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텐
1881년 4월-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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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71과 스케치 | |
171 1881년 9월경
사랑하는 테오,
얼마 전에 편지를 보냈지만 너에게 알려야 할 게 많구나. 소묘에서 그 방법만이 아니라 결과에도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야. 또 모베의 충고에 따라 인체 모델을 두고 그리기 시작했어. 다행히도 여기서 몇 사람에게 부탁할 수 있었어. 노동자 피트 카우프만Piet Kaufman도 그 한 사람이야.
바르그의 『목판화 연습』을 열심히 공부하면서 그리고 또 그려 인물 소묘 관찰이 꽤 좋아졌어. 나는 길이를 재는 법, 보는 방법, 윤곽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았고, 고맙게도 이전에는 거의 불가능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이제는 점차 가능하게 되었어. 나는 삽으로 땅을 파는 사람, 즉 삽질하는 사람을 여러 가지 포즈로 다섯 번, 씨 뿌리는 사람을 두 번, 빗자루를 가진 소녀를 두 번 소묘했어. 또 감자 껍질을 벗기는 흰 모자의 여인, 지팡이에 기댄 양치기, 마지막으로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고 팔꿈치를 무릎 위에 놓고 난로 곁에 앉아 있는 늙고 병든 농부를 그렸어.
물론 이것으로 끝은 아니야. 두세 마리 양이 다리를 건너면 뒤의 무리도 따르게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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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71 | |
나는 반드시 땅을 파는 사람, 씨 뿌리는 사람, 경작하는 남녀를 쉬지 않고 그려야 해. 농촌 생활에 속하는 모든 것을 면밀하게 그려야지. 다른 사람들이 그러했고, 또 지금 그러하듯이 말이야. 나는 이제 더 이상 자연을 앞에 두고 무력하지는 않아.
헤이그에서 (꼭 연필처럼) 나무에 끼운 콘테 크레용을 가져와서 그것으로 엄청 많이 그리고 있단다. 또 붓과 철필을 사용하기 시작했어. 가끔은 세피아와 수묵, 때로 색깔도 약간 사용하고 있어.
사실 최근 그림은 전에 그린 것과는 전혀 달라. 인물의 크기는 『목판화 연습』 거의 그대로야. 이런 공부에 풍경화는 결코 손해가 아니라고 생각해. 도리어 이득이 되지. 작은 스케치 몇 장을 동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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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71에 동봉한 스케치 | |
물론 포즈를 취해주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어야 해. 큰돈은 아니지만 매일 반복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든 그림을 팔지 않는 한 그만큼 소비하는 게 되겠지.
그러나 인물상에 실패하는 경우란 전혀 없으므로 모델료는 상당히 빨리 갚을 수 있을 거야. 어떤 인물을 발견하여 그것을 종이 위에 안전하게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단돈 얼마라도 벌 수 있기 때문이지. 내가 이 스케치를 보내는 것은 너에게 어떤 포즈인지를 알리기 위해서야. 오늘 급하게 그린 것들이라, 본래의 소묘에 비하면 균형 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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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71에 동봉한 스케치 | |
라파르트로부터 멋진 편지를 받았어. 그는 매우 열심히 그리고 있는 것 같더구나. 정말 훌륭한 풍경 스케치를 몇 점 보내왔어. 그가 여기에 다시 와서 함께 며칠 보냈으면 좋겠다.
이들은 밭이랄까, 아니면 차라리 그루터기라 할 곳에서 삽질을 하고 씨 뿌리는 사람들이야. 본래 그림은 상당히 큰데, 천둥이 치는 풍경이야.
다른 두 점은 삽질하는 남자. 이에 대해서는 뒤에 몇 점 더 그릴 거야.
또 다른 씨 뿌리는 사람은 바구니를 들고 있어. 이 봄에 너에게 보여주었던, 그리고 최초의 스케치 앞부분에 보이는 작은 인물을 그려. 어느 여자든 씨앗 바구니를 든 포즈를 취해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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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들」(밀레 그림 모사작), 연필, 잉크, 48?36.8cm, 암스테르담, 빈센트 반 고흐 미술관, 1881 | |
그래, 모베가 말하듯이, 공장은 완전 가동 중이야.
만일 네가 좋아하고 사정이 허락한다면 표백하지 않은 아마포 색의 앵그르 종이를 잊지 말아다오. 가능하다면 강한 쪽이 좋아. 여하튼 빨리 답장을 다오. 그리고 진심의 악수를 받아다오.
언제나 너의
빈센트해설
1880년 10월, 보리나주를 떠나 브뤼셀로 간 빈센트는 소묘 공부에 열중했다. 당시 27세였던 그는, 그림을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부담감에 시달렸지만 가난한 사람들, 노동하는 사람들을 그리겠다는 명확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들」을 모사하거나 야외에서 농민들을 스케치하는 데 주력했으며, 이 시기의 작업은 이후 그의 작품 주제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