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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연 “인문학은 교과목이 아니다”

『이야기 인문학』 조승연 저자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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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인문학의 뿌리가 되었다”라고 말하는 저자 조승연이 지난 11월 18일, 서울 목동 KT체임버홀에서 열린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했다. 그는 이날 ‘학교 덕분에 인생 잘 살았다?’라는 제목으로 『이야기 인문학』과 관련한 이야기를 풀었다.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영어 단어에는 그 유래가 있다. 단어는 대개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연과 이야기가 있는 법. 가령, 낭만과 연애 등을 뜻하는 외래어 ‘로맨스(romance)’는 ‘Roma+ance’로 ‘로마답다’에서 나왔다. 고대 로마의 언어는 라틴어였는데, 중세의 매너 좋고 젊고 잘 생긴 이야기꾼 노릇을 했던 ‘트로바도르’가 들려주던 사랑이야기를 ‘로맨스어로 된 작품’이라고 해서 로맨스로 줄여 불렀다. 이것이 점차 사랑과 낭만을 이야기하는 단어로 발전했다. 이처럼 언어 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책이 『이야기 인문학』 이다.




모든 교과목은 인문학으로 통한다

『이야기 인문학』 조승연 저자는 전 세계가 당면한 청년들의 취업난부터 이야기를 풀어낸다. 한국에 ‘88만원 세대’가 있다면, 유럽에는 ‘1000유로 세대’가 있다. 2005년 나온 이탈리아 소설 『1000유로 세대』에서 따온 것으로 한 달에 ‘1000유로(150만 원 안팎)를 못 버는 세대’를 뜻한다.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을 이어나가야 하는 세대적 비극인데, ‘밀레우리스타(Milleurista)’로 불린다. 비슷한 의미로 미국은 ‘닌자 세대’라고 부른단다.

“부모나 선생은 말한다. 공부만 잘해. 그러면 인생 풀려. 그런 얘기를 듣고 자란 청년 세대들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공부를 했으나 결국은 실업자가 됐다. 사실 이러려고 공부한 것은 아니잖나. 인류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오늘날만큼 많은 시대는 없었다. 오늘날은 직업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방법을 모른다. 세상은 또 말한다. 인문학을 배워라. 그러면 창의성이 생겨서 일을 만들 수 있다. 그러니 인문학도 과목인가 보다,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문학도 과목으로 만드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인문학도 교과 과목으로 인식하게 된 시대. 학생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을 통째로 외우고 익힌다. 덕분에 인문학도 싫어하게 됐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래서 그는 “인문학은 과목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인문학의 정통개념을 알고 가자는 얘기다. 즉, 인문학은 국어이고, 영어이며, 수학이라는 것. 그는 덧붙인다. “인문학은 사람 이야기로 모든 과목이 얽히고설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는 이어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얽힌 비유를 꺼낸다.

“시각장애인들이 코끼리를 만진 뒤, 자신이 경험한 코끼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시각장애인은 코끼리는 마룻바닥처럼 평평하다고 하고, 누군가는 코를 만지더니 코끼리는 뱀처럼 길쭉하고 흐느적거린다고 말했다. 문제는 뭐냐. 임금이 숙제를 냈다. 50kg의 짐을 100km 떨어진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숙제였다. 코끼리를 모르는데, 코끼리 등에 짐을 싣고 이 짐을 옮길 수 있을까? 지금 우리의 많은 아이들에겐 창의성이 없다고 말한다. 창의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코끼리 전체를 볼 줄 모르는 것이다.”

그가 진단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한국의 많은 학생은 개별 과목은 잘 아나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이 부족하다.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지고 코끼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 전체가 코끼리임을 아는 것이 인문학이라는 것. 그래서 접근 방법이 달라지면 영어 단어 하나가 인문학이 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내가 영어를 배울 때, 가령 ‘프랭크(frank)’는 ‘솔직한’이라는 뜻이라고만 배웠다. 어원을 알고 보니 프랑스, 도끼 민족이라는 뜻에서 나왔더라. 원래 프랑스 민족은 로마시대에 북방야만족이었다. 로마의 침공에 대비한 이들의 무기 중에 도끼(프랑카)가 있었다. ‘프랑카를 던지는 사람’이라고 불렀고, 이들이 도끼를 얼마나 잘 던졌는지 유럽 중원을 장악했다. 그 프랑카 족이 사는 곳을 ‘프랑키아’라고 불렀고, 발음이 바뀌어 프랑스가 됐다. 이들은 한이 많은 민족이었다. 로마 사람을 만나면 무뢰한 말은 물론 안 해야 할 말도 서슴없이 했다. 그래서 ‘프랭크=야만족, 프랑크인처럼 할 말 안 할 말 안 가린다’, 이것이 ‘솔직하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frankly(프랭클리)는 ‘프랑크족처럼 말하자면’인데, ‘까놓고 말하자면’으로 바뀐 것이다. 프랜차이즈(Franchise)도 ‘Frank+ize’가 변형된 것으로 ‘프랑크인처럼 대하다’라는 말이 ‘사업권을 떼 주다’로 바뀌었다.”

