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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커피 그리고… 브람스, <교향곡 1번 c단조 op.68>

등 뒤에서 다가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 ‘거인’의 정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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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들을 음악은 <교향곡 1번 c단조 op.68>입니다. 브람스는 흔히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음악의 3B’로 일컬어집니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에서는 바흐나 베토벤이 종종 보여줬던 유머나 익살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브람스 스스로도 “나는 우울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듯이 그의 음악은 침울하고 내향적입니다.

가을입니다. 짙은 커피향 같은 브람스의 음악이 떠오르는 계절입니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긴 합니다만, 저는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음악적 영향이 상당히 뿌리 깊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브람스의 유년기는 몹시 가난했고 그의 아버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습니다. 이름 없는 악사로 근근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내 인생의 클래식 101> 2월 4일자에서 한 적이 있습니다.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d단조 op.15>를 설명하는 글에서였지요. 이 글을 읽기 전에 그 글을 먼저 클릭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요한 야코프 브람스는 콘트라베이스뿐만 아니라 관악기인 호른도 연주했습니다. 주로 술집에서였지요. 브람스의 고향인 독일 북부의 함부르크는 항구도시입니다. 아버지는 항구 주변의 술집에서 호른을 연주하면서 돈을 벌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어린 브람스는 그런 아버지에게 일찌감치 음악을 배웠지요. 그리고 자신도 13살 때부터 술집에서 피아노를 연주해 돈을 법니다. 아마 부자(父子)가 같은 술집에서 연주하기도 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브람스의 첫번째 음악선생은 아버지였습니다. 한데 아버지는 브람스가 피아노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아들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취직해서 무난하게 먹고 살기를 바랐는데, 피아노는 오케스트라에 필요 없는 악기였던 때문이지요. 아버지가 그토록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피아노를 어린 브람스에게 가르쳤던 첫번째 스승은 코셀이라는 ‘동네 음악가’였습니다. 한데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브람스의 음악적 재능이 자신이 가르치기엔 너무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스승인 작곡가 에두아르트 마르크센(1806~1887)에게 브람스를 보내 가르침을 받게 하지요. 거기까지가 브람스가 받았던 음악 교육의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정리해보자면, 브람스의 첫번째 음악적 스승은 아버지, 피아노 선생은 코셀, 작곡과 음악이론에 관한 교육은 마르크센에게서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브람스는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한 ‘무학의 음악가’입니다. 어린 시절에 도제식 교육을 잠시 받은 것이 이른바 ‘음악교육’의 거의 전부인 셈입니다.

그의 음악적 텍스추어는 묵직한 중저음이 강조돼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북독일의 음울하고 습한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사람의 기질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일까요. 브람스의 음악 곳곳에 흐르는 저현의 선율들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평생을 살았던 아버지의 그림자일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또 <피아노 협주곡 2번>에서 1악장의 문을 여는 호른 솔로, 혹은 <교향곡 1번>의 4악장에서 안단테 템포로 흘러나오는 호른 소리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열 살 무렵의 브람스가 노상 들었을 아버지의 콘트라베이스와 호른 소리가 자꾸만 겹쳐지곤 합니다.

요하네스 브람스(Johannes Brahms)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 들을 음악은 <교향곡 1번 c단조 op.68>입니다. 브람스는 흔히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독일음악의 3B’로 일컬어집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에 별로 동의하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바흐, 베토벤과 더불어 브람스를 독일 정통주의의 계보로 한데 묶으려는 시도가 브람스 생전이었던 19세기 중ㆍ후반부터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브람스의 음악에서는 바흐나 베토벤이 종종 보여줬던 유머나 익살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브람스 스스로도 “나는 우울한 사람”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듯이 그의 음악은 침울하고 내향적입니다. 베토벤에 비하자면 보다 선율적인 성격이 두드러지면서, 그 선율 속에는 슬라브적이고 집시적인 감성이 아련하게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때로 헝가리풍의 흙냄새 나는 리듬이 육박해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브람스는 그 모든 것들을 ‘엄격한 독일적 형식’ 속으로 귀납시키지요. 그렇게 고전적 형식미를 포기하지 않았던 태도 때문에 브람스에게 ‘3B’라는 호칭이 가능했을 것이고, 낭만주의 시대를 살면서도 고전주의를 지향했다는 평가가 내려졌을 겁니다.

