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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트베르펜(1885년 11월-1886년 2월)

안트베르펜의 인상을 좀더 전하고 싶어. 오늘 아침, 빗속을 오랫동안 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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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한 목적은 세관사무소에서 내 짐을 찾기 위해서였어.

안트베르펜
1885년 11월-1886년 2월


「이삭 줍는 농촌 여인의 뒷모습」, 초크, 52.6?43.5cm,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국립미술관, 1885

548 1885년 11월 28일 토요일 밤

사랑하는 테오,

안트베르펜의 인상을 좀더 전하고 싶어. 오늘 아침, 빗속을 오랫동안 걸었어. 외출한 목적은 세관 사무소에서 내 짐을 찾기 위해서였어. 부두에 있는 여러 창고와 격납고는 정말 대단하더구나.

나는 몇 번이나 부두와 선창을 따라 여러 방향으로 걸었어. 특히 모래와 히스 들판, 그리고 시골 마을의 조용함을 뒤로하고 방금 도착한 인간, 오랫동안 한적한 환경에서만 살았던 인간에게 그 대비란 정말 흥미로웠어. 이곳은 엄청난 혼란이야.

공쿠르 형제는 “일본적인 것은 영원하다”고 말했어. 그래, 이 선창은 엄청난 일본 취미, 환상적이고 독특하며 전대미문의 무엇을 보여주는구나.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 있어. 언젠가 너와 함께 그곳을 걷고 싶어. 우리도 그렇게 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야.

이곳에선 무엇이나 그릴 수 있어. 도시 풍경, 개성 있는 인물들, 주제가 될 만한 배는 미묘한 회색을 띤 물과 하늘과 함께 있지만 무엇보다 일본 취미야. 요컨대 사람은 거기에서 언제나 움직이고 있고, 지극히 이상한 환경 속에 있는 그들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기상천외한데 끝없이 흥미로운 조화가 나타난다는 거야. 방수 천으로 덮인 상품들이 산처럼 쌓인 한구석에 흰말이 한 필 있더구나. 배경은 창고의 낡고 검은 연기로 그을린 벽이야. 정말 단순하지만, 흑과 백의 효과가 너무 분명해.

정말 우아한 영국풍 선술집 창을 통해 가장 더러운 진창이 보이고, 배 위로는 모피나 물소 뿔 같은 매력적인 상품이 기이해 보이는 항만 노동자나 이국적인 뱃사람 손으로 내려지고 있어. 매우 아름답고 정말 섬세한 영국 소녀가 창 앞에 서서 그것을 바라보거나,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고. 실내와 인물은 모두 명암이 분명하고, 빛으로는ㅡ진창과 물소 뿔 위에 은색 하늘이 있어서ㅡ일련의 대단히 격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지.

거기에는 어깨가 넓고, 힘세며, 혈색 좋은 플랑드르 수부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완전히 안트베르펜적인 무리가 떠들썩하게 격렬한 동작으로 홍합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고ㅡ이와 너무나 대조적으로ㅡ작은 두 손을 몸에 붙인 정말 작고 검은 여인들의 그림자가, 회색 벽을 따라 소리도 없이 조용히 걷고 있어. 검은 머리칼의 계란형 얼굴. 갈색? 오렌지 노랑? 확실히는 모르겠어. 어느 순간, 그녀들은 위를 쳐다보며 너무나 검은 두 눈동자로 추파를 던지고 있어. 그녀는 중국 소녀야. 신비롭고 쥐처럼 조용하며, 남의 눈을 피하는 작은 빈대 같아. 홍합을 먹고 있는 플랑드르인 무리들과는 얼마나 대조적인지!

또 다른 대조ㅡ사람들은 엄청나게 높은 건물들, 창고들, 저장고들 사이의 지독히 좁은 거리를 지나가고 있어. 그런데 그 밑 거리에는 다양한 국적의 남녀가 만나는 술집, 식품점, 선원 의류 상점 등이 있고, 여러 가지 색으로 울긋불긋하고 시끄러워. 길거리는 길고, 어느 구석에나 이채로운 광경이 있어. 소동이 일어나면 아마도 엄청날 거야. 가령 네가 그 주변을 보며 걷고 있다면 갑작스런 환성에다 온갖 절규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백주에 뱃사람 하나가 사창가에서 쫓겨나는데, 그 뒤로 그를 쫓는 분노한 남자들과 여자들 무리가 이어지지. 뱃사람은 공포에 질려 있어. 여하튼 나는 그가 짐 더미 위로 기어올라가 창고의 창문을 통해 사라지는 것을 보았어.

이러한 소동에 지칠 때쯤이면ㅡ하위치Harwich나 르아브르에서 온 기선들이 정박하고 있는 선창 끝까지 가게 돼. 시가지를 등지고 있는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 있는 것이라고는 평탄하고 반쯤 물이 찬 무한한 목초지뿐이야. 너무나 우울한 곳으로 습하고, 굽이치는 마른 갈대와 진창이 전부야. 작고 검은 보트 한 척이 떠 있는 강, 회색 물, 안개 낀 잿빛 하늘, 사막 같은 적막.

