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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좋은 글은 명료함, 아름다움이 조화된 글”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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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일, 6주 동안 이어질 <고종석의 한국어 글쓰기 강좌 STEP 2>가 시작되었다. STEP 1에서 ‘글을 왜 쓰는가’에서 부터 ‘실전 글쓰기’까지 빠른 속도로 훑어보며 지나왔다면, STEP 2에서는 텍스트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공부한다. 조금 더 구체적인 글 공부다. 대부분이 지난 강좌에 이어 수업을 듣는 수강생이었지만, 새 강의를 시작하는 듯 조금쯤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 첫 시간을 지면에 옮겨본다.



고종석은 STEP 2라고 적어 놓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말로 긴장된 마음을 풀어주었다. 더 어려운 단계가 아니라 더 자세히 공부하는 거라 말한 그는 좋은 글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좋은 글이 갖춰야 할 덕목은 지난 6주간의 강좌에서 이미 몇 번 언급했던 부분이었다.

좋은 글은 명료하면서 아름다운 글이다. 문법이 단정하고 논리가 차곡차곡 잘 쌓인 글을 명료한 글이라 하고, 수사가 적절히 사용된 글을 아름다운 글이라 한다. 물론 이 꼭 이렇게 양분되는 것은 아니다. 논리에서 아름다움이 나오기도 하고, 아름다움에서 논리가 나오기도 한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대체로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이 바른 선택이겠지만, 좋은 글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어느 한 쪽이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이 날은 고종석이 생각하는 명료함과 아름다움이 조화된 글 한편을 함께 읽었다. 나누어준 글은 불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현 선생의 「『말들의 풍경』을 시작하며」 였다. 이 글은 김현 선생의 유교평론집인 『말과 풍경』 에 실린 글로 연재를 시작하며 쓴 글이다. 고종석은 김현 선생이 기독교인이었지만 글에서는 헬레니즘적 세계관이나 불교관적 세계관이 느껴진다 말했다. 이 글에도 ‘지선과 전능’의 세계‘가 아니라 고정된 것이 없이 변하는 ‘다신의 세계’가 담겨있다.

글을 한 줄씩 읽어나가며 잘 써진 부분들을 곱씹었다. 김현 선생은 자기 주장에 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멀리서부터 차근차근 논리를 쌓아간다.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안내하는 길을 따라 ‘고정된 것은 없고 세상은 늘 움직이고 있다’는 주장에 닿게 된다. 무리 없는 논리로, 미적 감동을 주면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글이었다.

특별히 좋다고 강조한 것은 다음 부분이다. ‘말들의 풍경이 자주 변하는 것은 그 풍경 자체에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가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며, 동시에 풍경을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자꾸 변화하기 때문이다. 풍경은 그것 자체가 마치 기름 물감의 계속적인 덧칠처럼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로 덧칠되며, 그 풍경을 바라다보는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마치 빛의 움직임에 따라 물의 색깔이 변하듯 변한다.’이 부분에 등장하는 수사는 필자만의 고유한 수사이면서 절묘하게 말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도 잘 짜여 있다. 연달아 이어진 문장이 같은 형태로 대응되고 있는데, 이런 문장에서는 표현법을 통일해주는 게 효과적이다.

수강생의 참여도 더 활발해졌다. 고종석은 ‘나는 너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네가 아니고, 너는 나와 같이 싸우고 사랑하지만 내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읽고 난 뒤, ‘같이’를 ‘서로’로 바꾸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수강생 하나가 손을 들고 이 글에서 ‘같이’는 ‘서로’가 아니라 ‘함께’나 ‘같은 편으로’을 의미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고종석은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반가운 표정으로 수강생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수업을 준비하며 여러 번 읽었음에도 오독이 있었다며 말이다. 자연스럽게 감사를 표하는 모습이 고종석다웠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너와 다르다’는 문장에 등장하는 보조사 ‘은/는’에 대해 설명했다. 흔히 주격조사 ‘이’나 ‘가’와 같은 위치에 쓰기 때문에 주격조사라고 오해하지만 ‘은/는’은 보조사다. 학교문법에서는 이야기되지 않지만 화제를 나타내는 말로 이해하는 게 좋다. ‘-은’이나 ‘-는’ 은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겠다는 의미이며, 뒤에 오는 서술어는 화제에 대한 설명이다.

고종석은 시를 읽는 것도 좋은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인들은 산문가에 비해 말을 고르는데 신중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시인들은 언어감각이 섬세하다고 이야기하며 본인도 소설은 잘 읽지 않지만 시는 꾸준히 읽는다고 말했다. 시 읽기는 언어감각뿐 아니라 리듬감도 키워준다. 시를 자주 읽다보면 리듬감 있는 산문을 쓸 수 있다. 시의 운율과는 다르지만 산문에도 호흡상 필요나 글의 이해를 돕는 좋은 리듬감이 필요하다. 유명 필자인 진중권이나 허지웅은 원고를 쓰고 송고하기 전, 자신이 쓴 원고를 소리 내 읽어본다고 한다. 고종석은 ‘그럴 시간에 얼른 송고하고 술이나 마시’라는 농을 던졌지만, 곧 말의 리듬을 확실히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라 말했다. 글의 리듬감을 익힐 필요가 있다면 이 방법을 반복하는 걸 추천한다.