<교향곡 1번>과 관련해 전해지는 브람스의 유명한 말이 있지요. “등 뒤에서 다가오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친구였던 지휘자 헤르만 레비(1839~1900)에게 했던 이야기인데 좀더 인용해보면 이렇습니다. “이런 거인이 뒤에서 뚜벅뚜벅 쫓아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면서 느껴야 하는 기분이 어떨지 당신은 상상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거인은 누굴까요? 네, 아마 다들 아실 겁니다. 바로 베토벤이지요. 말하자면 이 말은 교향곡을 작곡하면서 베토벤이라는 앞 시대의 거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고백입니다. 베토벤이 남긴 위대한 교향곡들에 필적한 만한 작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 대한 토로인 셈입니다.

한데 당시에 베토벤을 의식했던 음악가는 브람스만이 아니었습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음악의 현자(賢者) 바흐는 1750년 타계 이후에 음악이 거의 연주되지 않는 ‘잊혀진 작곡가’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마는(적어도 멘델스존에 의해 부활하기까지), 베토벤의 경우는 상황이 달라도 많아 달랐습니다. 베토벤은 1827년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여전히 가장 많이 연주되는 죽은 작곡가’였습니다. 19세기 내내 그랬습니다. 아마 요즘도 그럴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베를리오즈, 바그너, 브람스 등 이후의 수많은 중요 음악가들이 베토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직간접적으로 고백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중에서도 브람스의 경우는 베토벤에 대한 존경심이 유난했고, 베토벤의 음악적 성과를 의식하는 정도가 다른 이들보다 훨씬 강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으로 남아 있는 브람스의 음악실에서도 그 모습을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에 자리한 그 아담한 공간에는 창밖을 향해 피아노가 놓여 있고, 그 왼쪽 벽에 베토벤의 커다란 흉상이 걸려 있습니다. 물론 그밖에 라파엘로의 <시스티나 성모> 복제화, 비스마르크의 초상화 등도 걸려 있지만 베토벤의 흉상은 유난히 높은 곳에서 피아노를 치거나 작곡을 하는 브람스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브람스는 애초부터 소심한 성격, 좋게 말해 신중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아울러 이 지점에서 또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선배 음악가 슈만 덕분에 그런 성격이 한층 심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앞에서 잠시 언급한 <내 인생의 클래식 101>의 2월 4일자로 다시 한번 돌아가보겠습니다. 거기에는 슈만이 잡지 <음악신보>에 ‘새로운 길’(Neue Bahnen)이라는 제목으로 브람스에 대한 극찬을 게재했다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한데 그것은 브람스의 영광이었던 동시에 두려움이었으며, 앞으로의 험로를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슈만은 그 글에서 브람스를 열정적으로 옹호하면서 리스트와 바그너 풍의 음악을 거세게 비난하지요. 그런 까닭에 브람스는 음악계 데뷔와 동시에 반대파들의 공격 타깃이 됩니다. 바그너가 그를 공격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바그너를 숭배했던 작곡가 휴고 볼프는 브람스의 교향곡을 일컬어 “구역질나도록 고리타분한 거짓말”이라고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내향적인 브람스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일일이 대응한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남들 말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자유롭고 호방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도 아닙니다. 왜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들이 가끔 있지 않습니까? 남에게 비난을 들으면서, 또 그것 때문에 내면적으로 스트레스를 적잖이 받으면서도, 거기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고 묵묵히 버티는 사람! 브람스는 바로 그런 유형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등 뒤에서 다가오는 베토벤을 의식했던 브람스, 게다가 반대파들로 인해 음악적으로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던 그는 첫번째 교향곡을 작곡하는 데 거의 2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야말로 갈고 닦으면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면서 작곡에 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장 초기의 스케치는 1855년에 이뤄졌다는 설(브람스 전기를 쓴 막스 칼베크의 주장)이 있지만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1862년에 1악장을 완성했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듣는 1악장과는 형태가 달랐습니다. 이후에도 브람스는 그 악보를 오랫동안 묵혀 뒀다가 1874년부터 1876년까지 집중적으로 매달려 완성을 보게 됩니다. 초연은 1876년 11월 4일, 칼스루에 궁정관현악단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브람스의 친구이자 <교향곡 1번>의 충실한 조언자였던 오토 데소프(1835~1892)가 지휘를 맡았지요.