항구와 부두의 전체 인상은 뭐랄까, 어떤 순간에는 가시덤불보다 더 복잡하게 얽혀 있고 기상천외하며 혼잡해서, 눈을 떼려 해도 뗄 수 없고 현기증만 나. 색과 선의 자극 때문에, 여기라고 생각했지만 저기로 눈이 가고, 같은 지점을 오래 바라보아도 하나의 사물과 다른 사물을 분별하기 어려워져. 그러나 앞쪽으로 옮겨 가면, 다시금 아름답고 정말 조용한 선, 그리고 몰스Mols가 멋지게 그린 것 같은 효과가 눈에 들어오지.

「나무를 자르는 남자」, 초크, 45?58.3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5

여기서 사람들은 멋지고 건강한 여자를 볼 수 있어. 그녀들은 그야말로 정직하고 순수하며 즐거워 보이는구나. 그러나 하이에나처럼 공포감을 풍기는 교활하고 사악한 얼굴로도 보여. 천연두로 얽은 얼굴도 잊어서는 안 돼. 끓인 새우 같은 얼굴색, 눈썹도 없는 둔한 회색의 작은 눈, 숱이 적고 우중충하게 드문드문 난 돼지털 같은 머리칼, 스웨덴 사람이나 덴마크 사람 같지?

나는 그 부근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까? 금세 엄청난 문제에 부딪히겠지. 나는 수많은 거리와 뒷골목을 걸어 다녔지만 위험하지는 않았어. 그리고 다양한 여자들과 매우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눴어. 그녀들은 나를 뱃사람으로 본 것 같아.

초상화를 그리기에 좋은 모델을 찾자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야. 짐도 찾았고, 학수고대한 화구도 찾았으니 아틀리에는 준비가 끝난 셈이야. 이제 좋은 모델만 구하면 문제가 없어. 포즈를 취하게 하기에 필요한 돈이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아. 초상화를 그리고, 그것을 모델료 대신 주는 게 방법이야. 도시에서는 농촌과 사정이 다를 거야. 여하튼, 안트베르펜은 화가에게 정말 흥미롭고 멋진 곳임에 틀림없어.

아틀리에는 그다지 나쁘지 않아. 특히 벽에 핀으로 붙인 일본의 작은 판화들이 너무 좋아. 너도 알다시피, 정원이나 바닷가에 있는 작은 여성상, 기수騎手, 꽃, 구불구불한 가시덤불.

여기에 온 것이 매우 기쁘고 이 겨울을 소득 없이 보낼 생각은 없어. 여하튼 기후가 나쁠 때도 일을 할 수 있는 작은 방을 확보했으니 안심이야. 그러나 두말할 필요 없이 그 세월이 사치스러울 수는 없어.

무엇보다 빨리 답장을 다오. 그때까지는 살 수 있겠지만 곧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을 거야. 내 방은 예상했던 것보다는 나쁘지 않아. 적어도 음산하지는 않단다.

지금 나는 습작을 3점 가지고 있어서 화상을 찾아가려 해. 그들은 대부분 개인 주택에 사는 것 같아.

이곳 공원도 아름다워서 아침에 거기 앉아 소묘를 몇 점 그렸어.

그래, 지금까지는 불운하지 않아. 집도 좋아. 그리고 몇 프랑으로 난로와 램프를 샀어. 쉽게 지치지는 않을 테니 믿어다오.

레르미트의 「10월」이란 그림을 발견했어. 석양의 감자밭에 있는 여인들을 그린 것인데, 아름답더구나. 그러나 아직 그의 「11월」은 찾지 못했어. 혹시 네가 그걸 찾을 수 있을까? 라파엘리의 아름다운 소묘가 있는 『피가로 일뤼스트레』가 나온 것을 보았어.

알다시피 내 주소는 뤼 드 지마주 194번지이니 여기로 편지를 보내다오. 공쿠르의 제2부를 다 읽었으면 보내줬으면 한다. 안녕.

너의 빈센트

기묘하게도 내 유화 습작은 이곳 도시에서는 시골에서보다 어둡게 보여. 그것은 도시에서는 빛의 밝기가 약하기 때문이 아닐까? 잘 모르겠지만, 나는 그 점에 놀랐고, 네게 보낸 작품도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시골에서보다 어둡게 보이리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 나쁜 작품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풍차, 가을의 나무가 늘어선 거리, 정물 그림 그리고 몇 점의 소품이야.

해설
1885년 11월, 빈센트는 안트베르펜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3개월 남짓 머무르는 동안 빈센트의 그림은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한다. 루벤스의 영향을 받아 누에넨 시절의 어두운 색조에서 벗어나 원색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위 편지를 통해 그가 대담한 윤곽선과 원색이 돋보이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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