단 필립스)에게 감사인사를 남기고 집을 나서는데 골페인 교수의 고양이가 함께 나와 버리고, 문은 자동으로 잠겨 버린다. 르윈은 어쩔 수 없이 고양이를 데리고 짐(저스틴 팀버레이크)과 진(캐리 멀리건)의 집으로 향한다. 진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르윈은 진이 임신했고, 그 아이가 르윈의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러다 고양이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과정 속에 르윈의 궁상스러운 삶은 계속 이어진다. 잃어버린 고양이와 다시 찾은 고양이, 집으로 돌아온 고양이와, 버린 고양이, 그리고 차에 치인 고양이의 상징들 속에 르윈의 삶도 길 위를 헤맨다. 퍽퍽한 삶 속에 르윈은 유명 프로듀서 버드 그로스만을 만나기 위해 시카고로 향한다.
로드 무비와 음악 영화의 형식을 빌려 코엔 형제는 르윈의 삶을 그저 묵묵히 바라본다. 삶의 자각과 변화를 선물하는 ‘로드 무비’의 일반적인 결말과 달리 시카고에서 돌아온 르윈의 삶은 이전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달라진 것은 르윈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시선일 것이다. 마치 실존 인물인 것처럼 완벽한 노래와 연기를 보인 오스카 아이작을 비롯하여 저스틴 팀버레이크, 캐리 멀리건, 코엔 형제의 오랜 친구 존 굿맨까지 완벽한 연기를 선보이는 가운데, 6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포크송은 또 다른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 관객의 귀를 맴돈다.
포크계의 전설 밥 딜런 조차 칭송했던 데이브 밴 롱크라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코엔 형제는 60년대 포크 음악의 이야기를 빌어 인생과 그 불가항력의 속성을 하나의 거대한 우화로 만들어낸다. 영화 속 음악은 아름답고, 마음을 끌지만 실제 인생은 별별 잡일들이 죽어라 등을 떠미는 불협화음의 연속이다. 그리고 그 소소한 에피소드 속에 코엔 형제는 여러 가지 상징들을 복선처럼 깔아놓는다. 영화 포스터에도 등장하는 고양이와 골페인 교수 부부를 꼼꼼히 살펴보면, 영화의 처음과 끝, 숨겨둔 상징을 통한 다양한 재미를 찾아낼 수 있다. 발견하는 재미와 추리해보는 재미를 위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오독의 자유와 함께
<인사이드 르윈>을 다시 발견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이게 뭐지? 하는 순간,
<인사이드 르윈>이 보기보다 혹은 느낀 것 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영화라고 오독한 개인적 사견이다.
| | |
|
Q1. 길을 걷다 르윈은 극장 앞에 멈춰 서 영화를 발견한다. 동물들이 주인공이었던 이 영화다.
Q2.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는 기법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영화의 제목 <인사이드 르윈>, 그리고 고양이의 상관관계
Q3. 수미쌍관의 구성으로 이뤄진 폭행 장면. 폭행의 구체적 이유는 남자의 아내를 모독했다는 것. 그런데 그 아내, 누구를 닮았다.
| |
| | |
[관련 기사]
-구원과 허상, 그 데칼코마니의 기록 : <마스터>
-토닥이는 손길, 속살거리는 위안
-좋아요 버튼 대신, 마주 잡은 손의 체온이 필요한 순간 <디스커넥트>
-<겨울왕국> 마음이 간질간질, 복고에 기대지 않은 건재함
-세상 모든 몽상가들을 위한 위로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