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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사랑이라 말하고, 남자는 섹스라 말한다 배정원 저 | 한언 |
'섹스'에 대해 아직도 부끄러워하고 쉬쉬하는 사람들에게, 또 아직도 테크닉이나 감각에만 집착할 뿐 정작 성에 대한 진정한 고민이나 인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섹스'에 대해 얼마나 당당하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의 다른 성심리와 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서로를 더없이 신뢰하고 지지하는 진정한 인간 관계를 향한 사랑의 시작과 유지방법임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비뚤어져 있는 성문화를 바로 알고, 섹스와 사랑의 의미 또한 제대로 알도록 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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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이 주는 위안
사랑하는 이와의 마음과 몸을 다한 섹스를 통해 우리는 더할 수 없이 마음의 위안을 받는다. 그것을 필자는 ‘살이 주는 위안’이라고 부른다. ‘살이 주는 위안’이라니?
우리가 외롭고 상처받고 지쳤을 때를 생각해 보자. 그런 기분일 때 어떤 자세로 있는지? 내가 상처받았을 때, 마음이 힘들 때, 누군가 나를 위로하는 사람이 있어 나를 안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려 주기만 해도 힘을 얻는다. 그러나 그럴 사람조차 없을 때,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어두컴컴한 방에서 침대나 벽에 기대어 무릎을 끌어안고,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있다. 그 자세를 혹자는 우리가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의 자세라고도 하지만, 심리적으로 피부끼리 많이 접촉할수록 위안을 더 받기 때문이라는 게 옳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놀라거나 슬프거나 하면 얼굴을 싸안고 울기도 한다.
결국 스스로 나를 안아 위안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본능적으로 마음의 위안을 받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무릎을 감싸 스스로를 위안한다면 섹스가 주는 위안이란 얼마만 한 크기일 것인가? 나도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 사랑해서 온 몸을 부비기도 하고, 입 맞추기도 하고, 쓰다듬기도 하며, 포옹하기도 하는 섹스의 위안이란 참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는 나를 사랑하다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그런 위로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가 아주 소중한 존재라는 느낌으로 행복해진다. 그것을 우리는 섹스의 치유효과라고도 부른다. 이 살이 주는 위안은 실로 강력하여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고, 내가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벅찬 느낌과도 같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이런 강력한 느낌을 뿌리칠 수 있겠는가.
헛헛한 나의 마음을 채워줘 필자는 요리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미식美食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요리에 관한 책을 즐겨 읽는 진짜 이유는 음식과 연관된 그 나라의 문화사를 살펴보는 재미가 있고 또 문화와 성, 식욕과 성욕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기본적인 본능은 식욕이 제일이요, 그 다음이 성욕이라 한다. 이는 모든 생물들이 가진 본능이다. 식욕이 내 몸을 살리는 중요한 본능이라면, 성욕은 나의 후손을 남기는 본능이다. 하지만 때로 성욕은 식욕을 능가한다. 연어가 바로 그렇다. 죽더라도 씨는 남기고자 하는 생물로서의 종족보존 욕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대의 인간은 이와는 조금 달라 종족보존이 아니라 쾌락 때문에 식욕을 포기하기도 한다.
사람에게 식욕과 성욕을 관장하는 신경부위는 물리적으로도 아주 가까이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깊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인지 식욕과 성욕은 서로 보완적이기까지 하다. 그래서 어떤 다이어트 약은 식욕뿐 아니라 성욕까지 떨어뜨리기도 한다. 오래 전 필리핀에서 기백명이 넘는 기혼녀를 농락한 바람둥이가 잡혔는데, 그 바람둥이가 상대를 물색하는 기준이 바로 식욕이었다고 한다. 백화점의 푸드 코트나 뷔페 음식점에서 앞에 음식을 잔뜩 늘어놓고, 허겁지겁 먹는 식탐 많은 여자들이 그의 목표였다는 것이다. 그 여자들은 공통적으로 남편의 사랑이 부족해 마음이 무척 쓸쓸한 사람들이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로웠던 적이 있다(남자들보다 여자들이 정서적 허기에 민감하다).
흔히 마음이 비면 실제로 배가 고프다고 하니, 그래서 마음이 헛헛하고 우울할 때 이것저것 먹어 마음이 아니라 배를 채우려고 하는 모양이다. 또 우리가 너무 많이 먹어 포만감을 느낄 때는 성욕이 안 생기는 것을 보면 적당한 허기가 성욕에 도움이 될 것도 같다. 내가, 혹은 사랑하는 사람이 커다란 그릇에 허겁지겁 비빔밥이라도 비벼 먹고 있다면 살을 찌우는 비빔밤 대신 부족한 사랑을 한껏 채우는 일이 더 필요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