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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나주(1879년 11월-1881년 4월)

사랑하는 테오,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마는구나. 먼저 진심으로 새해를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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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기를 빌고, 새해에는 모든 일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예술가란 어떤 존재일까? 빈센트 반 고흐는 말한다. “무엇인가를 이미 완벽하게 발견했다고 말하지 않고, 언제나 그것을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그는 평생을 두고 끝없이, 치열하게, 철저히 탐구했다. 예술만이 아니라 인생을 그렇게 끊임없이 탐구했다. 그것이 그림과 편지로 남았다. 그런 탐구가 녹아든 그림과 편지이기에 우리는 감동한다. 그의 예술과 인생이 별개가 아니듯이 그 그림과 편지 역시 그렇다. 어떤 예술가든 그 예술은 인생과 연결되겠지만 고흐만큼 그 둘이 직결되는 예는 찾기 어렵다. 그의 인생을 모르고는 그의 예술을 알 수 없다. 그의 인생이나 예술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그가 남긴 방대한 편지에서 나온다. 그의 편지는 그의 인생과 예술의 무한한, 유일한 광맥이다. - 박홍규(옮긴이)

***

보리나주
1879년 11월-1881년 4월


「늪」, 연필, 잉크, 42.5?56.5cm, 오타와, 국립미술관, 1881

148 1878년 12월 26일

사랑하는 테오,

너에게 다시 편지를 쓰고 마는구나. 먼저 진심으로 새해를 축하해. 행복하기를 빌고, 새해에는 모든 일에 신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한다. 나는 언제나 네 편지를 학수고대한단다. 근황이 어떤지, 건강은 어떤지, 혹시 최근 아름다운 것, 주목해야 할 것을 보았다면 그것도 듣고 싶어.

네가 잘 알듯이 보리나주에는 그림 한 장 없고, 사람들은 그림이 무엇인지도 몰라. 그래서 브뤼셀에서 온 이후로 미술에 관한 것은 전혀 본 적이 없어. 그렇지만 이곳 시골 풍경은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우며 아주 독특하단다. 모든 것이 각기 있는 그대로 말을 걸어오는데 나름의 개성으로 가득 차 있어. 크리스마스 전의 음산한 날이 계속되는 요사이, 땅 위에는 눈이 잔뜩 덮여 있어. 그때는 온갖 것이, 특히 농민화가 브뤼겔 같은 중세 사람들의 그림을 연상시켜. 그 빨강과 초록의, 검정과 하양의 독특한 효과를 실로 멋지게 표현하는 기술을 터득한 저 많은 화가들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지. 여기서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가령 티스 마리스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을 생각나게 해. 여기에는 움푹 파인 길이 있고, 찔레꽃 덩굴이 펼쳐져 있어. 그런가 하면 흙투성이의 고목이 있는데 그 뿌리의 형태는 가히 환상적이야. 이러한 조망은 뒤러의 에칭 「죽음과 기사」에 그려진 길, 그것과 똑같아.

그래서 며칠 전 일이지만 흰 눈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광부들을 보았을 때는 실로 진귀한 광경으로 느껴졌어. 이 사람들은 정말 새까맣지. 그들이 캄캄한 탄갱에서 밝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은 굴뚝청소부 그대로야. 그들의 집은 정말 작아. 거의 오두막에 가깝단다. 집들은 움푹 파인 길을 따라, 숲 속이나 언덕 비탈길에 흩어져 있어. 여기저기 이끼 낀 지붕이 있고, 밤이면 다정한 불빛이 작은 창문을 통해 비쳐.

우리가 살았던 브라반드 땅에는 잡목 숲과 키 작은 관목灌木 숲이 있고, 네덜란드에는 가지가 늘어진 버드나무 숲이 있듯이, 여기에는 정원과 들판과 밭을 둘러싼 검은 가지들의 울타리가 있어. 최근에는 눈이 쌓여 흰 종이 위의 문자 같은 효과를 낳아, 마치 복음서처럼 보인단다.

나는 여기서 특별히 종교집회를 위해 만든 꽤 큰 방과 밤이면 늘 노동자주택에서 열리는, 성경반이라고 부르면 딱 맞을 모임에서 벌써 여러 번 설교를 했어. 특히 겨자씨 한 톨,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 맹인으로 태어난 사람 등에 대해 이야기했지. 크리스마스에는 물론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대해, 또 지상의 평화에 대해 말했어. 신의 은총으로 여기서 안정된 지위를 얻을 수 있기를 나는 마음속으로 기원했단다.

「석탄을 나르는 사람들」, 연필, 잉크, 43?60cm,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국립미술관, 1881

이곳은 주변 어디에서나 거대한 굴뚝을 볼 수 있고, 샤르보나주Charbonage라고 불리는 탄갱의 입구 가까이에는 거대한 석탄의 산이 있어. 너도 아는 보스봄의 「쇼퐁텐Chaudfontaine」이라는 거대한 소묘는 이 주변 풍경을 특징적으로 보여주지. 그러나 여기에는 모든 것이 석탄이고 에노Hainaut 주의 북부는 채석장, 그리고 쇼퐁텐은 도리어 철의 지방이야.

