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이야기에 대한 허기 - <인 더 하우스>

언제나 우리가 가장 굶주리는 건 이야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퇴폐적이고 비윤리적인 고교생의 글을 받아낸 선생은, 스승으로서의 책무의식을 느끼고 학생에게 “좀 더 잘 써보라”고 한다. 문장 지도까지 한다. 학생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도 궁금해 한다. 이 학생의 관능적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4주 전에 이 칼럼에도 두 가지 원칙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거짓말이었다. 이 칼럼은 원칙이 없다. 불과 한 달 전의 공언을 이렇게 뒤바꿀 수 있느냐고 따진다면,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앞으로도 종종 경험하게 될 테니, 당황하지 마시길.

 

그나저나 이 칼럼을 읽는다는 한 출판계 지인이 물었다. 
 
“최작가님. 매번 쓰실 때마다 영화 고르시느라 고생이 많죠?” 
 
그럭저럭 “네. 뭐…”라고 얼버무렸는데, 사실 전혀 고생하지 않는다. 나는 그저 내가 본 영화를 쓴다. 그게 다다. ‘아니, 이게 뭐냐!’고 따진다면, 죄송합니다. 역시,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 본 영화는 <인 더 하우스>입니다. 당연히, 이번 주 칼럼 소재는 <인 더 하우스>입니다.  

 

자, 일단은 내가 본 영화를 쓴다고 쳐도, 여기에 간과된 슬픈 현실이 있다. 그건 바로 내가 외톨이라는 부인하고 싶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남들에 비해 영화를 꽤 많이 본다. 이번 주에만 세편을 봤는데, 그 중 극장에서 본 영화가 두 편이었다. <월드워 Z>와 <인 더 하우스>인데, 가급적이면 개봉 영화를 쓰는 게 독자에게 낫겠다 싶어 나름 고민을 한 후에 결정했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고심을 하는 게 맞는 건가? ‘아니, 뭐 이렇게 오락가락하느냐!’고 따진다면, 역시 죄송합니다. 네. 저는 또 이런 사람입니다. 여하튼 <월드워 Z>도 나쁘진 않았는데, 소설가가 “이야. 좀비들이 상당히 빠르더라고. 예쁜 좀비도 있던데! 어디 사는가?”하는 건 좀 가벼워 보인다. 그렇게 썼다간, 금세 여기저기서 청탁이 끊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런 이유로 <인 더 하우스>가 이 칼럼의 소재로 선정되었다.

 

그럼 본격적인 영화 이야기 시작. 일단, <인 더 하우스>에는 엉큼한 고교생이 등장한다. 이것만으로 이 영화는 매력을 발산한다. 우리는 손 안대고 코푸는 심정으로 이 엉큼한 고교생이 펼치는 상상과 비밀들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이 친구는 글도 쓴다. 엉큼한 고교생이니까, 당연히 엉큼한 글을 쓴다. 말하자면, 명작의 요건을 갖춘 셈이다. 그리고 그 글에는 친구의 엄마가 등장한다. ‘어어, 이거 막장 드라마인가?’ 하고 염려했다면, 너무 걱정 마시길. 영화는 상당히 문학적이다.

 

01.jpg

 

친구의 엄마를 탐하고 싶어 하는 이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매주 한 편의 에세이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 욕망의 결과물을 문학선생에게 작문과제로 제출한다. 이 퇴폐적이고 비윤리적인 고교생의 글을 받아낸 선생은, 스승으로서의 책무의식을 느끼고 학생에게 “좀 더 잘 써보라”고 한다. 문장 지도까지 한다. 학생에게 문학적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선생도 궁금해 한다. 이 학생의 관능적 서사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아니나 다를까, 학생은 매주 친구 엄마와 빚어내는 야릇한 관계가 한 단계씩 상승하며 호기심이 폭발하려는 지점에 이 문장을 쓴다.

 

‘다음 주에 계속’. 아아, 선생은 애가 타고, 나도 애가 탄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을 띠고 있다. ‘학생의 과제를 받고 선생이 지도를 하는 영화의 전체 이야기’와, ‘학생의 과제, 즉 영화제목처럼 친구의 <집 안에서 - 인 더 하우스> 일어나는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차츰 소년의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 어느덧 소년의 글 속에 선생이 등장하고, 선생의 부인이 등장하고, 이야기의 무대는 점차 선생의 실생활로까지 확대돼 선생은 물론, 그 부인까지도 소년이 설치한 이야기의 덫에 걸려버린다. 선생이 이번 주에 학생에게 한 말과 행동은 학생의 다음 주 글에 고스란히 이식돼있다.

 

이때부터 선생이 유지해왔던 관찰자로서의 심리선은 무너지고 만다. 그러나 선생에게는 학생을 막지 못하는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이 글을 쓰는 나는 물론, 어쩌면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가지고 있을지 모를 약점이다. 그건 바로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생은 자신이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고, 이로 인해 자신의 일상 귀퉁이가 으스러져가고 있지만, 이야기를 훼손할 수 없다. 차라리 자신의 일상이 훼손되는 길을 택한다. 물론, 이것은 나의 해석이지만, 영화는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것이 이야기밖에 없음을 선언한다.

 

02.jpg

 

마지막 장면에서 우여곡절 끝에 벤치에 앉은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맞은편에는 빌라가 있다. 그 빌라의 유리창 안에서 사람들은 싸움을 하고, 술을 마시고, 대화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이 둘은 그들을 관찰하며,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 저 여자 둘은 뭐하는 걸까?
 - 싸우는 것 같은데요.
 - 음. 그래. 저 둘은 자매라서 유산상속 문제로 다투는 중이야.
 - 아니에요. 저 둘은 레즈비언 커플이라 사랑싸움을 하는 거라고요.
 - 언니가 유산을 양보 안하나봐.
 - 왼쪽 여자가 바람을 핀 거라니까요. 
 
해는 지고, 빌라 안의 창은 켜지고, 일상이 훼손된 이 둘은 벤치에 앉아서, 계속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는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학생도, 선생도, 어쩌면 나와 당신도,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굶주려왔고 가장 원해왔던 것이 바로 ‘이야기’라는 듯 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2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

오늘의 책

산업의 흐름으로 반도체 읽기!

『현명한 반도체 투자』 우황제 저자의 신간. 반도체 산업 전문가이며 실전 투자가인 저자의 풍부한 산업 지식을 담아냈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반도체를 각 산업들의 흐름 속에서 읽어낸다. 성공적인 투자를 위한 산업별 분석과 기업의 투자 포인트로 기회를 만들어 보자.

가장 알맞은 시절에 전하는 행복 안부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 사람, 작가 김신지의 에세이. 지금 이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작은 기쁨들, ‘제철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다. 1년을 24절기에 맞추며 눈앞의 행복을 마주해보자. 그리고 행복의 순간을 하나씩 늘려보자. 제철의 모습을 놓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행복은 우리 곁에 머무를 것이다.

2024년 런던국제도서전 화제작

실존하는 편지 가게 ‘글월’을 배경으로 한 힐링 소설. 사기를 당한 언니 때문에 꿈을 포기한 주인공. 편지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며, 모르는 이와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 서비스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성장해나간다. 진실한 마음으로 쓴 편지가 주는 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소설.

나를 지키는 건 결국 나 자신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물질적 부나 명예는 두 번째다. 첫째는 나 자신. 불확실한 세상에서 심리학은 나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무기다. 요즘 대세 심리학자 신고은이 돈, 일, 관계, 사랑에서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을 위해 따뜻한 책 한 권을 펴냈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