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든 새벽, 페이스북을 둘러보다 어떤 분이 올린 장문의 넋두리를 읽은 적이 있다. 혼자 일방적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일에 지쳐, 여러 페친을 정리했다는 내용이었다. 동의하는 수많은 댓글이 달려 있었다. 페이스북 좋아요가 그렇게 중요한 건지, 페이스북의 친구는 그렇게 쉽게 정리해도 되는 건지 궁금해 아주 오랫동안 그 분의 타임라인을 꼼꼼하게 읽어본 기억이 난다. 타임라인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분의 가족관계, 어린 시절의 슬픈 기억, 어제 먹은 저녁, 그리고 함부로 털어놓아서는 안 될 것 같은 지극히 사적인 가정사까지 모두 알아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자발적 신상털이에 수동적으로 가담한 것 같은, 썩 유쾌하진 않은 경험이었다. 문제는 나와 페친인 그 분이 당최 왜 나와 페친인지, 언제부터 페친이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그간 체크해 본 적이 없는 친구 숫자를 확인해 보았다. 소소하게 정말 친한 지인 50여명으로 시작했던 관계망이 어느새 수백 명으로 확대되었는지, 그 과정을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야만 할 수 있던 SNS가 스마트 폰의 발달로 인해 언제 어느 장소에서건 접속 가능하게 된 이후부터 SNS는 개인의 삶 속에 위험할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 트위터 타임라인을 읽는 것을 독서라 생각하고, 그 짧은 단상들을 마치 자신의 지식인냥 과시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쉽게 맺어지는 페이스북의 친구들이 정말 자신의 친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늘어나는 것 같다. 가끔 거절할 수도 받아들이기도 어색한 사람들의 친구신청 때문에 당혹스런 경험을 했던 이유 때문에 어지간하면 먼저 친구 신청을 하는 법이 없지만, 또 왜 자기에겐 친구신청을 하지 않냐며 서운하다는 사람도 있어 곤란했던 경험도 있다. 회사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바람에 다른 계정을 열었다는 다른 SNS 계정 속 친구는 거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았다. 수많은 관계망 속 사람들은 익명성을 내세우며 과감하고 노골적으로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 속에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영화
<디스커넥트>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영화 속 한 장면은 SNS의 이런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교에서 친구가 없는 벤은 페이스북을 통해 제시카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친구와 교류하게 된다. 하지만 제시카는 벤을 골탕 먹이려는 동급생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제시카가 실존 인물이라 믿는 벤은 제시카의 유혹에 못 이겨 누드 사진을 전송하고 만다. 그리고 동급생의 장난으로 이 사진은 순식간에 학교 전체에 퍼지고, 벤은 친구들의 멸시를 못 이겨 자살시도를 한다. 식물인간이 된 벤의 누나, 애비는 친구들에게 동생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 와중에 한 친구는 SNS를 들여다보다가 좋아하는 남자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나머지 친구들도 애비의 이야기는 무시하고 친구의 연애 이야기로 관심을 돌린다. 오프라인에서 보이는 친구들의 우정조차도 이제는 가짜라고 말하는 이 장면은 꽤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바로 앞에서 고민을 털어 놓는 친구보다 휴대전화 액정에 나타난 활자가 더 먼저인 이 시대를 비꼬는 장면을 통해
<디스커넥트>는 온라인의 소통이, 오프라인의 단절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한다.
이렇듯
<디스커넥트>는 한 마디로 단절과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이다.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간의 단절감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는 가장 촘촘하게 엮인 SNS라는 온라인 관계망 사이로 파고든다. 실시간으로 전 세계 누구와도 소통 가능한 현대 기술의 산물인 SNS는 사람들 사이를 치밀하게 엮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전원이 끊어지는 순간 사람들을 각각의 고립된 섬으로 만들어 버린다. 사람들은 가상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또한 영상 속 인물과 신체 접촉 없는 섹스를 하고, 실체 없는 인물과 친구가 되고, 또 이를 이용한 범죄의 희생자가 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의 소통, 그 문제를 다루기 위해 헨리 알렉스 루빈 감독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처럼 여러 가지 사건들 사이에서 우연인 듯 엮여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망을 보여준다.
앞서 말한 벤의 자살 시도와 함께, 두 가지 이야기 속 인물들이 더 얽힌다. 아들을 잃고 남편 몰래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채팅 사이트에서 위안을 얻던 신디는 인터넷 피싱을 통해 전 재산을 잃고 만다. 불법성인 사이트에서 화상채팅을 하는 미성년자 카일을 취재하는 방송국 기자 니나의 호의는 FBI 수사로 확장되면서 니나에게 마음을 열어준 카일을 곤경에 빠지게 한다. 세 편의 이야기 속 인물들은 각기 외롭게 섬에 갇힌 인물들이다. 이들 사이의 관계는 공허하고 절망적이다.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 구성원은 각기 멀어지고, 가정에서 버려진 청소년은 온라인 매춘에 빠진다.
현대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고립과 단절이라는 소재를 활용한 이야기의 전개는 예측가능하고 다소 평이한 편이라,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매그놀리아>의 온라인 버전이 되기에는 다소 부족함이 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영화의 제목처럼 루빈 감독은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하지만 비극과 허상으로 가득한 SNS와의 연결을 끊고, 가족과 이웃, 친구와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영화 속에 녹여낸다. 영화의 제목
<디스커넥트>는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인터넷 접속을 끊으라는 권유로도 해석 가능한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안정적인 배우들의 앙상블 가운데, 온라인 포주 역할을 맡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언제 등장하는지 찾아보는 재미는 덤이다.
<접속>
<디스커넥트>를 보고 나오면서 문득 1997년 장윤현 감독의
<접속>이 생각났다. PC 통신이라는 신문물에 빠진 사람들, 온라인 커뮤니티와 그 속에서의 익명의 만남을 다룬 신개념의 멜로였다. 초고속 인터넷이 유행하기 전, 전화선을 이용한 PC 통신을 다룬 만큼 꽤 신선하고 독창적인 영화였다. 지금은 삐삐처럼 아련한 추억이 되어버린 그 시절과 초고속 SNS의 시대 속에 빠져있는 2013년과 달라지지 않은 것은 딱 하나다. 여전히 사람들은 외롭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연결되고 싶은 ‘소통의 욕망’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지구촌 70억 인구 중 36억 명이 사용한다는 SNS와 인터넷. 손쉽게 관계 맺음할 수 있듯이 또한 손쉽게 끊어버릴 수도, 버려질 수도 있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가상의 세상 속에서 사람들은 소통하고자 하지만, 더욱 고립된다는 아이러니 속에서 살고 있다. 사이버 세상 속 사람들은 마치 지킬과 하이드 마냥 익명성이라는 가면 뒤에서 손쉽게 사람들을 공격하고 욕한다. 그럴수록 더욱 고립되는 기현상 속, 사회학자들은 SNS에 더 깊이 빠진 사람들일수록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전한다. 절대적인 단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원이 꺼지는 순간, 모두 사라져 버리는 허구의 친구들 대신 지금 내 손을 잡고 내 눈을 바라봐주는 가족, 친구가 필요하다. 결국 독서든 교제든 오프라인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손쉽게 누를 수 있는 ‘좋아요’ 버튼이 아니라 마주 잡은 손이 전하는 ‘체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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