계속해서 고종석의 저서이자 수업교재인 『자유의 무늬』를 읽었다. 여러 작품을 체크했던 지난시간과 달리 이번 수업에서는 두 개의 글을 심층적으로 읽어나갔다. 선택된 글은 「빨강」 과 「특권」 이었다. 「빨강」 은 월드컵의 빨간색에서 시작해 한국에 오랫동안 자리 잡은 ‘빨갱이 콤플렉스’를 지적한다. 이어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 의 글을 통해 ‘피가 아닌 장미에서 느낄 빨간 아름다움’을 언급한 다음,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건물 청소부들의 애환을 그린 영화 <빵과 장미>로 논의를 이어간다. 그리고 다시, 월드컵의 붉은 열정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나 거리의 청소부를 포함한 모든 아웃사이더들에게 건넬 장미를 마련하기 위해 조금쯤 저축해두자 권한다. 고종석은 이 글이 ‘빨강’을 가지고 꾸준하게 논의를 끌어간 점에서 ‘괜찮은 글’이라 말했다.

수정은 지난 시간 내내 수강생들이 직접 수정해서 제출했던 과제물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언제나처럼 ‘-의’, ‘-적’, ‘-들’을 지적했고, ‘문화적 실천 가운데 하나는’은 ‘문화적 실천 하나는’으로 고쳤다. ‘전대미문’은 ‘전에 없던’으로 쓰고, 너무 긴 문장은 둘로 나누었다. 고종석은 ‘마르크스는 취향을 묻는 딸의 애교스런 질문지에 대답하면서 자신이’에서 ‘자신이’를 빼고 ‘대답하면서’ 뒤에 쉼표를 찍으면 글이 더 잘 읽힌다고 했다. 그때, 누군가 ‘북한 중등 학생들의 예비군 조직이라는 붉은 청년 근위대’에서 ‘-이라는’을 ‘-인’으로 바꾸자고 말했다. 하지만 고종석은 그렇게 쓴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단체이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쓸 때 확실히 아는 것만 써야 한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고종석은 필요 없이 쓰인 접속사와 ‘-적화 현상에 대해’에 ‘대해’를 삭제하며 꼭 필요한 게 아니면 덜어내라고 했다. ‘이 제한된 재화의 소비에 적절한 오리엔테이션을 주는 것은’에서 ‘오리엔테이션’은 멋 부린 말이라며 ‘방향’이나 ‘지향점’으로 고쳤다. 가급적이면 ‘-를 비롯한’은 쓰지 않는 편이 낫다. 그는 가능한 ‘-를 포함한’으로 수정하고, ‘나를 비롯한’은 절대 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자신을 굉장히 앞세우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땅이 사랑과 평화의 땅이라는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것’은 독자가 팔레스타인의 어원이 사랑과 평화라고 오해할 수가 있어 좋지 않은 표현이다.

수강생들 대부분이 새롭게 알게 된 낱말도 있다. 바로 ‘파천황’과 ‘여투다’다. ‘파천황’은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처음으로 이룬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며, ‘여투다’는 ‘돈이나 물건을 아껴 쓰고 나머지를 모아둔다’는 뜻이다. 고종석은 소수의 사람들이라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라면 익히고 쓰는 게 좋다 말했다. 모르는 낱말의 뜻을 익히는 건 일반적으로 좋은 일이며 글을 쓸 때도 유익하니 말이다.

다음으로 읽은 글은 「특권」 이다. 이 글은 ‘예술이나 예술가, 학문이나 학자들을 치외법권 지대에 두려는 성스러운 노력이 일반적 수준에서 자유에 대한 법의 제재를 줄여가려는 세속적 노력으로 바꿔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종석은 잘못된 법이 있다면 그 법을 고쳐야지 몇몇 사람에 대해 특별하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말했다.

첫 번째 문장 ‘베르나르 프랑크라는 프랑스 문학평론가가 있다’는 ‘프랑스 문학평론가’라는 모호한 표현 때문에 수정이 필요했다. 이때, ‘프랑스에는 베르나르 프랑크라는 문학평론가가 있다’로 고치면 문제가 해결된다. ‘프랑크는 시사주간지 《르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고정칼럼니스트인데’에서 《르 누벨 옵세바퇴르》에 ‘르’ 라는 관사를 쓴 것에 대해 고종석은 잘난 척이라 말했다. ‘더 타임즈’, ‘르 몽드’, ‘뉴욕 타임즈’ 같은 표기에서 알 수 있듯 한국에서는 한 음절 이상인 매체 이름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는 관습이 있다. 그러니 굳이 관사를 쓴 것은 지식을 자랑하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자신의 글을 객관화하는 그의 태도는 언제보아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어서 서술격 조사 ‘이다’의 용법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자음 뒤에서는 ‘이다’로 쓰면 되는데, 모음일 때는 ‘작가이다’와 ‘작가다’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한다. 이때는 글 쓰는 사람의 감각을 따르면 되는데, 고종석은 후자가 간결하고 더 좋다고 했다. 계속해서 ‘문화특권주의는 부르디외가’ 라는 문장을 읽으며 ‘프랑스 사회학자 부르디외’ 라고 정보를 주는 편을 권했다.

글 한편을 소리 내서 읽은 때문인지 이날 수업은 평소보다 짧게 느껴졌다. 하지만 좋은 글을 함께 읽으며 그 미덕을 새겨본 경험이 꽤 귀하게 느껴졌다. 직접 글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만, 좋은 글을 많이 읽는 것 역시 못지않게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꼼꼼하게 글을 읽다보면 글을 보는 안목이 늘기 마련이다. 집중적으로 몇 편의 글을 깊이 읽는 STEP 2 강좌가 한층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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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연빈

북극곰이 되기를 꿈꾸며 세상을 거닐다.
어지러운 방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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