그는 영단어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저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한문이었다며, 싫어한 이유가 중국 역사를 재밌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어서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문학은 모든 과목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인문학을 배우면 필리핀에 태풍이 불었을 때, 나의 삶, 나의 직장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인문학을 제대로 가르치고 배우지 않아서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한 외국인 친구가 외국계 회사 임원인데, 우리나라 학생들을 보고 대학(학벌)은 좋은 데를 나왔지만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 같다고 하더라.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풀 줄 아는 인재를 많이 보유한 나라가 선진국이다. 원래 공교육 제도는 프랑스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인문학 교육기관으로 만들었다. 목적은 문화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문화인은 커피를 마시면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사람이 아니다. 시대별로 사람이 해결해야할 문제를 푸는 사람이 문화인이다. 이는 ‘컬처(culture)’의 어원처럼 마음의 밭이 갈려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의 옛 교육기관인 서당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그걸 잘 알았다. 서당에선 다 가르쳤다. 지금의 교육제도는 수입된 것이다 보니, 어떻게 써야할지를 모르고 미리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사교육, 선행학습으로 가는 거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주변 사물과 사물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매일 쓰는 단어를 풀어쓴 책을 쓴 이유다. 도덕, 교육, 미술, 음악을 배우지 않으면 인간을 이해할 수 없고, 국영수도 할 수 없다. 나는 ‘학교를 다녀서 인생 잘 살게 됐다는 날을 위해 작은 씨를 심’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다.”




한국 대졸자는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는 따로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에 다음, 조승연 저자와 짧게 나눈 일문일답을 담았다.

기존 인문학 서적과 다른 『이야기 인문학』 만의 특징이 있다면?

다른 많은 인문학 책은 인문학을 하나의 과목으로 접근했다. 또 하나의 암기 공부가 됐다. 그것이 안타까웠다. 인문학의 기본 개념을 살펴보면, 국영수는 인문학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인문학은 모든 과목을 통합하고 있다. 교육 과목은 문제를 풀기 위해 만들어낸 것임을 이해하고 인과관계를 이해하고 볼 줄 아는 것이 인문학이다. 과목을 분리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인문학임을 알아야 한다. 사실 어려운 인문학 책이 많다. 인문학이 삶과 먼 이야기라면 중요하다고 하지 않겠지만, 가까이 있는 것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 인문학이다.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단어에도 만든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고민과 이야기가 있다. 이 책은 삶에 가까이 있는 것을 푸는 장점이 있다. 읽으면 바로바로 느낌이 올 것이다. 또 최대한 진짜 사람 이야기처럼 쓰고자 했다. 진짜 생생한 사람 사는 이야기처럼 풀려고 했다. 한자를 빼고 최대한 현장감 있는 구어체를 사용했다. 이 책은 72개 일상에서 쓰는 단어를 통해 실이 자연스레 얽혀있듯 풀어냈다. 공부한다고 인식하면서 책을 읽기보다, 그냥 읽었는데, 교양이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 좋은 책이라고 본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에 남녀와 가족 간의 사랑ㆍ배신ㆍ갈등, 전쟁의 잔인함과 영웅들의 발자취, 예술과 문학의 원천이 숨어있기 때문에 단어 공부야말로 더없이 재미있는 사람공부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쓰는 영어 단어들의 유래를 풀어보니,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문학 책이 되었다.”(p.4)
학교 교육과 관련해서 인문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초중고는 원래 인문학 전문기관으로 세워진 것인데, 지금은 그런 의미가 많이 희석됐다. 외국기업 임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국의 대학졸업장은 어떻고, 졸업자들이 일을 잘 하느냐 물었다. 그들이 답하기를, 아는 건 많은데,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 같다는 거다. 초등학교 때부터 인문학을 자연스레 배워야 하는데, 딴 짓, 즉 입시공부만 하고 있었던 거지. 사회에 진출해도 기본이 뚫려 있다는 얘기다. 수학을 배워도 어디에 써 먹는지, 모른다. 통합교육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선생이나 부모들이 어디까지 해줄 수 있고, 인문학이 뭘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인문학은 국영수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재밌게 접근한 것이다.

교양과 관련한 어떤 문제의식에서 이 책을 쓰게 됐나?

어떤 사람들은 문화인이라고 하면 폼 잡는 것으로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모차르트 음악을 듣는 그런 것. 다른 인문학 책을 보고 문제의식을 가졌다. 문화인은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온 여러 재밌는 이야기를 알고,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이렇게 하면 해결이 되겠다는 답을 찾는 사람이다. 문화, 즉 ‘컬처(culture)’라는 단어의 어원을 보면, ‘마음의 밭을 간다’는 뜻이다. 마음의 밭을 간 상태에서 지식이라는 씨앗이 뿌려지면 창의력이라는 나무가 자란다. 그럼에도 문화인이라고 하면 커피 한 잔 하면서 모차르트 듣는 것으로 여겨서 안타깝다.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더 어렵다. 남에게 얘기해줄 수 있는 부분만 아는 것이 안타깝다. 전반적으로 알아야 함에도 남의 멋진 말을 인용해서 있는 척을 한다. 사실 서양의 인문학은 이해하기 힘든 측면도 있다. 우리가 서양 인문학 접근할 때는 단순한 것부터 설명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별나다고 하면 욕처럼 인식된다. 『이야기 인문학』 을 보면 나와 있는데, 서양에선 평균이 욕이고, 별나다는 말이 칭찬이다. 그런 것을 알아야 왜 영웅전이 유럽에서 많이 쓰였는지 알 수 있다. 어렵게 알려주지 않아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 능력을 만드는 것이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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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천재 조승연의 이야기 인문학 조승연 저 | 김영사on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 속에는 수천년간 이어져온 인간의 역사가 모두 담겨 있다. 사랑, 갈등, 전쟁, 예술, 문학, 사회모습…. 그래서 단어의 유래를 살피다보면, 맹수들로부터 가족을 보호하려던 원시인들의 고민부터, 기원전에 이미 문명의 꽃을 피웠던 고대 인도와 페르시아인들의 잡담, 그리고 남태평양 외진 섬 왕들의 삶의 모습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언어 속에 숨겨진 시공간을 관통하는 이야기와 지식을 재미있게, 그러나 제법 단단하게 전달해주는 인문서이다. 자연스레 삶 속에 스며드는 인문학을 지금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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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이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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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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