브람스는 자신의 첫번째 교향곡에서 베토벤이 교향곡 5번에서 사용했던 c단조를 주된 조성으로 택했습니다. 1악장은 운 포코 소스테누토(Un poco sostenuto, 음악을 조금 끌듯이)로 시작합니다. 2분이 훌쩍 넘는 긴 서주입니다. 현악기는 상승음계를, 목관악기는 하강음계를 연주하면서 대립적인 긴장감을 조성합니다. 팀파니의 웅장한 울림이 배경으로 깔립니다. 서주의 끝 부분으로 다가서면서 오보에가 부드러운 선율을 잠시 노래하고 그것을 첼로로 옮겨갑니다. 이어서 꽝, 하는 포르테시모(ff)로 분위기를 전환하면서 주제를 제시합니다. 이 지점부터 음악이 알레그로(Allegro) 템포로 빨라집니다. 바이올린 파트가 비장하고도 급박한 느낌의 1주제를, 부드러운 경과부를 살짝 거친 다음에 오보에가 2주제를 연주합니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긴장감이 넘치는 악장입니다. 마지막 코다에서는 음악을 길게 끌면서 무엇인가 미련을 남기는 듯이 모습을 보입니다. 베토벤이 확고하게 마침표를 찍는 것과는 매우 다른 브람스적인 개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악장은 안단테 소스테누토(Andante sostenuto, 느리게 음악을 끌면서). 애상감이 깔린 온화한 성격의 악장입니다. 바이올린과 파곳이 연주하는 쓸쓸한 주제, 이어서 오보에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가 인상적입니다. 1악장에서의 긴장감과는 달리, 차분하고 서정적인 악장입니다. 마지막 코다에서 길게 끄는 독주 바이올린의 소리도 역시 브람스적입니다.


3악장은 운 포코 알레그레토 그라치오소(Un poco allegretto grazioso, 조금 빠르고 우아하게). 교향곡의 3악장은 대개 우아한 미뉴에트 풍이거나 익살이 곁들여진 스케르초풍이지만 브람스는 그것이 자신과 맞지 않았던 듯합니다. 로망스 풍의 3악장을 구사합니다. 첼로의 피치카토가 은근히 깔리는 가운데 호른과 클라리넷이 노래합니다. 중반부에 접어들어 분위기가 전환되면서 현악기와 관악기가 긴장감 넘치는 연주를 잠시 주고받습니다. 그렇게 약간 격렬해졌다가 클라리넷이 첫머리에서 연주했던 선율을 다시 선보이고 바이올린이 그것을 이어받습니다.



