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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른다 - <교향곡 4번 e단조 op.98>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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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곡입니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음악입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일 악장을 하나만 꼽자면 3번 교향곡의 3악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먼저 첼로가, 이어서 바이올린이,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관과 호른이 연주하는 주제 선율이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슬프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지요. 영화와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교향곡 전체를 놓고 봤을 때는 아마도 4번이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것 같습니다. 바로 오늘 들을 곡입니다. 브람스가 50대 초반에 접어들었을 무렵, 그러니까 1884년에서 이듬해까지에 걸쳐 작곡한 음악입니다. 브람스는 52세에 이 곡을 완성하고 나서 12년 뒤인 1897년에 세상을 떠나지요. 교향곡으로는 4번이 마지막 곡입니다. 이후의 브람스는 교향곡은 물론이거니와 관현악이 들어간 곡도 거의 쓰지 않습니다. 바이올린과 첼로를 독주악기로 등장시킨 ‘2중 협주곡 a단조’가 관현악을 포함한 곡으로는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브람스는 그렇게 생애의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 관현악보다는 실내악에 한층 마음을 기울입니다. 특히 말년의 그는 클라리넷을 주인공으로 삼은 5중주, 3중주, 소나타 등에 집중했지요.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출처: 위키피디아]

오스트리아 빈에서 남쪽으로 1시간쯤 떨어진 거리에 뮈르츠슐라크(Murzzuschlag)라는 전원 도시가 있습니다. 산세가 아주 빼어난 아름다운 곳이지요. 브람스는 이곳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입니다. 당신과 함께 마법과 같은 달밤의 하루를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사실 이 표현은 거의 애정 고백에 가깝지요. 하지만 제가 <내 인생의 클래식 101>에서 브람스에 대해 종종 언급했듯이, 브람스는 클라라와 ‘사고’(?)를 칠 만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스승의 아내’라는 부담이 당연히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보다는 브람스라는 사람 자체가 결혼을 두려워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성싶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힘겨운 결혼 생활을 목격해야 했으니까요.

50대에 들어선 브람스는 여전히 독신이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과 더불어 경제적 안정도 상당히 얻은 상태였습니다. 그는 1894년 여름에 복잡한 빈을 떠나서 뮈르츠슐라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곡을 썼지요. <교향곡 4번 e단조 op.98>이 바로 그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브람스는 두 해의 여름을 뮈르츠슐라크에서 보내면서, 빈에 있는 지인들에게 어떤 곡을 작곡하고 있는지를 일체 함구한 채 교향곡 4번을 써내려갔습니다. 그것이 또한 브람스의 성품입니다. 신중하고 내향적이었던 그는 웬만해선 말을 아꼈습니다. 어찌 보자면 소심한 사람이었다고 해야겠습니다. 자신의 곡에 대해 스스로 자신 없어 했던 것이기도 하지요.

그가 교향곡 4번의 작곡 사실을 처음 털어놓은 것은 1885년 8월에 엘리자베스 폰 헤르초겐베르크(1847~1892)에게 보낸 편지에서였습니다. 이 여인은 제가 브람스 <피아노 협주곡 2번 B플랫장조 op.83>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활약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한때 브람스의 피아노 제자가 되기를 간청했으나 브람스가 거절했다는 여인이지요. 일설에는 브람스가 그녀의 빼어난 외모에 마음을 뺏길까봐 그랬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것이 어느 정도까지 사실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어쨌든 그녀는 브람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받은 ‘여자친구’였습니다. 브람스 음악에 대한 이해가 깊어서 좋은 조언자의 역할을 하곤 했지요. 브람스는 그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향곡 4번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언을 청하고 있는데, 그 주저하는 어투에는 브람스 특유의 성품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곡의 단편을 보내겠습니다. 그것을 보고 한마디 해주겠습니까? (중략) 내가 보기에 썩 좋은 곡은 아닙니다. 몇 군데 수정할 곳도 있습니다. (중략) 만약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괘념치 마십시오.”

하지만 이 곡의 반향은 컸습니다. 브람스는 1885년 10월 25일에 마이닝겐 궁정관현악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해 초연하는데요, 이 초연을 리허설 할 때는 한스 폰 뷜로(1832~1902)가 브람스를 대신해 지휘봉을 들었습니다. 물론 브람스가 참관한 리허설이었지요. 이 장면도 참 재미있습니다. 리허설은 뷜로가, 실제 연주는 브람스가 한 것이지요. 그런데 뷜로는 리허설을 마친 첫날(22일), 공연기획자로 이름이 높았던 헤르만 볼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방금 연습을 마치고 왔습니다. 4번 교향곡은 굉장합니다. 무척 새롭고 개성이 뚜렷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드문 열정이 넘쳐흐릅니다.”

초연은 성공적이었습니다. 브람스의 팬이었던 마이닝겐 백작의 요청에 의해 1주일 뒤에 같은 장소에서 또 연주됐을 뿐 아니라, 오스트리아와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는 일련의 연주회가 곧바로 펼쳐졌습니다. 다음해 4월까지 거의 20개 가까운 도시에서 교향곡 4번이 연주됐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첫선을 보였던 <교향곡 4번 e단조>는 50대에 접어든 브람스의 음악적 연륜, 그리고 그의 삶을 관통했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는 곡입니다.

