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다윗과 골리앗』 은 보통 사람들이 거인을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관한 책이다. 여기에서 ‘거인’이란 군대와 힘센 전사에서부터 장애, 불운, 그리고 압제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강력한 적을 뜻한다. 이 책의 각 장들은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평범하든 비범하든, 거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이에 대응해야만 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규칙에 따라 싸워야 할까, 내 직감을 따라야 할까? 굴하지 않고 싸워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당한 만큼 반격해야 할까, 용서해야 할까?
이 이야기들을 통해 나는 두 가지 생각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많은 것들은 이런 식의 일방적 우위를 점한 충돌 속에서 나온다는 생각이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맞서는 행동이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우리는 항상 이런 종류의 충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충돌을 잘못 읽고, 잘못 해석하고 있다. 거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거인에게 힘을 주는 원천인 것처럼 보이는 요소는 종종 커다란 약점을 낳는 원천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은 때때로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바꾸어놓을 수도 있다. 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문을 열어 기회를 만들어내고, 자신을 가르치고 일깨우며, 그런 처지가 아니었다면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거인을 마주하기 위한 더 나은 지침서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3천 년 전 엘라의 계곡에서 마주한 다윗과 골리앗의 역사적 대결보다 이러한 여정을 시작하기에 더 좋은 사건은 없을 것이다.
골리앗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해 외쳤을 때, 그는 ‘일대일 결투’를 요구했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는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대결을 벌이는 양측은 전면전으로 대규모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 진영을 대표하는 전사 한 명씩을 뽑아 결투를 벌이게 했다. 예를 들면 기원전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퀸투스 클라우디우스 콰드리가리우스
Quintus Claudius Quadrigarius가 남긴 역사적 전쟁에 관한 기록에는 갈리아인 전사가 로마 적군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즉각 상류층 집안의 자제였던 티투스 만리우스
Titus Manlius라는 젊은이의 분노를 폭발시켰다”고 콰드리가리우스는 썼다. 티투스는 다음과 같이 갈리아 전사와 결투를 벌였다.
그는 앞으로 나섰고, 로마인의 용기가 갈리아인에게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랐다. 로마 군단의 방패와 스페인 검으로 무장한 그는 갈리아 전사와 마주했다. 결투는 아니오
Anio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벌어졌다. 양쪽 군사들은 엄청난 불안 속에서 이를 지켜보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갈리아 전사는 몸에 익힌 전투 방법에 따라 방패를 앞세우고 공격을 기다렸다. 전투 기술보다는 용기에 의존했던 만리우스는 자신의 방패로 상대의 방패를 들이받아 갈리아 전사의 중심을 무너뜨렸다. 갈리아 전사가 원래 위치로 돌아가려 하자 만리우스는 다시 방패로 방패를 들이받아서 상대방의 위치를 바꾸게 했다. 이런 방법으로 그는 갈리아 전사의 칼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 가슴에 스페인 검을 꽂았다. …… 갈리아 전사를 죽인 뒤, 만리우스는 그의 목을 베고 혀를 찢어내 피로 범벅이 된 채로 자신의 목에 둘렀다.
골리앗이 예상한 결투도 이런 방식이었다. 자신과 같은 전사가 백병전으로 맞붙으러 나설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는 다른 어떤 방식의 결투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며, 그런 생각에 맞춰 결투를 준비했다. 그는 몸에 가해질 일격에 대비해 청동으로 만든 비늘 수백 개를 중첩시켜 만든 정교한 갑옷을 입었다. 이 갑옷은 골리앗의 팔을 덮고 무릎에 닿을 정도였으니 그 무게가 아마 100파운드(45.3킬로그램)는 족히 나갔을 것이다. 그는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청동으로 된 무릎 보호대를 차고 두 발을 청동 판금으로 둘렀으며, 무거운 금속 투구도 쓰고 있었다. 또 그는 근접 전투에 최적화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무기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전체를 청동으로 만들어 방패는 물론 갑옷까지도 한 번에 뚫을 수 있는 던지기 창을 가지고 있었고, 옆구리에는 칼도 차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주로 쓰는 무기인 ‘두루마리처럼 굵은’ 금속 손잡이가 달린 특별한 종류의 짧은 찌르기 창도 가지고 왔다. 줄이 달린 이 금속 덩어리는 뛰어난 힘과 정확도로 찌를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역사학자 모셰 가르시엘
Moshe Garsiel이 썼듯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에는 저 무거운 손잡이에 길고 무거운 강철 날이 달린 이 엄청난 창을 골리앗의 힘센 팔로 찌른다면, 청동 방패는 말할 것도 없고 청동 갑옷까지도 한꺼번에 뚫릴 것처럼 보였다.” 왜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앞으로 나선 이스라엘 사람이 없었는지 이제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다윗이 나타났다. 사울은 다윗이 적어도 싸워볼 기회라도 얻을 수 있도록 자신의 칼과 갑옷을 주려고 했다. 하지만 다윗은 거부했다. “익숙하지 않으니 저는 이것을 입고 걷지 못하나이다.” 대신 그는 허리를 구부려 매끄러운 돌 다섯 개를 주워 어깨에 멘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는 양치기 지팡이를 들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골리앗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소년을 보고는 모욕감을 느꼈다. 그는 노련한 전사와 결투를 벌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그가 본 사람은 양치기였다. 모든 직업 중에 가장 천한 일을 하는 소년이 양치기 지팡이를 곤봉처럼 들고 골리앗의 칼과 맞서려는 것처럼 보였다. 골리앗은 그 지팡이를 가리키며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들을 들고 내게로 나아오는 것이냐?”
그다음에 벌어진 일은 전설이 되었다. 다윗은 돌 하나를 가죽 물매에 넣고 노출된 골리앗의 이마를 향해 날렸다. 이에 골리앗은 쓰러져 기절했다. 다윗은 그에게 달려가 칼을 빼앗아 목을 베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했다.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
누구도 절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전투에서 한 나약한 소년이 기적적으로 승리했다. 그 이후로 수천 년 동안 이 이야기는 그런 식으로 전해 내려왔다. ‘다윗과 골리앗’이라는 표현은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에 대한 은유적 표현으로 우리의 언어 속에 고착되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사건에 대한 이런 식의 거의 모든 설명이 틀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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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골리앗 말콤 글래드웰 저/선대인 역 | 21세기북스
3,000년 전 팔레스타인에서 양치기 소년이 돌팔매질 하나로 위대한 거인 전사를 쓰러뜨렸다. 이 이야기는 이후 ‘다윗과 골리앗의 전투’로 불리며 거인과 약자의 싸움으로 회자되어왔다. 이 책은 바로 이 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쟁, 스포츠, 정치,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한 강자들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니다. 말콤 글래드웰은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인 시각으로 사례를 수집하여, 통념과 달리 강자는 자주 약하고 약자는 보기보다 강하다고 일러준다. 책에서는 거인을 이겨낸 이 시대의 다윗 아홉 명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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