아다지오(Adagio)로 시작하는 4악장에서 다시 비장해집니다. 1악장보다 훨씬 긴 서주가 등장합니다. 저음의 현악기들이 연주되면서 팀파니가 역시 저음으로 뒤따릅니다. 이어서 현의 피치카토가 등장했다가 다시 저음의 현악기와 팀파니, 그리고 다시 현악기들의 피치카토로 이어집니다. 서주의 중간부에 들어서면 바이올린의 트레몰로를 밑에 깔고 호른이 환한 노래를 부릅니다. 아, 인상적인 선율입니다. 앞서 연주됐던 어두운 분위기를 단숨에 몰아내는, 환한 햇살의 느낌입니다. 이 지점부터 관악기들의 활약이 두드러집니다. 광포한 포효가 아니라 부드럽고 서정적인 관악기의 향연이라고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교향곡 1번>의 백미가 마침내 등장합니다. 바이올린이 주도하는 첫번째 주제 선율입니다.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마지막 악장을 연상시키지요. 그래서 이 곡에는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라는 평가가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지휘자 한스 폰 뷜로(1830~1894)가 찬사의 뜻으로 했던 말인데, 브람스는 그 말을 마뜩찮게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그 첫번째 주제가 매우 빠르고 격렬해졌다가 플룻과 호른이 분위기를 잠시 진정시키는 사이에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두번째 주제로 넘어갑니다. 물론 두번째 주제도 점점 격렬해집니다. 그러다가 인상적인 첫번째 주제선율이 다시 등장하는 장면, 거기서부터가 4악장의 이른바 ‘재현부’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설명하겠습니다. 음악적인 설명에 공연히 스트레스 받지 마시길. 음악은 자고로 가슴으로 듣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슴을 열 수만 있다면 음악은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p.s. 1. 리카르도 샤이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음반(Decca)은 지금 매장에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게반트하우스의 중후함, 그리고 샤이 특유의 유려함이나 속도감은 언뜻 부조화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상반된 두 측면의 결합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빚어내고 있는 음반입니다.
2. 귄터 반트가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명연(Sony)도 현재 품절 상태로 파악됩니다. 추천음반 목록에 올릴 수 없어 아쉽습니다.

카라얀(Herbert von Karajan)ㆍ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64년/DG

카라얀은 이 곡을 생전에 여섯 차례 녹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0대, 또 말년에 접어든 1980년대의 연주도 호평을 받는다. 오늘은 1964년도 녹음을 권한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케일과 정교함, 웅혼함을 추구하는 카라얀의 스타일이 조화를 이룬 호연이다. 브람스 특유의 두툼한 음악적 텍스추어를 정교하면서도 매끈하게 뽑아낸다. 템포는 중용적이다. 어떤 특정한 개성을 보여주는 연주라기보다는 ‘무난한 브람스’를 들려준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브람스의 교향곡 1번 음반을 처음으로 구입하려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ㆍ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1990년/DG

아바도는 카라얀 이후에 베를린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이 음반의 녹음시기가 그 이전인지 이후인지를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분명한 것은 아바도가 카라얀에 비해 훨씬 현대적인 사운드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특히 브람스의 음악적 텍스추어를 눈에 보이듯이 명료하게 뽑아내는 솜씨가 탁월하다. 성악에 비유하자면 딕션이 정확한 연주라고 비유할 수도 있겠다. 강약의 변화도 훨씬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아바도는 오히려 브람스 교향곡 2번 녹음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지만, 1번도 역시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음반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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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학수

1961년 강원도 묵호에서 태어났다.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에 소위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서양음악을 처음 접했다. 청년시절에는 음악을 멀리 한 적도 있다. 서양음악의 쳇바퀴가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구 부르주아 예술에 탐닉한다는 주변의 빈정거림도 한몫을 했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 음악에 대한 불필요한 부담을 다소나마 털어버렸고, 클래식은 물론이고 재즈에도 한동안 빠졌다. 하지만 몸도 마음도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재즈에 대한 애호는 점차 사라졌다. 특히 좋아하는 장르는 대편성의 관현악이거나 피아노 독주다. 약간 극과 극의 취향이다. 경향신문에서 문화부장을 두차례 지냈고, 지금은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와 음악담당 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2013년 2월 철학적 클래식 읽기의 세계로 초대하는 <아다지오 소스테누토>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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