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 the World 힐 더 월드> 연재 캠페인 본문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러분의 "희망과 정성"이 담긴 댓글 하나당 500원씩, 문학동네출판사에서 국제아동돕기연합에 기부합니다. 댓글 1개면 아프리카 어린이 한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HEAL The WORLD 힐 더 월드』를 한 권 구매하시면 2,000원(인세 전액과 출판사 수익금 일부)의 기부금을 창출하며 이는 4명의 어린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
2007년 기준 24,348명 활동.
활동 무대는 전 세계.
이들은 바로 국경 없는 의사회
본래 명칭 Medecins Sans Frontieres
영어 명칭 Doctors Without Borders
약어 MSF
자연재해나 분쟁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곳으로 가
응급구호 활동을 펼치며,
10센트짜리 약이 없어 죽어가는 이들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단체.
1968년 나이지리아, 비아프라 내전영국으로부터 막 독립한 나이지리아에서는 해묵은 종족 간, 지역 간 갈등이 곳곳에서 폭발했다.
동부 지역에 사는 이보부족의 지도자는 ‘비아프라’라는 나라를 만들어 독립을 선언했고, 나이지리아 정부는 비아프라에 대대적인 공격을 퍼붓고 식량 공급을 중단했다.
‘비아프라 내전’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2년 6개월간 지속, 200만 명의 민간인과 군인들이 죽거나 다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굶주렸다.
약속을 어긴 젊은 의사이때 비아프라의 적십자 병원에 자원봉사를 하러 온 프랑스의 젊은 의사들. 그들은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장면에 충격을 받는다.
긴급의료 구호활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대상 국가의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중립을 지키겠다는 약속을 해야만 입국이 허락되었다. 이 젊은 의사들도 중립의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들 중 한 명은 약속을 어겼다.
베르나르 쿠슈네르.
현지에서 느낀 분노와 좌절을 세상에 알리기로 결심한 그는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잠재운다는 목적 하나로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고 비아프라 전 지역에 식량 공급을 중단한 나이지리아 정부의 잔인함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파리에서 조직을 결성,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의료자원봉사 모임을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온 지구에서 2만 명이 넘게 활동하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탄생이다.
국경 없는 의사회1971년 12월 정식 출범, 1972년 지진으로 폐허가 된 니카라과의 마나과 시를 시작으로 내전이 발생한 베이루트, 소련의 침공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1차 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쿠르디스탄, 인종 갈등으로 전쟁이 발발한 발칸반도, 부족 간 대학살이 발생한 르완다, 쓰나미가 덮친 동남아시아 등에서 ‘국경 없는’ 활동을 지속. 199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오늘 이 특별한 영광을 수상하면서 노벨상 위원회가 지구촌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는 인도주의 구호활동의 권리를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 감사를 표합니다. 또한 MSF가 선택한 길이 옳은 것이었음을 믿어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그 길은 다름 아닌 불의를 고발하는 데 주저하지 않고 열정을 다하며 아울러 자발성과 공명성 등 MSF의 핵심 원칙은 물론, 모든 사람이 치료받고 인간으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우리의 믿음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_제임스 오르빈스키, 1999년 당시 국경 없는 의사회 회장
믿음에 헌신하기 위해 필요한 것매년 180만 명의 아이들이 불결한 환경 속에서 죽어가고 있고, 전염병으로 투병하는 사람들의 90% 이상이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병든 이들에게 줄 약을 사기 위한 돈, 약을 운송하는 데 드는 돈, 치료장소를 마련하기 위한 돈, 각종 의료장비를 구입하고 관리하는 데 드는 돈, 활동하는 이들의 체재비 등등.
아무리 좋은 뜻과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하려고 해도 그 뜻을 자유롭게 펼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하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한 해 예산은 약 4억 달러. 이 금액의 20% 정도는 UN이나 각국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나머지 80%는 개인들의 기부이다.
설립 초반에는 UN과 각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지만, 구호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돈이 낭비되지 않도록 노력했고 저임금 또는 무상으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 덕분에 지금의 재정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활동영역과 의사 결정의 범위도 그만큼 자유로워진다는 것. 재정적인 독립을 확보한 그들은 ‘무조건 중립’을 지켜야 할 필요 없이 잘못된 일에 분노하고 약한 자의 손을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종로에서 만난 ‘경계 없는 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서울시 종로구 이화동 26-1번지 3층,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본부.
국경 없는 의사회가 국경을 넘나들며 인도주의를 실현하는 의료활동을 펼친다면,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계’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경계 없는 의료활동을 펼친다.
1987년 발족한 이 의사들의 모임은 군부 독재를 비판하고 사회 민주화를 외치며 국민 건강권 확보, 소외된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 양심적인 학술운동을 표방했다. 당시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유난스럽다’ ‘너희들만 양심이 있느냐’며 곱게 보지 않았다.
1988년 상봉동 연탄공장 주민들의 진폐증 조사, 같은 해 수은공장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수은 중독으로 사망한 문송면군 사건 이슈화, 그리고 매년 수해지역을 찾아다니며 활동하는 사이, 187명의 회원으로 시작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는 1990년대에 들어 1,100여 명으로 회원 수가 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 그리고 노숙자를 위한 진료소를 만들어 사회 경계 밖에 있는 이들을 위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건강할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 소외된 사람이 있는 곳이면 구치소든 지하철역이든 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국민 개개인의 건강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하여 우리는 우리의 의사됨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새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두말할 나위도 없이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 양심의 보루가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소명이며 존재 이유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의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는 소박한 믿음은 어느 의사 한둘의 것이 아니라 모든 의사들이 마음속 깊이 나누어 가지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_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