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도 되지 않은 두 남자가 죽었다 - “아빠, 오늘 돈 많이 벌었어?”
그들은 힘겨운 삶을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다. 두 사람은 그냥 남자가 아니라 가장이었다.
가장의 죽음이란 이렇듯 터무니없이 무겁고 어둡다. 특히 젊은 가장의 죽음은 더욱 슬프다.
가장 - 아빠, 오늘 돈 많이 벌었어?
30대 중후반을 지나면 상가(喪家)를 찾는 일이 부쩍 늘기 시작한다. 보통 10대 때는 집안의 어른들 상이 고작인데, 20대에 들어서 친구들의 조부모와 부모님의 상으로, 외부 조문이 시작된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거래처나 직장상사의 의례적인 상을 챙기는 일이 많아진다. 30대 중반을 넘기면 부쩍 친구 부모님의 부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이즈음이 비로소 ‘경사는 빠져도 흉사는 챙기는 것이 도리’라는 말의 의미를 새기게 되는 때이다. 이때부터는 고인(故人)과의 관계도 다양해지는데, 친구나 친구의 배우자까지도 그 범주에 들기 시작한다.
친구나 직장동료의 부모님을 조문하는 자리거나 천수를 누리고 떠난 분들의 상가란, 조신한 몸가짐으로 분향을 하고 적절한 위로의 말로 상주에게 애도를 표한 후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서 고인의 마지막이 어땠는지를 묻는 것으로 조문의 예는 다한다. 음식상을 마주한 이후에는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잡담을 하고 간간이 웃음소리가 흘러나와도 그리 큰 허물이 아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화투판을 벌이는 것도 흠 잡힐 일은 아니다.
그런데 친구나 배우자의 죽음 앞에서는 그런 조문의 격식이 허물어진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비통으로 인해 다른 때와는 영 다른 심정이 되는 것이다. 올해 들어 나는 그런 비통한 심정으로 두 군데의 상가를 다녀왔다.
한 곳은 고향 친구의 상가였고, 다른 한 곳은 아내의 절친한 여고동창생 남편의 상가였다. 두 사람 다 마흔을 넘지 않았고, 죽기 전에는 간간이 만나 술과 밥을 먹으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며 자식 키우는 이야기를 섞던 사람들이었다. 상가에서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그들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고,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어딘가에 잘 살고 있다가 무슨 일이 있으면 만나질 것 같은 기분이다.
두 사람의 부음은 공교롭게도 이른 새벽에 전해 들었는데,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어야 할 정도로 큰 충격이었다. 그런데 그 충격이란 예비되지 않은 것과 예비된 것의 차이가 있었다. 두 사람의 죽음에 대한 방식과 태도도 달랐다.
고향 친구 Y는 스스로 생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주검마저도 며칠이 지난 후에야 서울 인근의 야산에서 발견되었을 정도로 그의 죽음은 외롭고 허허로웠다. 그의 상가도 죽음만큼이나 을씨년스럽고 초라했다. 가정불화로 별거한 지 오래된 법적인 아내는 끝내 상가에 나타나지 않았고, 중학교에 다니는 자식은 상주를 맡기에 너무 어리고 아직은 세상을 모르는 나이였다. 친구들의 통음과 탄식마저 없었다면 친구의 상가는 너무 쓸쓸할 뻔했다. 친구의 유해는 성남의 한 화장터에서 두 시간 만에 뽀얀 가루로 변해 상자에 담겨져 나왔고, 어린 자식의 손에 들려 고향의 선산 어느 나무 아래 뿌려졌다.
그 친구를 짓누른 삶의 무게를 감히 난 짐작하지 못했다. Y가 세상을 등지고 난 후에야 그가 견딘 무게를 가늠했지만 이미 뒤늦은 후회일 뿐이었다. 미안함을 주체하지 못해 술에 취했고, 취중에 섣불리 세상을 등진 그 친구를 실컷 욕하기도 했다. 하지만 친구의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난 어떤 선입견도 가지지 않을 생각이다. 그것은 감히 나의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Y가 죽기 두 달 전쯤 다른 한 친구와 함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 뒤로 한 번 어느 친구의 경조사에서 잠시 얼굴을 대면한 적이 있었으니 그날이 마지막 자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와의 술자리는 언제나처럼 말보다 따르고 마시는 일이 더 중요한 듯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3차까지 이어진 술자리는 거나했다. 어떻게 헤어졌는지 가물가물할 정도로 세 사람은 평소보다 많은 술을 마셨다.
그날 Y는 아들 녀석 걱정을 한참이나 했다. 사는 얘기나 간간이 할 뿐 속내를 잘 내보이지 않던 친구인지라 그날 얘기는 아직도 생생하다. Y의 아들은 지방의 한 중학교의 사이클 선수였다. 그러나 새 학년에 올라가면서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해 고민하고 있었다. 재능도 있어 코치가 만류를 했지만 아들은 결단코 운동을 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는 것이다. 고향에서 축산업을 하다 실패하고 몇 년 전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과일 행상을 하는 처지에도 수백? 원 하는 경기용 사이클을 사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운동을 그만두는 것 같아서 더 속상하다는 것이다.
어쩌다 저녁 무렵 찾아가면 어김없이 서둘러 장사를 접고 술집으로 앞장서던 Y. 하루 종일 바깥에 서서 과일을 파느라 까맣게 그을린 데다 술기운까지 더해져 검붉게 변한 얼굴에 부처님 같은 미소가 번질 때는 지방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들 얘기를 할 때였다. 무뚝뚝하기만 한 그가 자식 이야기? 할 때면 얼마나 살가워지고 말이 많아지든지 내가 아는 친구가 맞는지 다시 한 번 그를 찬찬히 살피곤 했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잘해주지 못해서 Y가 죽음을 택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그를 궁지로 몰아넣은 여러 이유 중에 못난 아비의 자화상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친구가 왜 죽음을 택했는지 깊이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가슴엔 뜨거운 부정이 숨 쉬고 있었음을 안다. 그리하여 나는 어린 상주를 붙잡고 혀 꼬부라진 소리로 아빠가 얼마나 너를 사랑했는지를 한참 동안 설명해야 했다. 그 어린 상주가 얼마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까, 는 생각지도 않고 말이다.
나는 요즘 부쩍 Y가 과일행상을 하던 거리의 모퉁이를 지나는 일이 잦다. 늘 붙박이처럼 박혀 있던 그의 과일 트럭도,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고단한 삶을 살아내던 Y도 없는 그곳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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