나는 네가 브뤼셀에 왔던 날, 함께 미술관을 찾았던 일을 지금도 자주 생각한단다. 네가 가까운 곳에 살아 더 자주 만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빨리 답을 해다오. 나는 「젊은 시민」이라는 에칭을 몇 번이나 바라보고 있어.

광부들의 말을 알아듣기란 매우 어려워. 그러나 그들은 유창하게 재빨리 말하는 프랑스어는 쉽게 알아듣는단다.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말하는 그들의 사투리와 비슷하거든.

이번 주 모임에서 나는 『사도행전』 제16장 제9절의 “그날 밤 바울이 환상을 보았는데 어떤 마케도니아 사람이 그에게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고 간청”한 것에 대해 말했어. 복음의 위로를 추구하여 유일한 참된 신을 알고자 갈망한 이 마케도니아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자 그들은 주의 깊게 귀를 기울였어. 나는 이렇게 말했어. 즉 마케도니아 사람은 신의 위안을 바라며 유일한 참된 신을 알고자 기원했다고. 따라서 우리들은 그를 노동자로 생각해야 한다고. 그 얼굴에, 불멸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반짝임도 매력도 없는 그 얼굴에 슬픔과 고통과 피로에 전 주름살을 지으면서 오로지 썩지 않는 음식, 즉 ‘신의 말씀’을 바랐던 노동자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왜냐하면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고, 신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로 살기 때문이라고. 또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마케도니아 사람 같은 인간, 괴로운 생활을 보내는 노동자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며 계몽할 수 있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왜냐하면 그 자신이야말로 우리의 병을 안 위대한 슬픔의 사람이고, 그가 신의 아들이기는 하지만 목수의 아들로 불린 존재이며, 병든 영혼을 치료하는 주님이기 때문이라고. 신의 뜻을 구현하기 위해 초라한 목수로 30년 간 일한 사람. 그리고 사람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야 하고 이 지상에서 초라하게 지내면서도 하늘에 닿으려 하지 않고, 복음서로부터 온화하고 가난한 마음을 배워 체득하는 것이 곧 신의 부름이라고.

이미 몇 사람의 병자를 돌볼 기회가 있었어. 이곳에는 병자가 많기 때문이야. 오늘 나는 전도위원회장에게 긴 편지를 써서 내 희망을 다음 위원회에서 다루어주도록 요청했어.

오늘밤에는 눈이 녹고 있어. 이렇게 눈이 녹는 가운데, 밀이 다시 얼굴을 내미는 겨울 푸르름과 함께 구릉지대가 보여주는 그림 같은 정경은 도저히 말로 다 전할 수 없구나.

이방인에게 이곳 마을은 그야말로 미로란다. 구릉의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서 있는 작은 노동자 집들 사이에 무수히 작은 골목이 이어지지. 이곳과 가장 비슷한 곳은 스헤베닝겐 같은 마을, 특히 그 뒷골목 또는 우리가 그림으로 알고 있는 브르타뉴 마을과 같아. 너는 파리를 왕복하면서 이 주변을 기차로 통과했을 것이고, 그래서 어느 정도는 기억하고 있으리라.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작아. 그것은 후베De Hoeve 교회와 비슷하지만, 그것보다는 조금 크지. 그러나 내가 설교하는 곳은 100명이 들어갈 만한 넓고 간소한 방이야. 또 나는 마구간이나 창고에서 열리는 종교행사에도 참석했어. 따라서 그 모든 것은 참으로 소박하고 원시적이야. 틈이 나면 빨리 답장을 다오. 내가 언제나 너를 생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주기를 바란다. 너의 새해에 신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다시 기도한다. 마음으로부터 악수를. 언제나 변함없는 신뢰를.

너를 마음으로 사랑하는 형 빈센트

로스 집안의 모든 분에게도 안부를 전해다오. 신년 인사를 부탁한다. 편지는 이 주소로 보내줘.

(에노 주 보리나주) 몬스 바튜라주 행상인 반 데어 하헨 씨.

바로 지금 나는 작은 광부 집의 늙은 할머니를 방문했어. 그분은 병이 깊지만 믿음이 깊고 인내심도 깊으셔. 나는 그분과 함께 성경의 한 구절을 읽고 함께 기도했어. 여기 사람들에게는 쥔데르트나 에텐의 브라반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소박함과 선량함으로 인해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무언가가 있어.

해설
1878년 12월, 빈센트는 전도를 하기 위해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국경 부근 탄광지대인 보리나주로 떠났다. 그곳에서 광부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빈센트는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애썼으나, 교회 측은 가난한 광부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한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전도사에서 해임된 그는 이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로, 즉 화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편집자 주
편지 내용 중 밑줄이 그어진 부분들은 빈센트 반 고흐가 편지를 쓸 당시 직접 밑줄을 그으며 강조한 대목들입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는 아트북스과 함께하며, 매주 화요일 총 10편 연재합니다.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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