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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내린 산기슭, 웹툰계에 힐링을 불러오다
느림과 편안함이 장점인 웹툰, 손장원의 달이 내린 산기슭 웹툰으로 힐링하고 싶다면, 일독을
이러한 데서 다른 치유물과 구별되는『달이 내린 산기슭』의 특이성이 드러난다. 『달이 내린 산기슭』은 느린 전개를 보여주진 않지만(당장 앞에서 소개한 시놉시스도 실제 만화로 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다), 그래도 내용이 제법 밀도 있고 굵직굵직하다. 또한, 만화 소재 자체도 지질학과 고생물학이고, 지층 정령과 지질학자가 주인공이며 여러 정령과 산신령이 조연이다 보니 지질학과 고생물학에 관련된 전문용어가 마구 튀어나온다.
시작하는 말에서 웹툰이 메이저리그로, 출판만화는 마이너리그로 밀려났다고 했다. 지금부터 소개할 웹툰은 이 쪽도 되고 저 쪽도 되는 조금 특이한 경우다. 손장원의 『달이 내린 산기슭』은 원래 학산문화사의 월간 만화 잡지 『부킹』에서 2011년 8월호부터 연재하던 만화다. 이후 단행본 1권이 나온 후, 『부킹』이 동사의 월간지 『찬스』와 통폐합하여 『찬스 플러스』로 재탄생 함에 따라 해당 잡지에서도 잠시 연재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연재가 중단되었다.
분명 지난 호 지면에는 ‘계속’이라는 두 자가 박혀 있었음에도 다음 달이 되자 갑자기 완결되었다며 연재가 중단되는 상황에 상당수 독자가 크게 당황했다. 물론 가장 당황했던 것은 손장원 작가 본인이었으리라. 결국, 그는 지면 연재를 포기하고, 기존 연재 분량을 인터넷 환경에 맞춰 컷을 재배치하고 채색하여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를 통해 다시 연재하기로 한다. 데뷔작 『성결정 알바트로스』의 연재가 조기 종료되고, 이후 전개를 블로그를 개설해서 독자들에게 설명해야 했던 일본의 만화가 와카키 타미키가 떠오르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대로 차기작을 준비해야 했던 와카키와는 달리, 약 한 달 뒤인 5월 다음 만화속세상을 통해 『달이 내린 산기슭』의 웹툰으로써의 정식 연재가 결정된다. 이렇게 해서, 『달이 내린 산기슭』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다시 정식 연재작의 위치를 회복한다.
강원도 영월의 어느 산 속 도로를 지나던 지질학자 오원경은, 갑작스레 쏟아지는 여우비 속에서 벼락이 인근의 절벽에 떨어져 절벽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그 난리로 깨어난 영월 일대의 지층인 흥월리층의 정령 ‘월리’는 원경과 마주한다. 월리는 모종의 이유로 자신의 지층 속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원경은 그녀가 낙담할 거라 생각했지만, 정작 월리는 의연하다. 오히려 오랫동안 한 동네에 머물렀더니 질렸던 참이라며 원경을 가이드 삼아 세상 나들이를 나서는 월리. 이것이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설정이다.
요즘 힐링이라는 게 유행이라고 한다. 방송도 힐링, 여행지도 힐링, 인테리어도, 수상쩍은 음료까지 힐링이라는 말을 달고 다니는 것이 딱 10년 전 웰빙 열풍을 떠올리게 만든다. 근데 힐링, 그러니까 ‘치유물’이라 불리는 장르는 사실 일본 만화계에서 비교적 오래 전부터 이야기되던 장르다. 주로 평범한 일상을 다루면서, 느긋한 템포와 평화로운 분위기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장르를 가리키는데,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랑!』이 대표적인 치유물로 거론된다. 치유물의 핵심 키워드는 ‘느림’과 ‘편안함’이다. 특유의 느슨한 전개는 독자를 편안하게 만든다. 내용의 전개는 독자들에게 다음 화를 기대하게 하는 ‘중독성 같은’ 기대감이나 극적이고 반전을 거듭하는 대신에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포근함을 안겨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러한 데서 다른 치유물과 구별되는『달이 내린 산기슭』의 특이성이 드러난다. 『달이 내린 산기슭』은 느린 전개를 보여주진 않지만(당장 앞에서 소개한 시놉시스도 실제 만화로 보지 않으면 이해가 안 될 정도다), 그래도 내용이 제법 밀도 있고 굵직굵직하다. 만화 소재 자체도 지질학과 고생물학이고, 지층 정령과 지질학자가 주인공이며 여러 정령과 산신령이 조연이다 보니 지질학과 고생물학에 관련된 전문용어가 마구 튀어나온다. 이러한 부분들은 독자에게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각주 한 줄로 설명하기 어려운 전문용어는 "알 필요 없는 어려운 말."이라며 적당히 끊어주고 작은 실소를 안겨주며 부담감도 덜어준다. 서울대에서 고생물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작가의 지식(그리고 대학생이라면 다들 있는, 머리 싸매야 하는 학과 공부에 대한 원념)이 있기에 가능한 센스다.
그림은 상당한 수준이다. 특히 풍부한 표정묘사가 특징. 등장인물 각각의 특색 있는 눈빛의 표현도 꼼꼼히 꼽아봐야 할 요소이며, 특히 월리의 돌비늘을 보듯이 반짝이는 눈빛은, 한 번씩 클로즈 업이라도 되면 경탄이 나올 정도이다(흥월리층의 주 구성요소인, 유리의 원료로 쓰이는 돌로마이트의 광택을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다만 산이 주 배경이 되는 만화임에도, 배경에 대한 묘사가 수적으로 적은 것은 아쉽다.
아까운 점이라면, 작중에서도 몇 번 언급되지만, 아마 월리의 여행이 그리 길지 못하리라는 점이다. 작가는 이미 『달이 내린 산기슭』이 단행본 4권 정도로 끝나리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단행본 1권의 내용이 웹툰으로는 총 10화 분량이 되었으니 약 40주 정도면 끝나리라는 의미이다. 빠르면 9개월 정도, 길어도 1년을 넘기지 못한다. 한 철(3개월) 연재하는 웹툰도 종종 있으니 이 정도 연재 기간은 그리 드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역시 아쉽다.
언제나 끝이란 아쉬운 법이다. 특히, 이런 이야기는 끝나면 끝나는 대로 떠나 보내기는 쉬워도, 그 뒤에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남는다. 그래도, 헤어지는 것이 두려워 만남을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 만남에는 가치가 있고, 그 가치만으로 만남에 의미가 있다. 이 만화가 그러한 이야기이며, 『달이 내린 산기슭』 자체가 그러할 것이다.
90년대 서울 출신.
길지 않은 세월 속에 이야기를 모으고 즐기는데 낙을 두고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지런히 설명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 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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