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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대왕 안철수를 닮은 담백한 비빔밥

나물이 밥과 합쳐 훌륭한 건강요리의 강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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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세계에 빠져들수록 만나는 이를 먹는 음식에 빗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강요리 나물과 닮았다. 아무리 강한 향의 참기름과 질 좋은 천일염,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간을 해도 본성이 튀어나오는 나물. 나물은 특유의 질감과 식감, 담백한 맛으로 혀를 감동시킨다. 가만히 있어도 겸양지덕이 뿜어 나오는 대인과 같은 음식이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강요리 나물과 닮았다.
나물은 특유의 질감과 식감, 담백한 맛으로 혀를 감동시킨다.
가만히 있어도 겸양지덕이 뿜어 나오는 대인과 같다.



가까운 지인 ‘영희’ 언니는 평생 ‘철수’ 때문에 고생을 했다. 나이도 마흔을 훌쩍 넘기고, 애도 셋이나 뒀는데 아직까지 그는 “철수는 어디 있냐”는 소리를 듣고 있다. 내가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영희 언니 이야기가 아니다. 철수 이야기다. 요즘 철수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신문에 도배질한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작은 기억이 떠올랐다.

몇 년 전, 안철수 교수를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그는 기업의 CEO였고 나는 사진기자였다. 처음 만난 그는 ‘초절정 범생’이었고 이마에는 ‘진지’라는 단어가 콕 박혀 있었다. 그를 찍은 사진은 시종일관 재미없고 지루했다. 나는 그의 내면에 숨겨진 다른 풍경을 담고 싶었다.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오빠……, 한번 웃어봐! 제발!”




순간 안 교수는 목젖을 내보이며 박장대소했다. 자신에게 ‘오빠’라고 부른 기자는 처음이라면서. 사진엔 소년처럼 싱그럽게 웃는 안 교수가 담겼다. 그 사람의 품성은 순박한 그 웃음에 모두 담겨 있었다. 책상에 엎드리라는 둥 누우라는 둥 쪼그리고 앉으라는 둥 갖가지 어려운 포즈를 요구했지만 그는 성실하게 응해 주었다. 과욕에 정신줄 놓은 기자가 안쓰러웠으리라!

음식 세계에 빠져들수록 만나는 이를 먹는 음식에 빗대어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안 교수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건강요리 나물과 닮았다. 아무리 강한 향의 참기름과 질 좋은 천일염, 간장이나 고추장으로 간을 해도 본성이 튀어나오는 나물. 나물은 특유의 질감과 식감, 담백한 맛으로 혀를 감동시킨다. 가만히 있어도 겸양지덕이 뿜어 나오는 대인과 같은 음식이다.

먹을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옛날, 식탁을 지켜준 음식이 나물이다. 선조들은 봄에 채취한 나물을 겨울까지 말려두었다 삶아 무쳐 먹었다. 나물은 보풀보풀 덩치가 커져 마치 쇠고기 같은 맛을 낸다. 나물이 밥과 합쳐지면 훌륭한 건강요리 강자가 된다. 바로 비빔밥이다.

비빔밥은 만들기가 쉬워 누구나 할 수 있는 요리라고 생각하지만 깊은 맛을 내기는 어렵다. 대표선수는 전주비빔밥이다. 요즘은 돌솥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예전에는 유기그릇을 썼다. 밥 지을 때 양지머리 육수를 넣었다고 한다.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지양하는 사람이라면 해주비빔밥, 통영비빔밥, 안동헛제삿밥, 평양비빔밥 등도 손으로 꼽는다.

몇 년 전, 나주비빔밥도 복원되었다. 나주비빔밥은 독특하게 ‘들’이 아니라 ‘장터’에서 생겼다. 일제 강점기 교통의 요충지였던 나주에는 시간에 쫓기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한 그릇에 여러 가지 반찬을 한꺼번에 넣고 뱅뱅 돌려 나오는 밥 요리가 인기였다. 일명 ‘뱅뱅돌이비빔밥’이다. 이 나주비빔밥은 고깃국물 위에 뜨는 기름과 고춧가루로 비빈 것이 특징이었다.

화제의 인물 안철수 교수처럼 담백한 이와 남산자락 목멱산방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만화가 차화섭 씨다. 이름만 보면 영락없이 사내지만 만화 주인공처럼 미소가 재미있는 여성이다. 풀빵닷컴에 <더블피의 뚝딱쿠킹>을 연재하고 있다. 목멱산방의 육회비빔밥은 여섯 가지 나물과 아기 주먹만 한 육회로 구성되어 있다. 한꺼번에 비벼도 각자의 색깔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슴슴하고 칼칼하고 톡톡 튀고 무던한 나물들의 주장이 한 그릇에 담겨 있다. 제각각 다른 색깔이 빛을 발하는 세상이 천국이다. 음식도 접시 안에 다양한 식재료가 제 맛을 내면서 조화를 이룰 때 “훌륭하다” 칭찬을 듣는다.




“맛있네요.”

차씨의 칭찬이 이어졌다. 그의 혀는 건강식에 탁월한 감별능력이 있었다. 그의 만화에도 줄곧 텃밭을 가꾸며 제철채소와 건강식을 먹는 이의 요리법이 가득 나온다. 서른네 살의 아낙네는 네 살 아래 남편과 함께 괴산으로 귀농했다. 헬렌 니어링처럼 소박한 밥상을 꾸릴 요량이다.

두 사람이 만난 사연도 재미있다.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촛불집회 때 눈이 맞았다. 수많은 인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밀리다 보니 어깨도 안아주고, 놓치지 않기 위해 손도 잡다가 애정이 싹튼 것이다. 사람과 음식, 음식과 사람은 나비효과처럼 한 줄로 이어져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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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있는 식탁 박미향 저 | 글담
이 책은 누구보다 많은 음식을 맛보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어본 ‘맛 기자’의 특별한 에세이다. 『인생이 있는 식탁』이라는 제목은 이 책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오랜 시간 수많은 맛집을 순례하며 다양한 음식을 맛본 저자는 편안한 친구와 한바탕 수다를 떨듯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눈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야기 속에는 맛있는 음식들만큼이나 다양한 저자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한다. 때로는 그들과의 추억담을 풀어놓으며 음식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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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있다 내 인생 ]
[ 바나나 키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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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미향

대학교에서 사학과 사진학을 전공했다. 사진기자로 기자생활을 시작했지만 현재 한겨레신문사에서 ‘사진도 찍는 음식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취하고 싶다』(2005년), 『박미향 기자 행복한 맛집을 인터뷰하다』(2007년), 『와인집을 가다』(2009년) 3권의 책을 어쩌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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