특히 이 곡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지요. 1896년 5월 20일에 슈만의 아내였던 클라라, 브람스가 마음속으로 언제나 그리워했던 그녀가 뇌졸중으로 저세상 사람이 되고 맙니다. 클라라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온 브람스는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하지요. 아버지가 앓았던 간암이 아들인 브람스에게도 찾아와 급속하게 진행됩니다. 그는 이듬해 3월 7일에 한스 리히터가 지휘하는 빈필하모닉의 연주회, 빈의 무지크페라인에서 열렸던 음악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참석했다고 하는데요, 그날 연주됐던 곡이 바로 <교향곡 4번 e단조>였습니다. 그 연주회는 아직 살아 있는 브람스가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공식 행사였습니다. 그날 브람스의 모습은 뼈만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4월 3일, 브람스는 친구나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눈을 감습니다. 집안 살림을 도와주던 가정부가 그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집니다.


1악장은 알레그로 논 트로포(빠르되 지나치지 않게). 서주 없이 곧바로 현악기가 첫번째 주제 선율을 연주합니다. 첼로와 호른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 선율은 좀더 환하고 서정적입니다. 전체적으로 체념과 슬픔의 분위기가 감도는 악장입니다.

2악장은 안단테 모데라토(적당히 느리게). 호른과 목관이 잔잔한 애수를 노래하면서 시작합니다. 중세 교회음악에서 많이 사용했던 프리기아 선법의 음계를 사용하고 있는데요, 굳이 프리기아 음계를 모르더라도 그냥 선율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어서 바이올린의 피치카토와 어울리며 클라리넷이 첫번째 주제 선율을 노래합니다. 두번째 주제는 첼로가 연주합니다. 약간 몽환적이면서 중세적인 느낌이 감도는 악장입니다.

3악장은 알레그로 지오코소(빠르고 즐겁게). 앞의 악장들과 달리 활달하게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관현악 총주로 박력 있는 첫번째 주제를 제시하고, 춤곡 풍의 두번째 주제는 바이올린이 연주합니다. 관현악의 힘찬 연주 속에서 들려오는 트라이앵글 소리에도 귀를 기울여보시기 바랍니다.

4악장은 알레그로 에네르지코 에 파쇼나토(빠르고 힘차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관악기가 묵직하게 문을 엽니다. 바흐 시절에 유행했던 샤콘느(chaconne) 풍의 비장한 주제 선율을 제시하고 그것을 30회 변주하는 독특한 악장입니다. 바흐의 칸타타 150번 ‘주여, 저는 우러러봅니다’에서 영향을 받은 악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 종결부는 비장하고도 단호합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Carlos Kleiber)ㆍ빈필하모닉/1980년/DG

완벽주의자 클라이버가 빈필하모닉을 지휘한 녹음이다. 필청반이다. CD가이드가 20세기 명반 리스트에 올렸던 이 음반은, 아마도 지금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 브람스 교향곡 4번일 성싶다. 예스24의 음반 차트에서도 역시 그렇다. 클라이버의 브람스 4번 해석은 베토벤을 연주할 때와는 달리 약간 무뚝뚝하고 건조하다. 하지만 카라얀처럼 냉엄한 분위기를 펼치는 것은 아니다. 카라얀이 브람스 4번을 한겨울의 추운 음악으로 연주한다면, 클라이버의 연주는 만추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자유주의자 클라이버, 당연히 브람스처럼 고독감을 느꼈을 이 지휘자의 정신성이 느껴지는 명연이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ㆍ베를린필하모닉/1991년//DG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내려가는 강물처럼, 이리저리 구비치고 출렁거리는 연주다. 하지만 그 물결이 거칠지는 않다.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이 감돈다. 정확한 구조와 다이내믹스를 겸비한 음반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혹자에 따라서는 브람스의 고독과 슬픔을 너무 아름답게 연주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수 있겠다. 1악장이 가장 빼어나고 3악장에서는 밀어부치는 박력에서 다소의 아쉬움을 남긴다. 무겁게 가다가 어느 순간 날렵해지고, 우울한 느낌이 충만하다가 슬며시 햇살이 반짝이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마리스 얀손스(Mariss Jansons)ㆍ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2011년/BR Klassik

마리스 얀손스는 무슨 음악을 연주하든 구조와 디테일을 모두 장악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이처럼 ‘모범적인 연주 스타일’은 브람스 교향곡에서도 여전하다. 악기 하나하나의 표정이 세밀하게 살아 있는 동시에 전체적인 곡의 구조에서도 흔들림이 보이지 않는다. 얀손스뿐 아니라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지닌 특색도 그러하다.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오래도록 단련된 그들은 음표 하나하나에 집중한다. 지휘자와 악단의 신뢰감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그리하여 듣는 이들에게도 신뢰를 전해주는 녹음이다. 브람스 교향곡 1번이 커플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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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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