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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홍영녀,황안나 공저 |
우리는 왜 그렇게 자식 노릇에 서툴렀을까. '엄마'를 소재로 각종 출판물과 공연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어느 것 하나 식상하다거나 지겹다거나 하지 않는 걸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주는 각별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역시 남다른 '엄마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엄마, 할머니, 외할머니의 이야기인 듯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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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산을 좋아하셨다. 다리가 불편해지기 전에는 해마다 이모님과 함께 봄에는 산나물을 뜯고, 가을에는 도토리를 주우러 다니셨다. 하루 종일 산을 헤매며 거둔 산나물을 풀어놓으면 집 안 가득 싱그러운 산나물 향기가 퍼지곤 했다. 특히 도토리 줍는 것을 좋아하셔서 가을이면 도토리를 몇 가마씩 주워 오셨다.
포천 일동에는 내 손아래 남동생의 처가가 있는데, 사돈댁 바로 뒷산에는 밤나무와 도토리나무가 무척 많이 자란다. 그래서 해마다 가을이면 사돈댁에서 도토리 주워 가라는 연락을 해온다. 어머니가 다치시기 전해 가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과 함께 사돈댁 뒷산으로 도토리를 주우러 갔었다. 거동을 잘 못하시니 동생과 양쪽에서 어머니를 부축해 도토리나무 아래 앉혀드렸다. 자리를 잡자마자 어머니는 이리저리 기어 다니시며 도토리를 주우셨다. 그때 어머니 표정에서는 생기가 묻어났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다가 동생과 나는 눈짓으로 작은 꾀를 공모했다. 도토리를 주워다가 어머니 둘레에 몰래 뿌려놓고 낙엽으로 덮어두는 것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어머니는 낙엽 속에서 도토리들을 찾아내시며
“어쩌면 도토리가 이렇게 많이 떨어졌냐. 올핸 더 많이 열린 것 같다.”며 마냥 기뻐하셨다. 그 모습에 동생과 나는 서로 마주보며 그저 웃을 뿐이었다. 두 시간 동안 셋이서 주운 도토리를 모으니 두 말이 넘었다. 게다가 사돈댁에서 도토리를 한 말쯤 더 주셨다. 이제 그 도토리들을 가루로 만들어 맛있는 묵을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그런데 도토리가루 만드는 일이 보통 번거로운 것이 아니다. 우선 방앗간에 가서 도토리를 갈아다가, 가루를 자루에 담고 물을 부어가며 치대서 앙금 물을 낸다. 다 우러나면 자루 속 찌꺼기는 버리고 앙금 물은 가라앉혔다가 윗물은 따라 내고 앙금만 햇볕에 말린다. 그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너무 힘들어 만들 엄두가 안 나는데도, 어머니는 해마다 도토리가루를 내서 육남매에게 나눠주셨다.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도토리 가루로 묵을 쑤어 먹다가 다른 도토리 가루를 써보면 영 맛이 다르다. 어머니가 만든 도토리묵은 채를 쳐놓으면 윤기가 나고 하늘하늘한 게 탄력이 있었다.
이렇게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것은 도토리가루뿐만이 아니었다. 겉보리를 사다가 직접 길러서 엿기름을 만들어주기도 하셨다. 어머니가 주신 엿기름은 밥알이 순식간에 잘 삭았다. 그것으로 식혜를 만들어놓으면, 맛을 보는 사람들마다 어쩌면 식혜를 이렇게 잘 만드느냐고 난리였다.
돌이켜보니 평생을 그렇게 어머니 그늘에서 살았다. 어머니가 계셔서 장을 비롯해 손이 많이 가는 귀한 음식들을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맛볼 수 있었고, 그 손맛에 기대어 지금껏 살아올 힘을 얻었던 듯싶다. 도토리가 떨어질 무렵이면, 지난 시절 어머니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어찌 가을을 보낼까 벌써부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