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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티넨털리언의 시작 -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하드보일드 학파의 창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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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집에는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 수록된 대실 해밋의 걸작 단편 중 9편이 실려 있다. 작품 모두 작가의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컨티넨털 탐정이 등장한다. 해밋의 단편들 또한 그의 장편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장르를 뛰어넘어 20세기 단편소설의 최고작들로 거론되는데 대실 해밋이 어떻게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의 대가를 넘어서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대실 해밋(Dashiell Hammett) [출처: 위키피디아]

파란만장한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만 훌륭한 예술 작품이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빼어난 예술 작품 뒤에 남달리 드라마틱한 작가의 삶이 발견될 때 유독 흥미와 매력이 배가되는 묘한 심리는 어쩔 수가 없다. 가령 생활고와 정신병에 시달리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고흐나, 역시 우울증으로 엽총 자살한 헤밍웨이의 경우처럼.

하드보일드 문학의 효시이자 거장으로 손꼽히는 대실 해밋 또한 자신의 작품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인생사를 지닌 인물이다. 가난한 가정환경, 사설탐정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 두 번의 입대, 만성 폐질환, 할리우드 영화 시나리오 집필, 끊임없는 여성 편력, 좌익 활동, 매카시즘의 표적, 투옥, 파산, 암 투병. 평단과 대중의 호응을 동시에 받으며 할리우드 영화계로 진출했던 스타 작가였구나 싶지만, 전성기였던 삼십대를 보낸 이후 그는 이렇다 할 작품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다시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며 친구들의 호의에 기대어 살아야 하는 비참한 말년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추리소설 작가로 대중의 인기를 누리던 1920년대와 1930년대 미국은 역사적으로도 격변의 시기였다. 흔히 광란의 시대로 불리는 1920년대는 경제 호황으로 배금주의가 팽배했으며, 알 카포네 같은 범죄 조직이 활개를 쳤고, 금주법이 발효되었으나 오히려 더 많은 불법 술집에서 밀주가 버젓이 유통되었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던 미국인들은 곧이어 닥친 대공황을 겪으며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불황에 허덕인 1930년대를 보내야 했다.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이민자들의 천국, 미국 사회의 부패상도 여실히 드러났다. 주머니 가벼워진 서민들의 오락거리로 싸구려 펄프 매거진이 크게 유행한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판매 부수가 백만 부에 달할 정도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주요 펄프 매거진은 장르 문학의 요람이자 훗날 상업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검증받은 작가들의 등용문이었으며, 썩어 빠진 미국 사회의 부패상을 낱낱이 폭로하는 배설 통로의 역할도 도맡았다. 대실 해밋은 레이먼드 챈들러와 더불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확보한 《블랙 마스크》의 필진이었다.

이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 역시 모두 1920년대 《블랙 마스크》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핑커턴 탐정사무소에서 실제로 근무한 경험을 바탕으로 선배 탐정을 모델로 삼았기에, 현장감 넘치는 사건 묘사와 수사 과정을 담백한 필체로 담아낸 해밋의 작품들은 범죄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또한 그가 작품에서 다룬 다양한 주제와 인물들은 당시 혼란스러웠던 미국 사회의 생생한 축소판이다.

「배신의 거미줄」 에서는 가짜 면허로 개원해 명성과 부를 얻은 의사의 죽음을 다룬다. 「불탄 얼굴」 과 「메인의 죽음」 에서는 상류층 여성들의 타락상을 엿볼 수 있다. 「중국 여인들의 죽음」 과 「쿠피냘 섬의 약탈」 에선 중국과 러시아에서 온 이민자들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파헤쳤다. 「크게 한탕」 과 「피 묻은 포상금 106,000달러」 에서는 범죄 조직의 활약상과 경찰의 무능함, 탐정계의 부패상까지도 풍자의 대상이다. 유럽까지 무대가 확장된 「국왕 놀음」 에선 민감한 전후 국제 정세를 소재로 삼았고, 「파리잡는 끈끈이」 에선 종잡을 수 없는 인간의 욕망을 특히 절묘하게 분석했다. 엄선된 아홉 편의 단편엔 하나같이 고유한 작가의 철학과 관심사가 느껴져, 섣불리 선호 순서를 정하기도 어렵다.

치밀하게 잘 짜인 범죄소설을 읽는 묘미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셜록 홈즈 이전에도 이후에도 탐정은 언제나 매혹적인 주인공이었다. 더욱이 고매한 정의를 앞세우기보다는 인간미가 넘치고, 땅딸한 키에 복부 비만이 연상되지만 그저 범죄자를 잡아넣는 탐정 일이 좋아 묵묵히 직업을 고수하는 중년 탐정의 모습은 은근한 블랙 유머와 함께 작품 속에서 더욱 돋보인다.

셜록 홈즈의 팬과 연구자들을 지칭하는 ‘홈지언’, ‘셜로키언’이라는 말이 있다. 챈들러의 필립 말로나 대실 해밋의 콘티넨털 탐정, 샘 스페이드를 사랑하는 장르 문학의 팬들도 많지만 아직 이들의 이름을 딴 낱말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셜로키언’과 상당수 겹쳐지기 때문일까.

나 또한 셜로키언이라 자처하는데, 이제는 슬며시 ‘콘티넨털리언’쯤으로 말을 만들어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다. 툭툭 내던지듯 간결한 문체와 간간이 섬세한 장문의 묘사가 혼재하는 초기 단편들과 씨름하며 옮긴 이로서 좌절의 순간도 꽤나 있었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선 분명 행복하고 짜릿한 작업이었다.


[관련 기사]

-“나를 암살하려던 경찰서장을 뭉개 버리고 싶다” -『붉은 수확』
-서양 추리문학상에 대하여: 독자의 선택을 돕는 기준
-역동적 삶의 순정, 순정한 삶의 역동 -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거인의 손금, 발자국, 입김 - 윌리엄 포크너(William Faulkner)
-유혹적일 정도로 평범한 통속의 삶을 사랑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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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단편선-04 대실 해밋 대실 해밋 저/변용란 역 | 현대문학
이번 작품집에는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에 수록된 대실 해밋의 걸작 단편 중 9편이 실려 있다. 작품 모두 작가의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캐릭터 컨티넨털 탐정이 등장한다. 해밋의 단편들 또한 그의 장편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장르를 뛰어넘어 20세기 단편소설의 최고작들로 거론되는데 대실 해밋이 어떻게 단순히 미스터리 장르의 대가를 넘어서 탐정소설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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