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1886년 3월-1888년 2월
|
「식당의 실내」, 캔버스에 유채, 45.5?56.5cm,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국립미술관, 1887 | |
575 1887년 여름
사랑하는 친구(테오),
편지와 동봉한 것, 모두 고마워. 성공한다고 해도 그림을 그리는 데 든 돈을 되찾지는 못하리라고 생각하면 슬퍼진다. “가족들은 아주 잘 지내지만 얼굴을 보면 슬퍼진다”는 네 편지에 가슴이 아팠어. 12년 전에는 가족이 언제나 번영하고 잘 지내도록 맹세하기도 했어. 네가 결혼한다면 어머니께서 무척 기뻐하시겠지. 너의 건강을 위해서도, 일을 위해서도 독신으로 지내지 않는 쪽이 좋아. 나는 결혼하고 싶은 생각도 자식을 갖고 싶은 생각도 안 하게 되었어. 서른다섯에 이 꼴로 있는 것이 때로는 우울해. 그래서 그림과의 악연이 지겨워져.
리슈팽Richpin이 어디선가 이런 말을 했어. “예술에 대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을 잃게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옳은 말이겠지만, 그와 반대로 진정한 애정은 예술에 대한 의욕을 없애는 법이야.
벌써 나이를 먹어 쇠약해져버린 느낌도 들지만, 그래도 아직 그림에 대한 열광을 버리고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단다. 성공하려면 야심이 필요해. 하지만 야심 따위는 바보 같은 것이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무엇보다 너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다. 그리고 장차 그것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고. 너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내가 그린 것을 버젓이 남에게 보일 수 있도록 계속 정진할 작정이야. 그리고 인간으로서도 참을 수 없는 숱한 환쟁이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남프랑스 어딘가에 틀어박히고 싶어.
|
「몽마르트르 언덕」, 목탄, 초크, 31.2?47.8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6 | |
이것만은 너도 안심해도 좋을 거야. 즉 나는 더 이상 탕부랭Tambourin을 위해 어떤 작업도 하지 않겠어.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리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물론 전혀 반대할 생각이 없어. 세가토리는 전혀 다른 문제야. 나는 아직도 그녀에게 애착을 느끼고 있고, 그녀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해. 그러나 지금 그녀는 어려운 상황에 있어. 자기 상점에서 자유롭게 행동할 처지도 아니고, 주인도 아닌 데다 병이 들어 몹시 좋지 않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는 중절수술을 받은 것 같아(아니면 상상 임신). 여하튼 그녀를 비난할 생각은 없어.
두 달 정도 지나면 그녀는 회복될 거야. 그때는 아마 그녀도 내가 자기를 괴롭히지 않은 것에 감사할 거야. 그래도 건강해지고 냉정해져서 내 것을 돌려주려 하지 않거나, 나에게 손해를 끼친다면 그녀를 돌보지 않을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여하튼 나는 그녀를 잘 알기 때문에, 지금도 그녀를 믿고 있어. 게다가 그녀가 상점을 잘 유지해갈 수 있다면, 상업적 관점에서 나는 그녀에게 사기를 당하는 쪽이 아니라 사기 치는 쪽을 선택한 것을 비난하지 않겠어. 그녀가 장사를 잘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 다리를 조금 잡아당긴다고 해도 그건 좋아. 그녀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사실 내 마음까지 짓밟지는 않았어. 만일 그녀가 사람들이 말하듯이 못된 여자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말이야.
어제 탕기 영감을 만났어. 그는 최근에 내가 그린 그림을 상점의 창에 걸었지. 네가 출발하고 난 뒤 나는 4점을 그렸고, 지금은 큰 것을 그리고 있단다. 이처럼 크고 긴 그림은 잘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어. 그러나 사람들은 거기에 맑은 공기와 쾌활함이 있음을 알게 될 거야. 그래서 그 모두는 식당이나 별장의 장식화가 되겠지. 그리고 네가 깊이 사랑하여 결혼을 한다면, 다른 화상들처럼 시골 별장을 가질 수도 있어. 잘 살려면 돈도 많이 들지. 그러나 더 튼튼하게 확보하고, 어렵게 살기보다 유복하게 세월을 보내는 쪽이 성공할 거야. 자살하기보다는 유쾌하게 사는 편이 좋아. 집안의 모든 사람에게 안부를.
너의 빈센트
|
「일본 여인 오이란」, 캔버스에 유채, 105?60.5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7 | |
해설
1886년 3월, 빈센트는 파리로 향한다. 10년 만에 찾은 파리는 그에게 충격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밀레와 들라크루아, 도미에의 시대는 가고 새로운 예술이 등장했으며, 그 선두주자는 인상주의였다. 파리에 머무르며 빈센트는 툴루즈 로트레크, 에밀 베르나르 등과 친분을 쌓고, 일본 판화, 인상주의 기법 등을 응용하며 점차 변화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